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러 가지 일들로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핑계가 될 수는 없다. 당장 내일 캘리를 가야 하는데 도대체가 글씨 한자 늘지를 않았다. 연습을 안 했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이럴 거면 등록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어떤 일이든 마음먹으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몸상하는 줄도 모르고 달려들던 예전에 희야가 아님을 진즉에 알았어야 했다.
아침 일찍 서둘러 갔음에도 H는 벌써 강의실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결론은 다음 분기 캘리를 접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어이상실. 단 한 번 결석 없이 열정적으로 없던 반장역할까지 자청하며 캘리그래피에 진심을 다했던 그녀였으니 말이다. 내막은 이랬다.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탓에 지역명을 제대로 확인 안 하고 다른 동 문화센터에 등록을 했단다. 아뿔싸! 그 사이에 현재 하고 있는 이곳은 마감이 되어버린 것이다.
일단 대기를 신청해 놓기는 했지만, 그것도 4번이라니 쉽지 않을 것 같다. 결국 캘리수업은 미뤄놓고 그녀를 구할 방법을 찾아 턱을 괴고 궁리에 들어갔다. 그녀는 멀리서 왔고, 나야 그다지 절실하지도 않고, 언제든 하고 싶으면 다음 분기에 신청해도 되겠다 싶어, 그녀에게 내 자리를 양보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무실에 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간절하게 요청해 보았지만 형평성 문제로 불가란다. 대기순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섭섭했다. 앞으로 H가 없는 수업이 재미가 있을까?
마지막이 아쉬워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다른 동에 신청한 것도 취소하고, 어촌마을로 돌아갈 생각이란다. 제대로 돌보지 못해 산이 된 풀밭도 정리해야 하고, 감자도 캐고, 양파와 마늘도 수확해야 해서 바쁠 것 같단다. 전번만 주고받았을 뿐 카톡 한번 주고받지 않은 사이였지만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도 어쩔 수 없는 인연이라 생각하며 언제라도 달려갈 테니 아주 외로운 날이 있거든 콜 하라는 말을 남기며 헤어졌다. 나와는 다른 결에 그녀가 많이 생각날 것 같다.
나는 무척이나 불량한(?) 수강생이다. 3개월 12번 하는 수업에 2번이나 빠진 것도 모자라 연습을 해가지 않는 날이 부지기수다. 아무리 무엇이든 열심히 하지 말자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달며 합리화하기 바빴지만 이건 아니다. 아무래도 이 방법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최근에서야 들기 시작했다.
맨 처음 통기타를 배울 때부터 그랬다. 한 가지를 시작하면 너무 물불 안 가리고 빠져드는 통에 열심히는 하지 말자고 했더니 진짜 못하면서 안 했다. 음치박치라 노래도 못하는 데다 열심히 안 하기로 했다는 이유를 들어 연습을 게을리했고. 음악적 재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도 문제였다. 그럼에도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이라도 읊는다고 동아리 팀원들 속에 묻어 연주봉사를 제법 많이 다녔다. 여기저기 지역축제에서 연주를 했고, 주간보호센터. 요양원 등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연주를 했다. 물론 내가 자청해서 시어머니께서 계시는 요양원에 가서도 연주를 했다.
이건 자랑할 일이 아니다. 부끄러운 일이다. 나 혼자만의 재능을 공고히 하며. 동아리에 도움이 되어야 함에도 슬쩍 끼워져서 적당히 묻어가다 보니 별로 남은 게 없다. 언제 어디서나 기타만 들이대면 칠 수 있는 인생곡 하나 없고. 그저 듣기 좋아하는 노래들만 남았다. 그래도 가끔은 그립다. 그렇다고 또다시 한다 해도 더 잘할 것 같지도 않으나, 시어머니에 병세마저 내 마음을 헤집고 있다. 며칠 전에도 통기타 반장님으로부터 등록해 달라는 카톡이 왔다. 먼지 쌓여가는 저 기타 집을 열어볼 날이 언제일지는 나도 모르겠다.
H를 구해보겠다는 명목하에 몇 가지 이유를 나열했지만 정작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2~3주 전이었을까, 캘리수업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다 글쓰기 수업에 대한 홍보문구를 보았다. 여기서도 그런 수업이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으~~~ 문제를 달고 사는 여자. 보지 말았어야 했다. 과연 내가 그 수업을 들어야 할까? 아니면 처음 생각했던 대로 나하고 싶은 대로 밀고 나가야 하나?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등록은 안 하고 고민에 빠졌었다. 이참에 그 핑계로 자리를 양보하고 그 수업을 들어보지 뭐, 잠시 그리 생각을 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 고민은 ing 중이다. 가장 큰 이유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방식이 맞는지도 모르면서 '나만에 글쓰기'가 사라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 같지도 않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거이 글린이로서 가당키나 한 생각일까.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분명 강사님도 글쓰기에 대한 방향과 철학이 있을 것이고, 두 정거장이나 걸어가서 들을 만큼 가치가 있고 도움이 되려나. 어느 결정이 맞는 것일까요? 묻고 있는 내가 더 웃기다. 지가 알아서 할 일이지. 그래도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어쨌든 잠시의 해프닝으로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갔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못해내면서 고민만 줄줄이 달고. 이렇게 세월아 네월아 글만 써대고 있다. 사실 글 쓰고 읽고 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다 보니 두 가지를 한꺼번에 못하는 나에 핑곗거리로서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래도 어차피 시작했으니 앞으로 좀 더 캘리그래피 연습하는 시간을 늘리고, 글쓰기수업을 접수할지는 좀 더 생각해 보려고 한다. 한꺼번에 다해낼 수 있을지 그건 장담할 수 없지만, H의 안녕을 빌면서 다음 캘리시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