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배려로 금요일부터 쉬었으니 무려 10일간의 휴가 마지막날이다. 명절을 보내고 오늘에서야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왔다. 몇 날 며칠을 한 두 가지씩 명절준비를 해내느라 분주한 시간들이었다. 회복하는데도 그만큼 시간이 걸렸다. 어찌어찌 명절을 무사히 치러냈고 홀가분하게 산책까지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달콤한 마카롱까지 사들고 와서 따끈한 생강차로 몸을 데워주었다. 이렇게 하나의 명절을 맞이하고 떠나보내며 또 새로운 날들로 채워나간다. 그때마다 생각나고 먹고 싶은 음식들이 있다.
요즘이야 대부분 사 먹는 분위기지만 이번 명절에는 오랜만에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나 혼자 만들겠다고 했더라면 분명 못하게 말렸겠지만 시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무리 없이 진행이 되었다. 밀가루를 3킬로씩이나 반죽하여 밀어서 만들던 만두피를 미리 150개 정도 주문해 놓았다. 커다란 양푼으로 한가득 준비하던 만두소도 150개 정도에 맞추려 부족한듯하게 준비했다.
3년 만에 만들려니 새삼스럽다. 재료들을 빠짐없이 준비하고 데치고 썰고 다지고 짜고 보통일이 아니지만 재밌다. 명절 이틀 전에 미리 만들어서 김치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바로 들어간 속재료나 양념들을 적어놓아야 하는데 이것저것 다른 재료들을 손질하느라 명절이 며칠이나 지나서 쓰려니 가물가물하다. 다행히 사진이 있어 재료는 정확하나 양념은 몇 수저였는지 알쏭달쏭 간장 3 수저만 생각나서 나머지는 가늠하여 적었다.
* 재료 및 양념
만두피 150매, 간소고기 300g, 간돈육 600g, , 숙주 1킬로, 배추김치 4쪽, 부추반단, 대파 2대, 양파 2개, 당근 1개, 당면 200g, 큰 두부 1모, 고춧가루 2 수저, 달걀 2알. 양조간장 3 수저, 소금 1 수저, 마늘 2 수저, 맛술 1 수저, 참기름 2 수저, 후추
1.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은 김치였다. 김칫소를 모두 털어내고 최대한 잘게 다져주었다. 다지기에 다지면 김치의 그 식감이 사라지기 때문에 번거로워도 다져주어야 아삭함이 씹힌다. 잘 다져진 김치는 김치맛이 어느 정도 남도록 면포에 넣어 적당히 짜준다. 힘을 아껴두자.
2. 숙주와 당면을 차례로 데치고 삶아주었다. 먼저 끓는 물에 숙주를 살짝 데쳐 다져서 꼭 짜준다. 숙주 데친 물에 미리 20분 정도 불린 당면을 삶아 물에 헹구지 말고 그대로 체에 담아 식혀 썰어준다. 당면을 물에 헹구면 물이 흥건하여 썰을 때 미끌거리며 돌아다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3. 부추는 씻어서 잘게 썰어주었고 매운 양파와 대파, 당근은 다지기에 다져주었다.
4. 두부는 면포에 최대한 꼭 짜주었다. 손목 날아갈 뻔했다.
5. 준비한 재료들과 간고기까지 양푼에 모두 담아 섞어주며 양념에 들어간다.
6. 계란 2알과 간장, 소금, 마늘, 맛술, 참기름, 고춧가루, 후추까지 넣어 간을 해준다. 만두소가 질척하지 않도록 재료들을 잘 짜주고 양념도 잘 조절해줘야 한다.(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매운것을 원한다면 고춧가루를 추가하면 된다)
명절 전날 모두 모여 만두를 만들기로 했었다. 허나 뭔 심술인지 밤새 눈이 내린 것도 모자라 새벽부터 더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끝도 없이 내렸다. 6시에 일어나 전을 모두 부쳐놓고 아침을 먹으며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안 와도 괜찮다며 톡을 하니 이미 출발했단다. 행여 미끄러져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얼마나 걱정했던지. 오지 말라 하면 서운해할까 봐 망설이다 늦어졌다. 큰사람 노릇하기 참 어렵다.
모두들 무사히 잘 도착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탁에 빙 둘러앉아 만두를 만들며 제대로 명절분위기를 즐겼다. 여럿이서 만드니 1시간여 만에 후딱 끝이 났다. 양이 너무 적어 영 내 눈에는 차지 않았다. 미리 끓여 놓은 국물에 방금 만든 만두를 넣어 끓여 먹으니 얼마나 맛있던지. 다만 김치를 조금만 더 넣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날은 바빠서 만둣국 사진도 못 찍었다.
여럿이서 먹다 보니 만두 150개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몇 알 남지 않았다. 속재료만 조금 남아 막내네가 가져가고 몇 알 남은 만두를 오늘에서야 끓여보았다. 요즘 만두피는 직접 미는 것처럼 구수함은 없어도 얇은데 터지지도 않으면서 식감도 좋다. 양지와 사태를 푹 삶아서 끓였더니 국물맛이 끝내준다. 지단을 부칠 때는 노른자에 흰자가 약간 들어가도록 분리하여 노른자 먼저 부치면 팬에 들러붙지 않고 잘 부쳐진다. 그다음에 흰자도 부쳐 곱게 썰어 올려주면 예쁘기도 하고 바쁘면 그냥 풀어서 끓여도 맛있다. 국물이 좀 약하다 싶으면 만두 몇 개를 깨뜨려서 그 국물에 끓여도 고기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맛있다.
이번에 해보니 해볼 만하다. 내년에는 좀 더 많이 해서 조금씩이라도 나눠먹고 싶은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떡국 반말도 명절날 아침 한 끼에 거의 다 먹어 치웠다. 집안을 꽉 채우는 장성한 조카들이 듬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동서들과 넷이 앉아 세배를 받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돌아가며 안아주다 기어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우리 집 명절에 마지막으로 참석하는 조카 때문이다. 가을에 결혼하는 조카는 태어나서 집에 오는 순간부터 안아주고 씻겨주며 맞벌이를 하는 동서를 위해 몇 해를 키워주었다. 그러니 어느 조카보다도 유난히 정이 간다. 그런 조카가 이렇게 예쁘게 자라서 시집을 간다니 기쁘면서도 이제 우리와 명절을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리 서운할 수가 없다.
큰 엄마표 빨간 양념꽃게무침을 유난히 좋아하는데 이제 누가 해주려나. 떡국은 밀어 두고 꽃게무침과 밥 한 공기를 말끔히 비울 때부터 울컥했다. 내 맘이야 어떻든 간에 좋은 사람 만났으니 잘 살기만을 바라본다. 언젠가는 이렇게 하나 둘 떠날 것이다. 함께 하는 동안만이라도 가끔이지만 조카들과 지금처럼 행복한 시간들로 채워나가고 싶다.
맛있는 한 주 맞이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