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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Mar 14. 2024

TV 속에서 친구를 만나다

이런 일도 있네요.

우리가 지금처럼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둘만의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칠 남매의 장남으로 갑자기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신 지 1년도 채 안되어 결혼을 했기에 빚만 없었지 가진 것은 한 푼도 없이 부양해야 할 가족들만이 줄줄이 한 사람만 바라보고 있었다. 망자가 되니 돈을 빌려줬다는 사람은 있어도 빌렸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한다. 결국 집까지 경매로 넘어갈 지경에 그 사단을 해결하느라 그가 만신창이가 된 줄도 모르고, 그때의 시류에 따라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딸린 입을 하나 더 보탰다.


몇 달 만에 쌀이 떨어지고 결혼패물을 팔아 보태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꼭 필요치 않은 모임을 중지하는 것이었다. 만남을 주도하고 싱글의 삶을 누렸던 그는 오직 먹고살기 위해 거의 모든 모임에서 빠졌고 나 또한 어떤 모임도 가지 않았다. 물론 얼굴 보고 맛있는 것 먹으며 정답게 이야기 나누고 좋은 것은 알겠지만 그러기에는 가진 것도 정신적으로도 여유롭지 못했다.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내가 꿈꾸는 미래를 해서는 감내해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많은 세월을 살았고 소소하나마 우리의 꿈을 이뤘다. 지금은 새로운 모임들, 다시 찾은 얼굴들을 맞이하며 차 한잔, 밥 한 끼라도 기쁘게 살 수 있다며 친구를 만나러 가곤 한다. 그런 와중에 옛 친구를 TV에서 만났다.




오후동안 각자의 스케줄을 소화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며 우리 부부는 TV를 본다. 하루일과를 마치고 편안하게 이런저런 사는 모습들을 보며 담소를 나누는 것이 우리의 작은 즐거움이기도 하다. 오늘도 식탁에 한가득 저녁상을 리고는 TV를 틀었다. 미스터리가 사진 한 장 들고 00곳곳을 소개하며  0바위를 찾는 과정이 그려졌다. 뒤이어 00 지역에서 아내와 함께 한옥집에서 정답게 사는 부부의 모습이 방영되었다. 보자마자 40여 년이 흘렀건만 젊은 날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며 어디서 본듯하다며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해 보니 부부가 은퇴 후 한옥집을 짓고 노후를 보내고 있으며 친절하게 연락처까지 나와 있었다. 마침 예전의 연락처와 비교하니 뒷번호가 일치하고 자막에 뜬 이름도 같으니 분명 그 친구였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하니 통화가 되지 않아 00동에서 함께 살던 00이라고 문자를 남겼다. TV에서나 보던  일이 우리 집에도 일어났다.  


결혼 후에도 몇 번 오셨던 것 같은데 얼굴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목소리가 크고 몸집이 컸었던 기억만이 흐릿한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그 풍채는 여전하시다. 잠시 후 전화가 걸려왔고 역시 남자들의 세계는 알 수가 없는 것인지 TV 보고 네가 사는 모습이 좋아 보여 연락을 했다 하니,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의 안부를 묻는가 싶더니 채 5분도 안되어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올 텐데 다음에 한가할 때 통화하자며 끊어버렸다.




뭐 이리 맹숭맹숭한 거지...

40여 년 만인데...

웬만한 사람들 같으면

야! 이게 뭔일이라냐.  

이렇게 다시 목소리를 듣다니 너무 반갑다. 그동안 잘 지냈니 등등등.... 아무리 바빠도 그 정도는 해야 되지 않나. 그렇게 친했던 친구가 맞기는 맞는겨. 내가 알기로는 분명 맞는데 옆에서 괜스레 호들갑스럽게 빨리 연락해 보라며 흥분했던 나만 머쓱해졌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여행도 할 겸 지나는 길에 들러보기로 했다.


어쨌든 어릴 적 친구를 찾았고 한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그 일로 이야기꽃을 한껏 피우며 지난날들을 회상하리라. 살아있으면 만나지기도 한다. 잘 살아내다 보면 거리낌 없이 언제든지 연락하고 밥 한번 망설임 없이 살 수 있으니 그 또한 축복이다. 힘들어도 이겨내고 열심히 살아보자.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선물 같은 날들이 오리라. 노력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극단적이지만 "죽어지면 실컷 잘 것이고 썩어지면 아무 소용없는 육신 놀리면 뭣허냐"고 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떠오른다.



덧글.

 신기한 것은 지금도 자주 만나고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보니 다 같이 그 프로를 보았건만 아무도 그 친구의 모습을 기억해내지 못했고, 우리 집에서만 그 친구를 알아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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