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끝 Apr 24. 2022

아무 것도 못한 날엔, 그리고 일상으로의 복귀


이야기 하나.

코로나19에서 벗어난 이후 처음 쓰는 글이다. 이제야 진정으로 회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이레 동안의 격리(더 정확히 말하면 나에겐 격리보다 치료와 인내의 시간에 가까웠다. 그만큼 힘들었으므로)를 마치고 나서도 사흘 정도는 무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후각이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입안에서는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쓴 맛 같은 게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침은 여전히 멈출 생각은 하지 않았고, 무기력한 상태는 나를 더욱 구렁텅이로 내모는 것 같았다. 재택치료 기간 동안 코로나 일지를 쓰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수면을 취하는 것과 깨어 있는 시간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밤엔(수면장애도 코로나의 증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며칠이나 지속됐다) 영화를 보는 일이 전부였다. 


이 기간 동안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무려 세 번이나 돌려보았다. 오죽하면 영화 마지막 씬에 엘리오가 애절하게 올리버를 부르던 그 말 "엘리오, 엘리오, 엘리오"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엘리오의 나지막한 그 목소리가, 굳게 닫혀 있던 감정을 분출시키고, 아픈 와중에서도 타인의 마음에 다가가려는 시도를 하게 도와줬다. 그래서 그 영화가 무척이나 고맙게 다가왔다. 그런 이유로 그간 장바구니에 담겨 있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OST LP도 구매했다. 사실 봄을 무척이나 고대했는데, 치료 기간 동안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여러 번 보면서 올해는 유독 여름이 빨리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됐다. 늘 여름을 앞둬 <커피프린스 1호점>을 돌려 보곤 했는데, 올여름엔 이 영화와 함께 계절을 보낼 생각이다.

이야기 둘.

치료를 마치고 나온 집 밖에 나와 주변을 돌아보니 분홍을 머금은 순백의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격리에 들어가기 전에는 꽃망울만 있었던 것 같은데, 금세 꽃망울이던 것이 꽃으로 바뀐 것도 모자라 바람을 타고 흩뿌려지는 색종이가 되어 있었다. 일상으로 복귀해서도 무기력이 이어지는 바람에 평소보다 더 열심히 달리기를 하고자 했다. 그래야만 예전처럼 활기차게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아서다. 그렇게 매일 달리던 길에서 흩날리는 벚꽃을 마주했고, 그로 인해 일종의 치유를 받을 수 있었다. 글을 쓸 때 느끼던 '내가 살아있다'는 생각을, 달리면서 또다시 경험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엔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배의 결혼이 있었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수트를 입고, 아끼는 타이도 맸다. 무엇보다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의 마음을 건넬 수 있어서 행복했다. 결혼식을 피해 코로나에 걸린 것이 다행스럽기까지 했다. 선배는 회복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결혼식을 도와주고 참석한 나에게 연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뿌듯했다. 선배가 늘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노팅 힐>은 생각이 나면, 꺼내 보는 영화 가운데 하나인데 작중에서 윌리엄 태커가 입은 셔츠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핑크와 스카이 블루 셔츠를 새로 들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봄은 봄인가 보다. 파스텔컬러의 셔츠를 갖고 있음에도, 또다시 맞춰 입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말이다. 이젠 입는 것과 입는 행위에 대한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 어쩌면, 새로 정립됐다고 해야 할까. 무얼 새로 들이는 건 나에게 큰 의미가 없다. 내가 들이는 옷이, 내 일상 속에서 어떤 추억과 편린 속에서 함께 하는지와 그리고, 누적되는 시간의 과정에서 생기는 애착. 그것이 내게 더 중요한 것으로 자리 잡았다. 올봄과 여름엔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게 될까.

매거진의 이전글 (확진자가 되어)격리를 시작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