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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원이 쏘아 올린 작은 공에 제대로 맞았다

by 희야
라이킷을 눌러 주신 분들께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멤버십으로 발행한 '따스한 국물이 그리워진다 토란국 어떠세요'가 제 실수로 삭제되고 말았습니다. 1,600원 때문에 신경 쓰이던 차에 정성 들여 쓴 글까지 날아가고 부담스럽기만 한 멤버십에 대해서는 취소할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대신 이 글을 서둘러 발행합니다.


생각만 해도 낯빛이 붉어진다. 왜?, 왜? 만 원을 보냈을까. 다시 한번 확인했더라면 이리 부끄러워하며 사과할 일은 없었을 텐데.

아파트 내에서 운영하는 요가를 하러 다닌 지 6개월이 되어간다. 일주일에 두 번이나 만나는 오전반 회원들이지만 아직도 낯설다. 총 16명으로 10명 안팎으로 나오는 날이 많고 추가 회원도 없어 아직도 막내다. 처음에는 안 쓰던 근육을 쓰니 얼마나 아프던지 진통제를 먹으며 슬그머니 빠지기도 했다. 지금은 많이 적응되어 아프다 하면서도 꾸역꾸역 나가며 면역력을 키우고 있다. 그런 날들이 별 탈 없이 이어지나 했더니 엉뚱한 문제로 나가기가 진짜 진짜 싫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라인댄스를 배우는 날인데도 말이다.

며칠 전의 일이다. 요가 선생님께서 근력운동을 추가하기 위해 새로운 운동 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걸 총무님이 대화방에 올렸다. 총무님은 이미 구매했고 나머지 분들은 아직이었다. 그럼, 한 사람이 한꺼번에 구매하면 좋을 것 같아 눈치를 보는데 마침 같은 라인에 사는 분이 구매하겠다고 나섰다. 엄청나게 고마웠다. 회원 중에는 혼자 따로 구매하겠다고 하는 분도 있었으니 말이다.


10년 전에도 요가를 2년이나 다녔어도 알고 지내던 분은 총무님 한 분뿐이었다. 끝나자마자 회원들과 몰려다니며 수다 떨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어울리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갈 때마다 A는 매번 핸드폰을 들고 단체로 토스란 것을 켜며 무언가를 했다. 핸드폰을 집에 놓고 다니며 몇 달을 참여하지 않았다. 조금씩 얼굴을 익히자 같이 하자고 대놓고 권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난 바쁘게 살다 보니 토스가 뭔지도 몰랐고, 시간 낭비하는 인터넷게임이나 놀이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거절할 만한 배짱도 없고 혼자 멍하니 있는 것도 민망스러워 앱을 깔았다.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지려던 차에 이 사건이 터졌다. 6개를 한꺼번에 구매하여 배송비도 절약하고 n분의 1로 입금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그럼 8,400원을 입금하면 될 일을 나 편해지자고 만 원을 입금했다. 구매 크기 문제로 판매자와 통화도 했다는 내용이 올라오고 신경을 쓰는 것 같아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보다도 막상 입금하려니 8,400원인지, 8,600원인지 가물가물하여 만 원을 입금한 것도 문제였다. 더 보낸 그 1,600원이 불씨가 될 줄이야.


아, 이 일을 어떡하지. 사과하면서도 쓸데없는 오지랖에 그동안 세심하지 못했던 습관들이 대단히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한국 사람의 특징이 '괜찮아, 괜찮아'하면서도 막상 처리하고 나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늘 더 줘야 한다는 책임감의 발로인지도 모르겠다. 주말에 조카결혼식이 있었다. 형제들이 미리 모여 축의금을 전달했다. 우린 맏이라는 무게답게 다른 형제들보다 배를 더 넣었다. 그뿐인가 동서가 입어주면 감사하다는 말에 한복을 대여하고 머리까지 하고 가느라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었다. 거기서 끝나면 좋았겠지만, 새벽부터 준비하느라 힘이 들었는지 몸살까지 나고 말았다.

형제 중에 누가 아파서 병문안을 가도 배를 준다.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늘 부모 대신이라는 책임감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시골 누군가가 먹거리를 판매하면 금액 상관없이 사는 편이다. 어르신의 굽은 손으로 담가서 보내주시는 수제 멸치액젓이나 하나하나 꺾어서 삶아 말린 고사리를 받을 때면 감사한 나머지 조금씩이라도 더 보내드리곤 했다. 내가 어디 가서 그런 귀한 것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값으로 따지기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아래의 내용이 올라왔고 이렇게 일단락되는 줄 알았다.


천만의 말씀. 요가가 있는 당일 아침 1,600원이 카카오페이로 입금되었다. 또다시 열리려던 마음이 살며시 빗장을 채우려 한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1,600원, 한 번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무슨 액이라도 끼었는지 똑같은 금액으로 또 나를 실망하게 했다.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 신청 때문이다. 이유는 의료보험료가 장기 요양 보험료를 빼고도 딱 1,600원이 많아서다. 아, 부자가 될 1,600원. (웬수 같은 1,600원 ㅎ)


우리가 소득이 많아서라면 절대 서운하지 않다. 동서네가 사정이 있어 우리에게 한 동안 맡긴 돈 때문이다. 시동생이 상가를 분양받으려다 사기를 당했다. 그 사건은 크게 보도까지 되었지만,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결국 그 빚을 갚기 위해 집을 팔고 남은 돈으로 전세를 살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른 일로 보증 관계까지 복잡하게 얽히면서 본인 앞으로는 현금을 보유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집주인이 월세를 요구하여 돌려받은 그 금액이 우리에게 맡겨진 것이다.

금액이 많다 보니 은행 이자도 꽤 되었다. 다행히 일이 해결되고 얼마 전에 다시 집을 사면서 이자까지 모두 돌려주었다. 하지만 우린 그동안 그 이자소득 때문에 더 많아진 의료보험료를 부담하게 된 것이다. 동서는 지금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속상해도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다. 겨우 1,600원이 많아 대상자가 안 된다고 하니 나도 사람인지라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1,600원이라는 금액이 꼴도 보기 싫어졌다. ㅎ


그래도 어쩌랴. 1,600원은 소중한 금액이다. 꼭 필요한 물건인데 1,600원이 모자라서 못 산다면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 그러니 오지랖 넓게 굳이 더 주고도 나처럼 민망한 상황은 없어야겠다. n분의 1은 언제나 정확히. 또다시 1,600원과 같은 일로 마음 쓰이는 일은 없어야겠다. 하지만 두 번째의 경우에는 가족이기에 외면할 수 없다. 1,600원 때문에 또 다른 일이 일어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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