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월의 따가운 햇살을 이고 꽃봉오리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도라지 밭을 지날 때면, 어머니의 고단했던 삶이 스치곤 했다. 보라색, 흰색꽃이 어우러져 별모양 같기도 종모양 같기도 한 오목한 봉오리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순수한 그 모습에 한참을 머물곤 했다. 어머니께서는 산밭 한 귀퉁이에 심어놓은 도라지 밭에서 기제사나 명절이 되면 필요한 만큼씩만 캐다가 껍질을 벗겨 나물을 해주셨다. 하늘의 별이 되기 전까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시고 틈만 나면 마늘을 까고 밤을 까고 도라지를 까서 오는 자식들 손에 들려 보내는 것이 당신 최고의 낙이셨다.
늘 몸이 차고 추위를 타는 딸을 위해 도라지를 캐고 온 산을 헤매며 잔대, 구절초를 캐서 다려주셨지만 쓰다는 이유로 먹지 않고 버려지곤 했다.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얼마 큼의 정성이 필요한지 알기에 그저 죄스러울 뿐이다. 진작 알았더라면 지금 이렇게 고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도라지는 기관지나 호흡기 질환에 도움이 된다. 하여 약재로 많이 쓰인다고 하는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손수건이나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사는 내게는 무척이나 유용한 식재료다. 늦었지만 이제서라도 내손으로 잘 챙겨 먹으며 막바지 추위를 무사히 건너가 보려고 한다. 좀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좋은 약재임에도 한국, 일본, 중국외의 다른 나라에서는 잡초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뿌리에 영양분을 듬뿍 품은 봄도라지가 싱싱하니 그 향과 맛이 아주 일품이다. 셰프 위에 좋은 식재료가 있다는 최현석 셰프의 말처럼 요즘 도라지가 그럴 것이다. 요즘은 꽃이 예뻐 관상용으로도 활용되고 여러 가지 반찬으로도 먹게 되는데 오늘은 가장 손쉬운 도라지오이초무침을 만들어 보았다. 물론 며느리가 지인이 직접 만드신 녹진한 도라지청을 보내줄 때마다 한 수저씩 먹을 때면 심적일지라도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 재료 및 양념
까서 절여 씻은 도라지 220g, 오이 1개, 쪽파 2 수저, 마늘 1 수저, 고추장 1 수저, 고춧가루 2 수저, 올리고당 1 수저, 설탕 1 수저, 2배 식초 2 수저, 소금 반수저 정도, 참기름 1 수저, 통깨 1 수저(양념은 재료의 양에 따라 조절한다)
1. 껍질을 벗긴 도라지는 반을 갈라서 먹기 좋게 3~4센티로 잘라 설탕 2 수저를 넣어 절여주고, 오이도 역시 같은 크기로 도톰하게 잘라 설탕 1 수저 넣어 절여주었다.
2. 그 사이에 양념을 만든다. 볼에 잘게 썰은 쪽파 2 수저와 다진 마늘 1 수저, 고추장 1 수저. 고춧가루 2 수저, 2배 식초 2 수저, 올리고당 1 수저, 설탕 1 수저, 소금 반수저를 넣어 섞어주면 양념장 완성이다.
3. 절이는 시간은 1시간 정도 걸렸다. 오이는 금세 절여지지만 도라지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렸다. 도라지와 오이를 재빠르게 한 번 헹구어 체에 밭쳐둔다. 절여진 도라지와 오이를 양념장에 넣어 골고루 잘 무쳐주면서 통깨와 참기름으로 마무리하면 새콤 달콤 매콤 맛있는 도라지오이초무침이 완성된다. 싱거우면 소금을 추가하면 된다.
* 오징어채를 한 줌 넣어 같이 무치면 물기도 안 생기고 더 맛있다. 첫 번째는 넣어서 먹었는데 두 번째는 깜박 잊고 그냥 무쳤다. ㅠ
손자들에게 감기를 전달받아 입맛이 없던 차에 매콤함에도 끝까지 다 먹고, 두 번째로 무치면서 요리법을 공유해 드리면 좋겠다 싶어서 얼른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요즘 속이 편해져서 매운 것도 제법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이제껏 먹지 못했다니. 조심스럽게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서서히 늘려가고 있는 중이다. 매운 김치도 먹고 무침에 탕들도 가짓수를 늘려가며 다시 한번 음식에 대한 소중함과 그동안 잘 견뎌준 내 몸이 너무 고맙고 기특하다.
덕분에 감기도 물러가고 입맛도 되찾아 과거의 그 화려했던 날들로 되돌릴 순 없겠지만 보리밥에 열무김치 올리고 고추장 반수저 정도는 올려서 썩썩 비벼먹을 수 있고, 쭈삼불고기에 야채 듬뿍 넣어 호호 불며 먹을 수 있고, 낙지볶음에 콩나물과 빨간 양념을 한 수저만 넣어 비벼 먹을 수 있으니 뭘 더 바라겠나. 아직 커피까지는 무리지만 이만큼 되기까지도 몇 년의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정확히 어쩌다 좋아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플 만큼 아파서였는지, 아니면 약을 하도 많이 먹어서 나아졌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반드시 좋아질 거라는 믿음만은 흔들리지 않았고, 여기저기 지치지 않고 병원을 찾아다니다 보니 기능성 소화장애라는 벽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단 한 번도 매운 것을 못 먹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야채 듬뿍 들어간 매콤한 쫄면을 좋아해서 혼자서라도 해 먹거나 분식집에서 호로록 짭짭 거리며 행복에 겨워하기도 했었는데 거기까지는 생각지도 않는다. 지금 이대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어차피 나이 들면 위도 노화가 되어 매운 것들을 적게 먹는 것이 좋다 하니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찾아와 준 건강에 고마워하며 조심 또 조심스럽게 가끔은 위보호제를 챙겨 먹고 있지만 장애라는 것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라 믿고 싶다. 건강만큼은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마시고 맛있는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