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도 쉼이 필요하다.
어느덧 여행을 떠나온지 127일이 지났다.
가슴 벅찰 풍경들을 눈에 담고, 배낭들고 적으면 5일에서 길면 11일을 두 발로 걸었다. 걷다 좋은 곳에 텐트치면 그 곳은 우리집 앞 마당이 되었고, 꼬르륵 거릴 때 가던 길 멈춰 물 끓여 건조식 먹으면 그 곳은 우리집 주방이 되었다.
걷고 먹고 자는 단순한 행위를 반복하며(체력적으론 힘들었지만)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아마 한국에서 1년동안 해야 할 사색의 양보다 더 많이 했을 것이다.
스웨덴에서 5박 6일의 쿵스레덴 트레킹을 할 때 였다.
문득 이토록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길 위에 서있을까? 란 의문이 들었다.
동시에 나는 왜 매일 아침엔 물집방지제를 바르고 그날 저녁엔 근육이완제를 덕지덕지 바르면서까지 걷는 행위를 지속하고 있을까? 무엇을 위해서?
무려 3일동안 걷는 내내 생각했다. 그 해답은 앞으로도 아마 날 계속 걷게할테지.(그 해답은 따로 기록하기로 한다.)
한국을 떠날 때의 계획과는 다르게 당분간 트레킹은 그만 하기로 했다.
#1. 매일 눈 호강 시켜주는 풍경을 보고 지냈더니 감흥이 덜해졌다. 분명 매년 여름휴가 나오듯이 찾아왔다면 눈물나게 감동스러웠을 것이다. 가보지 못한 아름다운 곳은 아껴두기로 했다.
#2. 주5~6일 회사 다닐때보다 마음은 충만했지만 몸은 피곤했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또 다른 여행을 계속 준비해야 했다. 내일의 여행은 오늘, 모레의 여행은 내일. 이렇게 준비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자야할 시간을 쪼개알아보았고 물가가 비싼 나라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푹 쉬기엔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피로는 쌓여갔다.
푹 쉬고 싶었다.
#3. 한국에만 있었다면 늘 보던 것만 봤을텐데 많은 나라를 다니며 매번 다른 풍경을 보았고 그 곳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몸소 느꼈다. 그 중 정말 감탄스러워 배우고 싶었던 것도 닮고 싶지 않은 것들도 많았다. 그럴때마다 펜을 꺼내 끄적이거나 울트레블 홈페이지에 일기를 썼다. 하지만 그 정도론 부족했다. 이 감정을 잊고싶지 않아 기록하고 싶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생생한 기억이 퇴색하기 전에 기록하고 싶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린 지금 치앙마이에 와있다. 이 곳의 한달살이로 밀린 기록도 지친 몸도 추스릴 수 있었음 좋겠다.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냥 지금 이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이 곳에서 느리게 살아가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