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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Sep 07. 2018

당신은 왜 이 길을 걷고 있나요?

쿵스레덴 트레킹 

Kungsleden(King's trail)


애초 한국을 떠나올 때 쿵스레덴 트레킹은 계획에 없었다. 
다른 트레킹이 이미 계획되어 있었고 쿵스레덴은 우리의 일정과는 맞지 않아 다음에 찾는 걸로 결정하고 떠나왔다. 

하지만 여행의 묘미는 뭐다?!

일정 뒤집기!!



분명 짧은 기간에 많은 트레킹을 경험하며 걷는 행위에 대해 이골이 난 상태였다.

당분간 그만 걸어도 되겠다 싶었던 우리가 쿵스레덴을 걷게 된 건 어쩌면 신의 한 수.. 였는지도 모르겠다.



* 쿵스레덴은 통신이 전혀 되지 않는다. = 속세와 완벽한 차단


* 한번 시작하면 중간 탈출구가 없다. (시작하면 되돌아가지 않는 이상 끝을 내야 한다는 소리다.)


   - 물론 우리가 걸었던 구간에 한해서 하는 말이다. (니칼루옥타~ 아비스코 구간)


* 짧은 기간의 다수의 트레킹 경험으로 

1. 체력이 향상되어 있었다.
2. BPL(backpacking light)의 중요성을 아주 절실히 알고 있었다. 



결론은, 무조건 걷는 것 말곤 탈출구가 없는 길 위에서 적당히 가벼운 배낭과 잘 다져진 체력 덕분에
한국 떠나오면서 줄곧 해왔던

 '길을 걷고 있는 이유'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짧으면 1박 2일, 길면 11박 12일의 기간 동안 걷는 행위를 지속하며 이런 사색을 내가 해본 적이 있었던가?


아니 없었다.
무거운 배낭에 아픈 어깨를 신경 쓰거나, 유독 약한 무릎의 통증에 몰두하거나, 이 길의 탈출구를 찾거나,
오름질이 너무 심해 숨쉬기 조차 힘들거나 하는 이유로 걸으면서 깊이 생각하는 행위는 전혀 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틈틈이 내 생각을 기록했다.

걷느라 기록하지 못할 땐 잊고 싶지 않은 그때의 감정을 음성 녹음으로 남겼다. 



스스로 이런 말 하는 게 우습지만,

나는 쿵스레덴 트레킹 이후로 한 뼘 이상 성장해있었다. 



아름다운 곳에서 매일 밤 숙면을 취했고



어린아이들도 각자의 배낭을 짊어지고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물고 빨며 자녀를 소중히 품고 있는 것보다 넓은 세상 밖을 보여주는 걸 선택한 이 나라 부모들이 대단했고 닮고 싶었다. 



세찬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자연 그 자체를 즐기게 되었고



너덜길이 발바닥을 괴롭힐 때마다 나오는 판자 길에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칭하며 감사하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어느 곳이든 우리 집 앞마당이 되었고



하루에 절반을 걸어야만 했지만 이 광활한 자연 안에 있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불편을 감수하고 포기했던 많은 물건이 트레킹 기간 내내 날 풍요롭게 만들었다.

배낭이 가벼워야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이때 느꼈던 감정, 많은 생각들 덕분에 

쿵스레덴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트레킹이 되었다. 



후회는 없다. 

앞으로 우리는 계속 떠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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