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친절이 주는 위로

by 희야 ㅡ 박상희


"시작해 볼까요. 왼쪽으로 돌려주세요. 감사합니다. 조금 쉬었다 갈게요."

이 과정을 대체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기억에는 없지만, 밖에서 기다리던 남편 말로는 한 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끝이 났다고 했다. 오른쪽 얼굴이 얼얼하고 부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온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욱신거리고 정신이 또렷하지 않았다.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이겠지만, 어쩌면 나만 유난을 떠는 건지도 모르겠다. 속이 받쳐주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소염제와 항생제를 위장 속에 꾸역꾸역 들이부었다. 3일째 되던 날은 귓속을 지나 머리까지 아팠다. 혹시 중이염이 되는 건 아닐까, 아니면 염증이 머릿속까지 번져 유서라도 써야 하는 건 아닐까.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야말로 최상의 건강염려증에 빠진 며칠이었다.

이번에 뽑은 치아는 오른쪽 위 끝에서 두 번째 어금니였다. 충치도 아닌데 부서지는 바람에 결국 할 일을 다 마치고 비닐봉지에 담겨 내 손바닥에 놓였다. 무려 30년 전 금으로 씌워 나를 먹여 살렸던 이다. 진작 손을 써야 했지만 방학이라 미루고, 3월에는 대학병원 정기검진으로 또 미뤘다. 하지만 이제 통증까지 시작되니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남편이 다니던 치과에 갔다. 통유리 너머로 치아 만드는 과정이 훤히 보이는 공장 같은 병원이다. 거의 S대 출신의 의사들이 포진해, 잇몸 상태만 좋으면 하루 만에도 완성이 가능하다는 곳이다. 겨우 치아 한 개인데도 '상악동거상술'이라 추가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잇몸을 절개해 막을 들어 올리고 뼈를 채우는 과정이라는데, 쉽게 말해 잇몸 천장을 열어 코 쪽으로 뼈이식을 한 셈이다. 그러니 아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 숨어 있던 사랑니까지 드러나 함께 뽑았다. 한 번에 끝내고 싶은 욕심이었는데, 이가 부러지는 바람에 시간이 더 길어졌다. 다행히 친절한 의사를 만나 수술은 아프지 않았지만, 마취가 풀리니 제대로 된 통증이 밀려왔다. 위가 약해 약 먹는 것도 고역인데 비염약까지 겹치니 온종일 잠이 쏟아졌다. 기침이나 재채기도 마음대로 못하니 '사랑니는 빼지 말걸' 하고 천만번은 후회했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붓기가 남아 있다. 꿰맨 실이 녹아 없어지려면 한두 달은 더 지나야 한다고 했다. 그때까지는 이 불편함을 참아내야 한다. 나는 겨우 두 개를 뽑고도 이 난리인데, 남편은 십 년 전 열 개를 하고도 아프다는 소리 한 번을 안 했다. 내가 유난인 건지 남편이 유독 무던한 건지, 그건 여전히 잘 모르겠다.

사실 처음엔 너무 젊은 의사라 경험이 부족할까 봐 걱정이 됐다. 하지만 수석 졸업자라는 한 줄을 믿어보기로 했다. 뉘 집 자식인지 몰라도 차분하고 세심하고 친절하기까지 했다. 도포 마취를 먼저 해준 덕분에 마취 주사조차 아프지 않았다. 수술이 길어진 것도 그만큼 정성을 기울인 것이라 이해하기로 했다.

어느 치과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배려가 환자의 마음을 말랑하게 만든다. 그 덕분에 아픈 와중에도 'ㅇㅇㅇ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리뷰까지 남기고 왔다. 부디 이식한 뼈가 제자리를 잘 잡기를, 그래서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음식을 씹으며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