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그리고 획
점, 하나에 설렘이 일고
점. 하나에 시름을 달래며
점, 하나에 고통을 덜어내고
점, 하나에 슬픔을 모두 흘려버린다.
획, 하나에 정성이 묻어나고
획 하나에 기쁨을 노래하고
획, 하나에 즐거움을 한데 모아
획, 하나에 희망이 조금씩 자라난다.
도저히 절대로 늘 것 같지 않던 글씨가 아주아주 조금씩 만만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보아도 잘 쓰는 글씨는 절대절대 아니다. 그냥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약간은 써진다는 사실에 홀로 감격스러워하곤 한다. 대책 없이 자기애가 충만한 나 자신이다. 겸손이라는 단어는 어쩌고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그러다 말없이 지나치는 강사님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아직까지 글씨가 늘었다는 소리를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으니, 그 망상을 누가 말릴거나.
H의 소식을 들었다. 강사님께서 조용히 다가와 오늘 수업 끝나고 잠시 들른다고 했으니, 시간 되면 보고 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은 줄 알았던 장염이 다시 신호를 보내는 통에 바로 집으로 달려왔다. 병원을 다녀오고 약을 먹고 나니 살만해져 전화를 했다. 전번 교환 후 처음 하는 통화다. 참 낯설다. 그래도 많이 아팠다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난데없이 코로나19 감염으로 꽤 긴 시간을 죽을 만큼 아팠다니, 아는 사람도 없는 외지에서 고생했겠구나 싶어 안쓰러웠다.
다행히 다음 달부터 다시 올 수 있다는 소식에 한줄기 빛처럼 기쁨이 솟아난다. 그녀가 오지 않는 캘리 시간은 낮게 흐르는 음악뿐 누구 하나 말이 없다. 그야말로 적막강산에 한지 스치는 소리만 간간히 들릴뿐 긴 수행에 들어간 수도승처럼 고요를 삼키고 있다. 어떤 재미난 이야기들로 비구니가 되어 가는 이 중생들을 일깨워줄지 기대가 된다.
나 역시 코로나19에 감염되어 한바탕 곤욕을 치르고 나니 캘리가 있는 화요일인 것도 까맣게 잊고 말았다. 느지막이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다 앞에 걸려있는 붓을 보고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급하게 씻고 가방을 챙겨 헐떡거리며 강의실에 들어서니 기대했던 H는 없고 늦은 탓에 뒤쪽에 빈자리들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쓸쓸하다.
그래도 어쩌랴. 도구들을 펼치고 이주동안 꺼내보지도 못했던 붓으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재미가 없다. 관계란 참 오묘하다. 캘리반은 신기하게도 그 흔한 카톡방도 없다. 우리 대한민국의 아줌마들에 특징은 보통 만났다 하면 모임을 만들고 단톡을 만들고 으쌰으쌰 강사님을 응원하고 그러지 않았던가. 내가 다녀본 다른 반들은 그랬었다. 심지어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러 가고 그랬는데 여기는 아니다.
말없이 왔다가 조용히 사라지고 길에서 만나도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 더 신기한 것은 분기마다 수강생들 얼굴이 자주 바뀌고, 수강생들 간에 서로를 궁금해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하니 굳이 단톡방을 만들어야 할 이유도 없고, 잠시 기대를 했던 H마저 나오지 않다 보니 해오던 방식대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강사님마저 조용조용하시다. 오늘도 좋은 말씀을 담백하게 하신다. '옆사람도 앞사람도 SNS도 비교하시지 말고 내가 전 시간에 썼던 글씨들을 보며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시면 좋겠다'라고.
젊으신 강사님임에도 야무지시다. 융통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글씨만큼이나 올곧은 분이신 것 같다. 꾸밈도 없고 필요한 말씀만 간간히 하시며, 서두르지 않고 수강생들을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살짝이 지도를 해주신다. 스승이란 특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에서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고 깨우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는 그런 분이 진정한 스승이지 않을까 싶었다. 강사님에 글솜씨가 수려하거나 말솜씨가 특출 나기보다는 그 됨됨이 만으로도 참 좋은 스승이라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