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즈음하여
반짝반짝 빛이 나는 푸른빛에 이끌려 토막 쳐진 생고등어 한팩을 집어왔다. 40여 년 전, 골목집에서 내려오면 10여분 거리에 있는 시장에서 매일 싱싱한 과일과 야채, 생선등을 살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시장초입에 있는 부지런하고 인심 좋은 생선가게 아주머니 덕분에 매일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인천까지 가서 떼어오신 윤기가 좔좔 흐르는 싱싱한 생선들을 맛볼 수 있었다. 지금이야 생선가격도 만만치 않게 올랐지만 그 당시만 해도 고기에 비해 많이 저렴하였기에 자주 사 먹을 수 있는 것 중에 하나였다.
찬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릴 때쯤이면 꽁꽁 얼어가는 동태를 사다 얼큰하게 동태탕을 끓이곤 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콤 달콤 짭조름한 고등어조림이 먹고 싶어지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통통하고 푸른빛이 영롱한 고등어보다 무와 고구마를 더 많이 깔고 맛깔스럽게 조려내곤 했다. 시집와서야 알게 된 그 맛은 또 다른 세계로 날 데려가곤 했었는데 지금까지도 꽁치, 고등어조림을 유난히 좋아하는 남편덕에 가끔 상에 올리곤 한다. 그때는 많은 식구로 고등어는 몇 점 입에 대보지도 못했지만 밑에 깔아놓은 고구마와 무가 얼마나 더 맛있는지를 나만큼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재료 및 양념
생고등어 1마리, 양파 1개, 호박고구마 1개, 무 2 도막, 대파 1대, 생강가루 반 수저, 매실액 1 수저, 마늘 2 수저, 고추장 2 수저, 고춧가루 1 수저, 청홍고추 1개씩, 양조간장 1 수저, 참치액젖 1 수저, 맛술 반수저, 올리고당 2 수저, 설탕 1 수저, 생수 2~3컵. 후추
1. 생고등어는 속의 핏물까지 말끔히 씻어서 준비한다.
2. 무와 호박고구마를 약간 도톰하게 나박나박 썰어준다.
3. 대파와 양파, 청, 홍고추도 어슷 썰어 준비한다.
4. 간장, 고추장, 고춧가루, 마늘, 생강, 간장, 참치액젓, 매실액, 맛술, 올리고당, 설탕, 양파. 대파, 생수를 넣어 양념장을 만든다.
5. 넓은 냄비에 무와 호박고구마를 깔고 양념장을 2 수저만 뿌려주고, 고등어를 올려준 다음 남은 양념장을 골고루 모두 올려 바글바글 끓여준다.
6. 끓고 나면 중불로 30여분 이상 무가 충분히 무르도록 조려주면서 끓는 양념장을 자주 고등어 위에 올려 간이 배도록 한다.
7. 마지막으로 청, 홍고추 올려주고 후추를 넣어 끓이면 끝!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한다.
내가 해놓고도 너무 맛있다. *^*
설명절이 며칠 안 남았다. 올해도 작년처럼 나박김치를 담가 놓고서야 알았다. 작년 설명절 즈음에 올린 명절나박김치 조회수가 많아졌다는 것을. 나뿐만 아니라 설명절 준비로 이미 많은 분들께서 김치를 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시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지, 나만 유난스러운 거 아니지 하며 위로가 된다. 아무리 말려도 할 사람은 하고, 하고 싶은 사람은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해 놓으면 맛있게 먹어줄 가족이 있기에 올해도 이것저것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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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미리 해 놓아야 할 일들이 많지만 예년과 다름없이 맨 먼저 냉장고 정리에 들어갔다. 조금씩 남아있는 김치들을 작은 통으로 옮기고 안 먹거나 오래된 것들은 과감히 버렸다. 헐렁해진 냉장고에 통도라지를 사다가 씻어 껍질을 새하얗게 벗겨 담아두었다. 냉장고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작년 가을에 사둔 꽃게통을 꺼내어 일일이 손질을 했다. 명절 코앞에서는 할 일들이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은 시간이 날 때마다 미리 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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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어머니께서 먼 길 떠나시기 전에 충분히 남겨주고 가신 엿기름도 꺼내놓았다. 여유 있게 식혜를 만들어 살얼음이 얼도록 김치냉장고에 넣어둘 요량이다. 항아리에 있는 건고사리도 꺼내어 불려서 삶아두어야 하고, 떡국떡 반말도 떡집에 예약을 했다. 아무리 긴단 하게 조금만 한다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음쓰를 버리고 올라오다 잠시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끔 인사를 주고받던 주민을 만났다. 본인은 멀지 않은 남양주까지 가야 하는데 다른 분들이 오시니 좋으시겠다고 하는 것이다.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오고 가는 차 안에서 고생스럽겠지만 몇 날 며칠 전부터 준비한다는 것을 그분은 알고 있을까. 하루이틀 설거지를 하고 익숙지 않은 살림 돕느라 고단할 거라는 것은 알지만 내 몸만 빠져나와 갔다 오면 내 집 치울 일은 없지 않을까. 그에 비해 아무리 고생스럽게 치워주고 갔다 해도 남은 음식들과 수도 없이 꺼내 놓은 온갖 그릇들을 다시 정리하며 제자리를 찾아주느라 명절이 끝나도 허리 펼 시간이 없다. 그뿐인가 식구수대로 꺼내 놓은 수저 젓가락을 삶고, 젖은 행주와 마른행주까지 삶아서 널고 나면 온몸이 후들거린다. 그나마 청소는 남편이 도와줘 그런대로 해결이 된다지만 집안 곳곳 20여 명이 머물다 간 흔적들을 지우노라면 한 나절이 모자랄 지경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결코 싫다는 것은 아니다. 맏며느리인 이상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다. 허나 하루이틀 갔다 올 거면서 싫은 내색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동서들도 저런 마음일까 싶었다. 일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며느리가 들어오면서 선전포고(?)를 했었다. 명절음식은 알아서 해놓을 테니 편하게 당일 아침에 와서 함께 준비하자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며 전날 와서 음식을 하여 일찍 저녁을 먹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가 아침에 다시 온다.
그것만으로도 한결 힘이 덜 들었다.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씻고 야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다 자고, 또 아침에 씻고 그야말로 온 집안이 설거지와 이브자리, 수건 등으로 난장판이다. 밤늦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나누고 형제애가 돈독해지는 것은 더없이 좋지만 새 식구도 들어오고 힘에 부쳤다. 더구나 내 몸이 실하지 못하여 하나둘 줄여나가다 보니 추석은 산소에서 만나지만 설명절만큼은 날씨도 춥고 세배를 하며 덕담도 주고받아야 하기에 집에서 간단하게 하기로 했다. 말이 간단하게지 양을 줄일 수는 있어도 가짓수를 확 줄일 수는 없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김치만두를 몇 백개는 만들어 냉동실에 쟁여 놓았겠지만 힘들다며 못하게 하는 통에 눈치만 보고 있다. 그 대신에 전을 산더미같이 해서 집집마다 싸주던 것을 차례상에 올릴 것만 하고 만두소를 준비해 두었다가 다 함께 빚어서 바로 쪄먹고 김치만둣국을 해 먹을까 생각 중이다. 해마다 조금씩 줄여가려 해 보지만 몇십 년을 해온 일이다 보니 추석처럼 아예 집을 떠나지 않는 이상 조금만 더 움직이면 다 할 수 있는 일이고, 모두가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여전히 나는 또 부지런을 떨고 있다.
어차피 해야 하고 할 수 있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 도우며 도란도란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정스럽게 익어가는 설명절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각자의 형편대로 미리 성묘를 다녀와서 여행을 가든, 명절 제사 모두 생략하고 식구들끼리 오손도손 식사만 하든, 푸짐하게 차려놓고 차례를 지내고 걸판지게 먹든 서로 다를 뿐이지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상님들께서 아신다면 서운해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시대가 변해가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틀리다 말할 수 없는 일이나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나를 존재하게 해 주신 분들이 계시다는 것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맛있는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