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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Sep 10. 2023

황혼육아가 어때서요

황혼육아!

황혼기의 조부모가 손주를 맡아 기르는 일을 일컫는다지요. 예전의 대가족제도에서는 아이만 낳아 놓기만 하면 집안에 조부모께서 아이를 돌봐주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역시도 시어머니께서 큰아이를 돌봐주셨기에 계획하에 연년생으로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적적하게 계시다가 손주를 낳아 놓으니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늘 업고서 마실을 나가시고, 시장에 다녀오시기도 하셨습니다.


도 딸이 20대 중반을 지나 결혼하여 외손주가 태어나면서 일찍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딸이 직장에 나가야 하기에 임신이 되자 아이돌보미교육을 받았습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맞추어 돌봄의 방법도 다양하고 지켜야 할 일도 많았습니다. 우리 세대처럼 그냥 낳아서 돌이  때까지 젖을 먹이는 그런 시대가 아니기에 새로운 육아방법들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아를 하면서 가장 요구되는 것은 '인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자식 같으면 별생각 없이 아니면 아니라고 바로 통제에 들어가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충고를 하면 되었습다. 하지만 손주들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청소년교육학을 전공하며 프로이트나 에릭슨의 발단단계를 알게 된 이상 그 시기에는 그런 행동을 한다기에 그러려니 하며 참고 지켜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꼬물꼬물 세상을 다 주어도 모자랄 만큼 귀하고 예쁘다지만 아이가 통제가 되지 않을 때는 속에서 천불이 나지요. 그래도 릴랙스를 하며 참아야 합니다. 책에서 배운 대로 차근차근 설명하고 달래주고 지극히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황혼육아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극단적으로 부모를 골병들게 하는 일이라며 불쌍히 여기듯이 동정하고 안타까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내 몸이 불편함에도 이 팍팍하여 돌봐줄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몇몇 사람의 경우를 보고 일반화시키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건 돌보는 사람이나 부탁해야 하는 자식에게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아이를 돌봐줄 테니 너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 100세 시대에 60대이니 이도 젊은 편에 속합니다. 하물며 30대 후반인 딸이 그냥 아이만 키우며 산다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전문직 여성으로서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살아온 세대는 결혼을 하면 무조건 직장을 그만두었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밥하고 빨래하며 집안일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시대였습니다. 시대는 변하기 시작했고, 기혼여성들도 하나둘 일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려고 애쓰는 과도기적인 중심에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집에서 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던 일들이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자, 애들 맡기고 나간다며 불편한 소리들이 들려왔습니다. 본인들은 일을 한 적이 없기에 이해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으나, 아이를 유치원까지 보내고 나왔음에도 시선이 곱지 않아서 힘이 들었습니다. 여성에 적은 여성이었지요. 그것이 자식으로서 당신 엄마에 대한 염려이든 나에 대한 못마땅함이든 내가 감내해야 할 문제였기에 그럴 때마다 일을 그만두기도 하고 버티기도 했습니다.


그러했으니 내 자식만큼은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습니다. 퇴근시간마다 '엄마 나 지금 퇴근해' 하며 신이 난 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참 잘했다 싶습니다. 집안일을 떠나 또 다른 사회에서 어울리고 성취를 해나가며 성장해 가는 모습이 예쁘기만 합니다. 저역시도 그랬으니까요. 일찍 아이들을 키워놓은 탓에 나하고 싶은 것들을 요리조리 눈치 보면서도 할 건 다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후회되는 것도 아쉬운 것도 없는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연 내 자식에게도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일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지요. 다행히 꼬맹이들도 초1, 초3으로 말이 통하고 손이 많이 가지 않기에 돌봐줄 만합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쉬워진 건 아닙니다.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동안 오며 가며 도와줄 때는 마음만 앞서다 보니 힘든 점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은 욕심에 억지로 붙들고 영어단어를 외우고 숫자를 헤아리고 유난스러웠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이건 아니다 싶었지요. 때가 되면  하게 되는 것을 아이들과의 관계만 불편해지쓸데없는 욕심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에구 더웠지 힘들었겠구나' 하며, 원하는 간식을 주고 정해진 숙제를 하면 잘했다고 칭찬을 해줍니다. 힘들어하면 나중에 하라고 합니다. 서로 아웅다웅해 봐야 꼬맹이도 나도 속상하니 서두르지도 조급해하지도 않기로 했습니다. 다만 딸과 자주 소통하며 꼬맹이들 먹거리에 신경 쓰고 안전에 대해서만 염려하다 보니 힘든 이 줄어듭니다. 지금도 훈이가 감기로 숙제를 하다 잠이 들었네요. 얼른 저녁을 해서 먹이고 약을 먹이려고 합니다.


이도 오래지 않아 내손을 떠나게 될 입니다.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쯤 되면 어차피 늦게서야 집에 돌아오니 내가 돌봐줄 수 있는 것도 기껏해야 5~6년에 지나지 않습니다. 길다면 긴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인생전체를 펼쳐놓고 보면, 남아있는 60대를 육아로 보낸다 해도 70대, 80대의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하니 황혼육아로 60대를 보내고도 얼마든지 편안한 노후를 누릴 수 있습니다. 늘 새벽같이 일찍 일어나시고 부지런하셨던 친정엄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죽어지면 여한 없이 잘 텐데 잠 좀 덜 자는 게 뭔 대수냐고요.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남을 위해서도 베풀어야 하거늘 내 자식을 위해서 하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조금은 힘들고 자유롭지 못한 시간들 때문에 편하지는 않겠지만, 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해나가려고 합니다. 황혼육아, 힘들게만 바라보지 말아 주세요. 내 자식을 위해서 하는데 뭔들 못하겠습니까. 부모에 마음은 그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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