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오면 벌써 몇 주 전부터 준비에 들어갑니다. 일단 냉장고를 비우는 일입니다. 이런 맏며느리들의 고충을 어느 누가 알겠느냐마는 이미 40여 년을 해온 일이니 그저 묵묵히 해야 합니다. 조금 남은 김장김치들은 작은 통으로 옮겨 담고, 비울 것은 비우고 정리를 했습니다. 그래야 새로 담근 물김치도 넣고, 미리 조금씩 장을 본 야채와 고기 등을 쟁여놓아야 하니 넉넉한 공간을 확보해 놓아야 합니다. 드디어 일주일 전 주말, 미리 사도 괜찮은 식재료들을 카트 가득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중에 맨 먼저 해야 하는 나박김치를 담가보려고 합니다.
요즘 제 주위에는 김치를 담가드시는 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김장도안 하는판국에 철마다 무슨 때마다 담가먹을 수 있는 김치들을 할리가 없겠지요. 그러니 명절나박김치를 한다고 하면 요즘도 그런 걸 하느냐며 의아해하곤 합니다. 어쩌다 한정식에서나 맛볼 수 있는 나박 물김치지만 설명절에 느끼한 음식들을 먹거나 떡국 한 그릇에 볼그스름하고 매콤 새콤한 맛이 일품인 그 맛을 못 보고지나칠 수야없지요. 아무리 바삭한 전에 맛있는 갈비를 해 놓아도 시동생들은 형수님이 하신 나박김치가 제일 맛있다며 그릇째 들이켜곤 합니다. 그러니 어찌 담그지 않을 수가 있나요. 시어머니께 전수받아 주먹구구식이지만 제멋대로 덜어내고 추가하며 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들어가는 재료가 많아 오늘은 사진을 보면서 정리해 볼게요. 주재료인 알배기배추는 일주일 전에 마트에 들렀다가 행사를 해서 크고 실한 것으로 두 포기를 사다 놓았더랬지요. 무는 가을에 저장해 놓은무가 있지만 요즘 제주무가 가을무처럼 달고 맛있어서한 개 사 왔습니다. 맨 먼저 풀을 준비했어요. 찹쌀풀보다는 밀가루풀이 구수한 듯하여 자주 사용하는데요. 물 2컵을 냄비에 넣고 끓이다가 물 1컵에 밀가루 2스푼을 풀어 끓는 물에 휘리릭 저어주면 금세 풀이 완성됩니다. 시어머니께서 처음부터 섞어서 저어주던 방식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방식입니다. 찬밥을 갈아서 써도 괜찮아요.
쪽파와 미나리는 전날저녁에 미리 다듬어 놓았고요. 당근과 오이, 마늘, 양파 한 개가 보이는데 나중에 적은듯하여양파는 한 개 더 넣었어요. 마른 통고추가 보이시지요. 매년 언니가 손질해 주는 것으로, 물김치는 고춧가루보다 통고추를 갈아서 넣었을 때 때깔도 곱고 매콤하니 감칠맛이 좋습니다. 생강은 가을에 저렴할 때 넉넉히 사서 저며 지퍼백에 담아 냉동실에 두었다가 이렇게 김치 할 때마다 필요한 만큼 덜어서 쓰곤 합니다. 그러니 우리 집 3대의 냉장고는 늘 터져나갈 듯합니다. 여기에 딱 빠진 게 보이시려나요. 이때 쓰려고 아껴두었던 배 두 개를 안 꺼내 놓았었는데 다행히 나중에야 생각나서 넣었어요. 또 홍고추가 없어 아쉬운 대로 파프리카를 넣었고요.
그럼 이제 썰어볼까요. 배추김치 두 포기가 들어가는 김치통으로 두통정도 담글 거라서 꽤 많은 양의 야채들을 썰어주어야 합니다. 일단 칼부터 갈아서 무를 나박나박 정사각형으로 썰어서 소금 1과 설탕 1을 넣어 절여주었어요. 배추는 4 등분하여 깨끗이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줍니다. 오이는 너무 얇게 썰어주면 무를 수 있으니 약간 도톰하게 썰고, 당근은 돌아가며 홈을 낸 뒤 썰어주면 저렇게 예쁜 꽃모양이 나옵니다. 이제 파와 미나리를 썰어줄 건데요. 쪽파가 많이 떠다니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조금만 썰어서 섞어주고 크게 자른 것은 김치가 완성되어 통에 담을 때 중간에 조금 넣고 맨 위에 올려줍니다.
일단 썰기는 다 되었지요. 그럼 국물 만들기 해볼게요. 양파와 마늘, 배 두 개를 믹서기에 갈기 편하게 대충 잘라서 넣고 갈아 고운체에 걸러줍니다. 씻어서 담가두었던 통고추도 갈아주는데 조금 부족한 듯하여 고춧가루 2스푼을 추가하여 갈아서 고운체에 걸러 주었습니다. 밀가루풀도 뭉치지 않도록 체에 걸러주면 모든 국물준비가 되었어요. 간을 맞추어야 하는데 소금 6스푼, 완도할머니께서 직접 담가서 주신 액젓 2스푼, 매실진액 2스푼과 감미료를 약간 넣었어요. 감미료는 종류가 다양한데 시어머니께서 쓰시던 신*당을 그대로 쓰고 있어요. 새로 나오고 좋다는 것을 써 보아도 먹던 그 맛이 아니라서 앞으로도 쭈우욱 써야 할 것 같아요.
이제 모든 재료가 준비되었으니 국물을 부어 섞어주면 되겠지요. 잠시 절였던 무는 씻거나 하지 않고 그 통에 모든 재료들을 넣어 섞어주었어요. 다시 간을 보고 부족하면 소금이나 단맛만 조절해 주시면 나박김치가 완성이 됩니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네요. 홍고추가 없어요. 친정엄마가 안 계신 게 여기저기 표가 나네요. 언제까지 이럴 건지요. 가을마다 홍고추를 따서 냉동시켜 주시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곤 했던지라 열어보니 없네요. 어쩌나요? 마침 명절에 쓰려고 미리 사온 빨간 파프리카를 조금 썰어서 넣었어요.
이처럼 필요한 재료가 없으면 있는 대로 넣고 아니면 다음날 사다 넣어도 무방합니다. 간은 지금 먹어도 맛있는 정도로 짜지 않게 하여도 약간 새콤하게 익으면 간이 딱 맞고 맛이 있습니다. 김치통에 담아야겠지요. 골고루 섞어서 반정도 채우고 쪽파와 미나리 몇 가닥 넣고 그 위에 또 채운뒤 남은 쪽파와 미나리로 덮어주었어요. 그렇게 했더니 딱 두통이 나왔어요. 애매하게 부족하면 아쉽고 남으면 처치곤란인데 요렇게 딱 맞아떨어지면 깔끔하니 기분도 좋습니다.김치국물은 부족해 보여도 재료들이 숨 죽으면 넉넉하니 나중에 김치말이국수를 해 드시면 그 맛이 또한 일품입니다.
왜,두 통일까요. 근처에 둘째 시동생네가 살아요. 동서가 물김치를 담갔다고 해서 가보면 어찌 그리 재주(?)도 좋은지 김치가 물렀거나 니맛도 내 맛도 아니고 하여 명절 때마다 한통씩 담아주곤 합니다. 둘째 시동생은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자식이 없는 둘째 작은아버지댁에 양자로 보내졌습니다. 한창 어머니품이 좋은 때였건만 어른들의 일방적인 뜻으로 보내졌으니 그 아픔이 얼마였을지 본인만이 알겠지요. 살아생전에 내게는 맏며느리라고 귀히 여기시며 잘해주셨지만 유난스러웠던 시작은어머니의 성정을 알기에 둘째 시동생의 그 고충을 알고도 남습니다.
가끔 장난스럽게 얼마나 힘드셨는지 말해보라 하면 그저 웃음으로 답하곤 하는,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시동생이지만 언제나 깍듯하게 형수대접을 해주는 시동생이 고맙기만 합니다. 그리하여 명절 때마다 먼저 두 어르신 차례를 모시고 우리 집으로 건너와 또 차례를 지내고 온 식구들이 모여 함께 떡국을 먹습니다. 식구들이 많아 몇 번으로 나누어 먹고 치우고서는 돌아가며 세배를 하고 덕담을 하며 가족애를 다집니다. 올해도 먹음직스러운 음식들로 한 상 차리고 맛있는 물김치를 한 그릇 담아 차례상에 올리려고 합니다. 부디 조상님들 올해도 우리 가족 모두 무탈한 한 해가 되게 해 주십사 기원해 보려고요. 브런치 가족 여러분들께서도 가족분들과 함께 다복한 설명절 보내세요!
<곧 있으면 다가오는 정월대보름나물과 오곡밥에도 나박김치가 그만입니다. 한 번 담가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