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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Apr 16. 2024

"함께"가 주는 따스함

외로운 B를 위하여

주말을 온통 꽃놀이로 보내고 게으르고 싶은 한 주를 시작했다. 꽃놀이도 한두 번이지 연이어 며칠을 다녔더니 집에서 편히 쉬지도 못하고 몸이 휴식을 달라 아우성이다. 그럼에도 또 약속을 해버렸다. 기타 동아리에서 함께 했던 두 살 위인 B로부터 콜이 왔다. 아~ 또 무엇이 문제일까? 본인 일상에 무엇인가 시끄러운 일이 일어나면 전화를 하곤 한다. 시간 되면 밥이나 먹자고 하는데 외로운 B의 청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리조트 운영책임자로 제주도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큰아들은 지방에서 요즘 잘 나가는 컴**카페를 2곳이나 운영하느라 정신이 없다. 작은 아들은 레지던트 2년 차로 요즘 시끌시끌한 그 문제로 병원에도 못 나가고 한강에서 제트스키 자격증을 땄다나 어쨌대나. 여하튼 그녀는 외로운 사람이다. 오전시간을 짬 내어 가까운 곳에서 점심을 먹고 수변공원의 벚꽃길을 산책하기로 다. 당일이 되어 준비하면서 그것이 참 마음에 걸린다. 나는 며칠을 여기저기로 꽃구경을 다니고서는 겨우 동네꽃구경이나 시켜주는 것 같아 불편함이 여기저기서 콕콕 찌르는 것 같다.


물론 우리 동네도 나름 데이트코스로 맛집과 카페촌으로 형성되어 연인들의 성지라 하지만 며칠 전에 본 그곳과는 비교가 안된다. 결국 급하게 카톡을 날렸다. 차를 끌고 B의 집 앞으로 갈 것이니 기다리라고. 그러지 않아도 바쁘게 사는 사람이 정성이 뻗쳤다. 분명 천당 갈 것이여. 때마침 그 벚꽃명소를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단다. 아암~ 그래야 내가 시간을 낸 보람이 있지. 부지런히 차를 몰아 곁님과 함께 갔던 코스로 벚꽃산책을 다시 다.




며칠사이에 만개하여 분홍꽃잎이 수없이 날리고 주중이라 인파도 적고 운치 있는 그 길을 연이어 오다 보니 커다란 감흥까지는 아니지만 B의 프사를 위해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희야 고맙다!

덕수궁, 남산. 한옥마을, 청계천, 인사동 내가 못 가보았다고 다 데리고 다녀주었는데 여기도 같이 오고 너무 좋다!"

"나도 덕분에 오랜만에 다시 갔다 오고 좋지 뭐."

아무렇지도 않은 척, 쿨하게 좋은 척했다. 아니 다시 오랜만에 가서 나름 좋았었다. 벚꽃투어를 마치고 전에 먹었던 그 자리에서 추어탕을 먹었다. 여기 진짜 맛있다며 B는 명함까지 챙겼다. 아 오늘의 일정은 대성공이다.


시간이 촉박하다. 큰손자 윤이 다리에 종기가 생겨 2시에 피부과를 가기로 약속했으니 마음속은 파닥거리는데 그 사연봇다리는 아직 풀지도 못했다. 식사 후 급하게 차를 몰아 집 근처 커피숍에서 그 이야기봇다리를 서둘러 풀도록 했다. 도대체 60 중반을 넘어선 이 어르신들의 나이는 도대체 어디로 드신 건지. 여중, 여고생도 아니고 사소한 문제로 친하게 지내던 S와 데면데면해졌다며 본인 편을 들어달라는 눈빛이 간절하다.

속상했겠다!

서로 뭐 그럴 것까진 없는데 왜 그랬을까.


나는 안다. 머지않아 또 그들은 가까워질 것이고, 한참 동안 나를 찾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러니 나는 어느 한쪽도 잘했다 못했다 절대 말하지 않는다. 적절하게 중립을 유지하며 그녀의 마음을 알아줄 뿐이다. 다행히 그녀도 나의 상황을 아는지라 하소연의 시간은 아주 짧게 마무리되었고, 시간이 넉넉했으면 집에까지 태워다 주고 올 텐데, 멀지 않으니 천천히 걸어가겠다는 배려(?)에 고맙기까지 했다. 그녀는 차도 없고 운전면허증도 없다. 거의 매일을 덩그러니 커다란 아파트에서 홀로 지내는 시간들을 견디며 산다.




그럼 왜?

그녀와 가까이 지내느냐고 묻는다면 콕 집어 댈 만한 분명한 이유는 없다. 다만 인간은 때때로 외롭다. 나도 언젠가는 사무치도록 외로울 수도 있다. 그때를 위해 저금해 놓는다고 하면 이유가 되려나. 설령 다른 누가 나의 외로움에 도움을 주지 않더라도 괜찮다. 내가 시간이 되고 누군가를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다.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해 보여도 한 발짝씩 들어가 보면 걱정 하나쯤 없는 이를 찾아보기 어렵고,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지 않은 이가 드물다.


그러하니 우리는 크든 작든 조금은 번거로울지라도 함께 가야 한다. 너도 나도 웃고 우리가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너로 인하여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 좋았다고 수없이 말하는 그녀를 보내고, 시간을 내준 만큼 헐떡거리며 다음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고생했지만 마음만은 홀가분하다. 타인을 위해 내준 시간 이상으로 나의 시간도 뿌듯함으로 채워진다. 거창하게 이타심이라 말하기는 그렇고 그냥 함께이고 싶다. 함께라는 말이 주는 그 따뜻함이 너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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