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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Oct 13. 2023

네가 아프면 난 슬퍼

천사야 미안해!

조잘조잘 쉼 없이 떠들더니 갑자기 아무 소리가 없어 돌아보니 잠이 들었네요. 웬만해서는 아무 곳에서나 이 들지 않는데 오빠들이랑 노느라 고단했나 봅니다. 세 번째 꼬맹이 천사입니다. 태명도 어찌 그리 찰떡같이 지었는지 조막만 하니 천사처럼 어여쁜 얼굴에 어느새 마음도 훌쩍 자라 떼 한번 쓰는 일 없이 생글생글 눈웃음에 애간장이 녹을 지경입니다. 놀아달라 보채는 일 없이 알아서 이 장난감, 저 장난감을 가져다 놓고 중얼거리며 놀거나, 책을 보기도 하며 혼자 자라 버린 듯합니다.


그런 천사가 아파요. 무려 할머니집에 온 2주 내내 약봉지를 달고 살았어요. 올 때부터 감기로 약을 먹고 있었지만 그게 더 심해져 계속 약을 먹다가 장염까지 걸려 수액주사까지 맞았습니다. 그 어린것이 울지도 않고 참는 모습이 어찌나 안쓰러운지요. 더도 덜도 말고 1킬로만 몸무게를 늘려서 보내자 했더니만 장염으로 먹지를 못하니 늘기는커녕 내가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그런가 싶어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할머니! 땅콩빵이 먹고 싶어요.

그래 내일 사러 가자.


할머니! 소고기도 구워주세요.

그럼, 나으면 얼른 구워줄게


할머니! 키위도 주세요.

반 잘라서 수저로 떠서 게요.


할머니! 꼬북*도 사주세요.

오빠들이랑 같이 먹을 거예요


할머니! 두부도 구워주세요.

할머니! 짜파게*도 해주세요.

.......


먹고 싶은 것들은 자꾸만 늘어가는데 며칠을 죽과 누룽지만 먹여대니 그 애절함이 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해도 의사 선생님께서 모레부터 먹어야 한다 했으니 울먹이면서도 참아야 합니다. 의젓하게 참는 모습에 더 마음이 아려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오늘은 여섯 번이나 조금씩 죽과 누룽지를 푸우욱 끓여 몇 수저씩 나누어 먹였더니 저녁쯤엔 많이 좋아진 듯싶습니다. 오빠들과 저녁을 먹으며 갈치살을 발라 죽 위에 얹어주었더니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요  '할머니! 맛있어요 더 주세요'를 하는데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이렇게 먹고 싶었는데 어찌 참았을꼬...


저녁을 먹고 말캉한 손을 잡고 문고에 다녀왔습니다. 할머니책도 고르고 천사도 책을 골랐습니다. 두 번을 읽어 주었더니 스르르 잠이 들었네요. 이제 낼모레면 가야 할 텐데 걱정이 태산입니다. 겨우 며칠 돌보면서 어린애를 이지경으로 만들었으니 여행에서 돌아오시는 사돈께 죄송스럽고, 우리 천사에게는 더없이 미안하기만 합니다. 아무리 애본공은 없다 해도 마음이 너무 무겁습니다.


내일은 아침부터 바쁠 듯싶습니다. 두부도 구워야 하고, 키위도 반 잘라서 줘야 하고, 땅콩빵도 사러 가야 하고.... 무엇인들 못해주겠어요. 먹고 싶은 것들을 나열할 때마다 아쉬움이 가득한 천사의 모습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다 해주마' 하고 안아주기만 한걸요. 너무 빨리 커버리는 건가 싶어 아쉽기도 하지만, 있는 동안 더 잘해줄걸 하고 늘 후회 남습니다. 그럼에도 오빠들처럼 얼른 커서 감기도 장염도 덜 했으면 좋겠습니다. 먹지도 못하고 열까지 올라 쌕쌕거리면서도 조용히 참는 모습이 어찌 그리 지아빠 어릴 적 모습하고 닮았는지요. 후딱 나아져서 우리 씩씩하게 산책도 하고 포켓몬카드도 많이 사러 다니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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