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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Nov 04. 2023

언니! 곱고 예쁜 나의 언니!

마지막 고추장을 담그던 날

언니! 언니! 곱고 예쁜 나의 언니! 제목만 써 놓고도 울컥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릴 듯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또 잠을 설쳤는지 눈은 퀭하니 얼굴에는 피곤함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고추장마저 튀겨 빨간 점을 이루고 있어도 여전히 곱고 예쁜 나의 언니입니다. 한평생을 일밖에 모르고 평범치 않으셨던 시부모님 가시는 날까지 뒷수발을 들고, 오직 언니 손이 가야 하는 농사일에 치이면서도 세 아이를 낳아 키우느라 오직 남은 것은 망가져가는 불편해진 몸뿐입니다. 두 번의 허리디스크 수술과 목디스크에 코로나 후유증으로 더 심해진 알레르기까지 이제 할 일 다 하고 편히 살아보나 했더니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언니는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농부의 5남매 중 살림밑천인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살림밑천답게 겨우 기본교육만 받고 어린 나이부터 일 나가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부엌살림을 도맡아 하며 줄줄이 어린 동생들까지 돌봐주어야 했지요. 그렇게 살림만 하며 자란 어여쁜 규수는 어찌나 곱던지 근방에서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며 매파를 보내고, 심지어 학교총각선생님 귀에까지 들어갔는지 담임도 아닌데 어린 나를 꾀어 가정방문까지 왔습니다. 그런다고 넘어갈 언니가 아니었지요. 그러나 혼기가 되었으니 누구도 주고 싶지 않은 아까운 딸이었지만 보내야 했습니다. 하여 지인이 마련한 맞선자리에 나갔다가 앉고 보니 국민학교 동창생인 형부를 만났지요. 언니는 동창생이라 싫다 하였지만 형부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국 23세의 꽃다운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었답니다.


긴 생머리에 허리는 24, 늘씬한 키에 심성 착하며, 집안에서 살림만 했으니 잡티하나 없이 희고 고왔던 언니. 어린 내가 보아도 우리 언니보다 예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그런 언니가 시집을 갔다니 예식장에서는 덤덤했는데 언니가 없는 집에 오니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가 중2였는데 못 배운 것이 한이 된 언니는 너라도 배워야 한다며 아버지를 설득해 나를 중학교에 보내고, 내교복을 언제나 반짝반짝 이 나도록 깨끗하게 빨고 숯불다리미로 일일이 다려서 입혀주곤 했습니다.  그뿐인가요. 가난한 살림에 용돈이 어디 있겠어요. 아무도 모르게 언니는 자주 내손에 돈을 쥐어주곤 했지요. 철없던 나는 그 돈으로 학교 앞에서 생전처음 라면도 사 먹고  더운 날 자전거를 세워놓고 친구들과 하드도 사 먹곤 했습니다.


그랬던 언니가 집에서도 어려서부터 일만 했는데, 시집을 가서도 살뜰히 시부모님을 보필하며 가시는 날까지 약주를 기시는 두 분의 시중을 들고, 범상치 않은 신우님 세분에 막내로 삼대독자인 형부사이에 아이 셋을 낳아 길렀습니다. 언니의 인생살이야말로 글로 쓴다면 책 한 권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늘 받기만 하는 이 여동생이 갈 때마다 허리휘는 줄도 모르고 쉴 새 없이 이것저것 챙겨주고 싶어 분주하기만 합니다.  


그런 언니가 가엷고 안쓰럽고 미안하여 마지막이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고추장을 담그는 날입니다. 이미 작년에 마지막 된장을 담갔고, 김장거리도 형부께서 온갖 야채를 골고루 다 심어놓으셨으니 어쩔 수 없이  올해까지만 가져가고 아예 김장을 하지 않고 사 먹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염치가 있지 더 이상 구부러져가는 언니의 허리를 지켜나갈 방법이 없기에 뒤늦은 줄 알지만 이렇게라도 하기로 습니다.




며칠 전부터 고추장거리를 준비하느라 매일 저녁 통화를 하며 고추장을 수십 번은 담갔지요. 금요일이라 차 막히기 전에 일찍 와서 담가야 한다고 몇 번을 당부했건만 출근시간과 맞물리며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늦어지고 말았네요. 이미 온갖 재료들의 투하가 끝나고 커다란 다라이안에 가득 채워진 고추장의 덩어리 진 것들만 풀어주기 위해 저어주는 일만 남았습니다. 긴 대형나무주걱을 요령껏 저어주어야 하지만 그런 재주가 있을리가요. 형부께서 휘휘 썩썩 저어주니 결국 우리는 쳐다만 보고 언니와 형부 손에 의해 마무리가 되고 맙니다.


고추장 담그는 데는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이렇게나 많은 재료들이 들어갔었나 새삼스럽기만 합니다. 행여 빠트릴세라 언니가 적어놓은 레시피를 보니 고추장에는 고춧가루 말고도 메주가루, 보리쌀 띠운 것과 물엿, 소주, 물을 끓여 소금을 녹인 물까지 들어갔다네요. 이른 아침부터 이 많은 재료들을 준비하여 빠짐없이 넣고 버무릴 생각에 언니는 분명 잠을 설쳤을 것이고, 그러하니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붙어있을 수밖에요. 잘 저어져 몽글몽글했던 덩어리들은 모두 사라지고 곱디 고운 빨간 고추장이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 빛깔이 그 어느 빨강보다 빛이 나고 언니만큼이나 예쁩니다.


언니는 이제 고추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불편한 허리로 고추가 붉어지는 대로 따서 말리는 일이 버거워진 일이거니와 조카들의 걱정도 만만치 않은지라 어쩔 수 없이 접어야 했습니다. 그러하니 나 역시 다른 곳에서 고춧가루를 사고, 고추장도 알아서 해결할 것이니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단서를 였습니다. 하지만 언니는 고추장 담근다는 것은 핑계일 뿐 시골공기도 마시고, 동생얼굴도 보고. 푸성귀라도 가져갔으면 해서 오라 한걸 잘 압니다. 적당히 불어 더 고와진 고추장을 반질반질한 항아리에 담아 소금 한 줌 뿌려 농막 한편에 마련된 이 잘 드는 곳에 옮겨 놓았습니다.


언니는 허리가 안 좋아지자 몇 해전에 시골집을 정리하며 농사채도 줄이고 가까운 읍내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하여 작은 농막을 지어 오가며 채소들을 심고 가꾸며 소일거리로 하자 했음에도 하던 가락이 있기에 그것이 쉽지 않나 봅니다. 양이 많아지니 무리가 가고 병원에 가는 횟수가 더 많아지니 줄여야 하는 것들이 더 늘어만 갑니다. 더구나 유난히 깔끔하고 게으름이 없으니 칠십을 넘기는 언니지만 고운 얼굴에 비해 불편한 허리가 내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합니다. 10분을 채 걷기도 힘겨워 쉬어야 하니 겨우 아쿠아에 다녀오거나 농막이 유일한 놀이터인데 이 마저도 하기 쉽지 않으니 때로는 억울한 생각이 든다 말할 때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래도 뒤늦게 운전을 배우고 못하는 것이 없는 언니지만 미련이 남은 배움을 하고 싶어 했으나 오래 앉아있는 것마저 무리가 되어 그만두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안타까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하니 우리 형제들은 모두 언니말이라면 단 한 번도 No를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언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오직 그것밖에 없으니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흐르는 눈물을 훔치느라 자꾸만 더뎌지기만 합니다. 부디 언니몸 소중히 아껴가며 조금은 더러워도 못 본 척하고 대충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언니!

아버지, 엄마도 다 가시고 여형제는 우리뿐인데 언니말대로 오래도록 저녁마다 비록 전화지만 그날에 일들을 남김없이 풀어내며 재미있게 살아보자. 언니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아나. 언니도 그랬지. 부모님이 너를 안 낳아 주었으면 어쩔 뻔했느냐고. 우리 서로 그렇게 의지하며 예쁘게 살아가자.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언니 사랑해!

내 언니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언니가 준 야채로 물김치와 갓김치도 담그고 아웃국에 가지나물, 시금치,쑥갓을 조물조물 무쳐 맛있게 먹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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