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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끝 Feb 25. 2018

기자로 살면서 좋았던 것

'작가 유시민'을 만나다

5년가량을 기자로 살아오면서 가장 좋았던 것을 꼽으라면, 평소에 만나기 힘든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여러 부서를 거치면서 다양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교육문화부에 있을 때에는, 문화계 인사들을 자주 만나왔다. 정치부에서는 국회의원, 광역단체장 등 정치인들과 동석할 자리가 잦았다. 또 사회부에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기자라는 이유로'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게 기자로서의 특혜를 누려왔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에 깊은 내공을 가진,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멘텀을 얻을 때가 참 많았다. 


이 가운데 글쓰기와 관련하여 대한민국에서 최고라고 일컬을 수 있는 유시민 작가와의 만남은, 내게 큰 동기부여를 가져다주었다. 이 만남은 2015년 가을, 유 작가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펴낸 뒤 마련된 인터뷰에서였다. 기자인터뷰어로서의 만남은 처음이었지만, 사실 그를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학부생 시절, 학교에서 열린 그의 특강에 참석한 적이 있어서다. 당시 강연 주제가 '인문학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강연이 끝난 뒤 그에게 받은 친필 사인은 아직도 대학 졸업장과 함께 보관되어 있다. 어쨌든, 친필 사인을 받기 위하여 길고 긴 줄을 설 정도로 유 작가를 좋아했던 내가, 인터뷰어로서 실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유 작가와 인터뷰 일정을 잡는 과정에서, 데스크와 선배에게 인터뷰 방향에 대하여 수시로 컨펌을 받았다. 나는 작가로서의 삶은 물론, 책의 내용과 접목하여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 등에 대해 묻겠다고 하였다. 위에서 오케이 사인이 내려졌다. 그렇게 공을 들여 만든 질문지를 갖고 인터뷰 장소에 들어갔다. 주어진 시간은 30분 남짓인 데다 타사 기자들과 함께 동석한 만큼 핵심만 묻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그렇게, 몇 분을 기다렸을까. 유 작가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유 작가는 내가 건네준 명함을 보면서 회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예전부터 수차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면서, 좋은 신문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잘 보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때문에 즐거운 기분으로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인터뷰이인 그에게, 미리 준비된 질문인 '작가 유시민'의 삶에 관하여 물었다. 그는 내게 "작가로 전업한 뒤늦게 일어날 수 있는 게 너무 좋다. 삶의 여유가 생기고 타인을 의식하지 않아 마음이 편하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정계에 있을 때에는 유권자의 표를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지금은 집필한 책을 독자들에게 팔아야 한다"면서 정치인과 작가로서의 삶에 지향점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동안 '정치인 유시민'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런 그에게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내면'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하였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갖고 있더라도 지식과 정보, 감정이라는 내면이 없으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면서 "본인이 아무리 잘 썼다고 생각해도 남들이 인정하지 않은 것은 감정이입이 되지 않아서"라고 했다.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의도에 맞게 쓰기 위해서는 맥락을 텍스트에 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여태껏, 그냥 손 가는 대로 글을 써 왔던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여기에 글쓰기의 바탕에는 '경험'이 밑바탕으로 깔려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그는 다양한 직업을 거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글쓰기는 경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자신이 직접 생각하고 체험한 것을 비롯해 학습을 통해 얻는 지식이나 정보, 간접경험이 모두 글쓰기의 원천이 된다"고 했다. 또 "이 가운데 직접 체험이 주는 것이 가장 강력하다. 사람들이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 경험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 다르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유 작가는 '인문서는 고상하고, 실용서는 천박하다'라고 생각하는 이분법을 경계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는 특히 "인생에 있어 중요한 시기의 글쓰기는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일인 만큼 정말 중요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글쓰기를 가볍게 보아선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약속 시간이 약간 지났을까. 그에게 한 가지를 더 물어보고 싶었다. 사전에 전혀 준비되지 않은 물음이었다. 나는 유 작가에게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조언 말씀 부탁드린다"라고 당부하였다. 그는 웃음을 보이며 "인생의 선배인, 기성세대에게 인생의 지침을 구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고 운을 떼면서, 기성세대가 조언한 것을 듣고 그대로 따가가기 보다는 길을 스스로 개척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인생에 정답은 없다. 인생은 답을 찾는 과정인 만큼, 자기 자신을 조금 더 믿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문에 현답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나 역시 그동안 스스로를 잘 믿지 못해 왔어서다. 그래서 앞으로가, 두려웠다. 격려의 온기가 담긴, 유 작가의 말을 들으면서, 딱 꼬집어 표현할 순 없지만 큰 용기와 힘이 났다. 당시 유 작가와 인터뷰를 하면서 녹음했던 육성과 받아쳤던 워딩을 두고두고 보면서, 스스로를 채칙찔하고 반성할 때가 정말 많다. 기자로 지내면서, 얻은 뜻깊은 '산물'이었던 셈이다.


사진=유시민 작가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찍은 사진. '작가'로서의 삶의 얼마나 행복한지를, 그의 얼굴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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