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 화(落花) / 희야
서툰 이별이 두려워
한 잎 한 잎 피우려다
몰래 활짝 피어나는
목련꽃 새하얀 볼에
내 마음은 붉게 물들고
지나가는 옅은 봄바람
한 줌 향기 흩뿌리던 날
담뿍 물오른 가지 끝에
물든 내 맘 울렁이다
꽃잎 위에 그리움을 적는다
그대 향한 고귀한 연정
봄바다가 되어 서툰 마음
움켜쥐고 피어난 목련꽃잎
다붓이 끌어안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래도 사랑한다
새하얗게 풀어놓던 날
때 이른 이별 앞에서
마냥 질척이던 밤들이
어제의 별들이
그 밤의 시든 꽃잎처럼
처연해도 그대를 사랑했네
노냥 서툰 그 이별을
딸아이가 사는 2층 창가에 새하얗게 목련꽃이 피었다. 오목하게 한 잎 한 잎 피어오르던 꽃잎이 어느새 활짝 피어 봄바람에 한들거리며 유혹하는 봄날이다. 목련꽃을 바라볼 때마다 곱게 피어나는 순간보다는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하고 외롭게 지는 모습이 못내 아쉬운 마음이다. 하지만 피는 순간만큼은 그 나름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우리 집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윤이, 훈이가 새 학년이 되면서 임원선거에 도전한 것이다. 작년부터 되든 안되든 한 번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부추기곤 했었다.
하지만 내성적이면서도 부끄럼도 많이 타는 아이들은 절대 그럴 생각이 없는 듯싶었다. 그래도 무언가 도전해 본다면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아 몇 번이고 꼬드겨 보았지만 싫다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새 학년이 되어 새로운 소식들을 물어오며 신이 나서 조잘거리던 3학년 훈이가 갑작스레 부회장에 나가보겠다고 선언하였다. 작년에 이어 같은 담임선생님을 만나 신나기도 하였지만 선생님께서 어떻게 말씀을 하셨는지 모범생인 훈이가 하루아침에 용기가 발동하여 자신감이 넘쳐났다.
문제는 공약이었다. 훈이가 내건 공약을 보았을 때 결과가 훤히 보이건만 뜻을 굽히지 않아 옥신각신 하다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이 또한 경험이 되겠기에 자신만만해 보이는 그 모습에 그저 웃기만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말한 적 없던 회장까지 모두 나갔지만 몇 표 받지도 못하고 아름다운 도전으로 마무리되었다. 며칠이 지나고 도전해 본 소감을 물어보았다. 형아처럼 큰 종이에 공약을 쓰고 꾸며서 발표를 하지도 않았고, 고집대로 혼자 했으니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무언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 것 같았다. 오히려 동생이 나간다니 어쩔 수 없이 할머니와 엄마의 의견까지 들으며 준비했던 윤이는 많은 표를 획득했지만 아쉽게도 몇 표 차이로 탈락하고 말았다. 윤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 공약이 좋았다며 아쉬움이 남는지 2학기에 또다시 도전할 모양새다.
두 아이의 도전으로 웃지 못할 봄바람이 한바탕 휩쓸고 갔지만 그래도 잘했다며 칭찬해 주었다. 무엇이든 해보고 안 해보고의 차이는 존재한다. 해보았을 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아쉬움이 살짝 남아있던 날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소식이 날아들었다. 우리 아들딸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7남매 조카들 중 15번째 고2 막내여조카가 부회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워낙 조용한 아이라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가문의 경사라며 축하메시지를 마구마구 보냈다.
무엇이든 시작해 본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결과와 상관없이 그 순간만큼은 훈이도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갑자기 불어닥친 눈비 섞인 봄바람에 후드득 떨어진 목련꽃이지만 내년에 또 필 것이고 훈이도 그때가 되면 좀 더 성장해 있지 않을까. 속마음은 어떤지 몰라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 듯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보며 오늘도 봄꽃처럼 웃어보는 고운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