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무언가를 손에 쥐기 위해, 이미 쥐고 있던 것을 놓아야 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내가 택한 새로운 길이 더 나은 내일을 약속할지라도, 그 대가로 소중한 무언가를 내어주어야 할 때가 있다. 그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저마다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다시금 용기를 내어 발걸음을 옮긴다.
라일락 향기가 짙어질 때면 그 골목집이 떠오른다. 결혼 후 15년을 살았던 나의 첫 집이다. 구석구석 쓸고 닦고 페인트칠하며, 그 안에서 울고 웃었던 날들이 집안 곳곳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유독 추위에 약했던 내게 단독주택에서의 삶은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낮에도 불을 켜야 했던 어두운 주방에서 매 끼니를 준비하고, 비좁은 공간에서 일곱 식구가 부대끼며 지내는 일은 늘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다 시동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한 푼 두 푼 모아 꿈에 그리던 아파트 당첨 소식을 들었다.
부푼 마음도 잠시, 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중학교 1학년과 3학년, 한창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에게 전학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나고 자란 정든 동네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힘겨워했다. “남들은 자식을 위해 도시로 이사하는데, 우리는 왜 거꾸로 지방에 가야 하느냐”라며 서운함을 토로하던 딸아이의 어두운 안색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남편은 15년 동안 왕복 4시간이 넘는 출퇴근 시간을 도로 위에서 허비하며 모든 기력을 소진하고 있었다. 매년 보수해도 낡아가는 집을 관리하는 일도 갈수록 버거워졌다. 나는 아이들을 다독이며 결국 이사를 감행했다.
지방으로 내려온 뒤에도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아이들이 혹여나 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성적이 떨어져 좌절하지 않을까 늘 조바심을 냈다. 과외를 받고 싶다는 아이들의 말에 나는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고된 2교대 근무였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무엇도 힘들지 않았다. 자정이 넘어서야 정산을 마치고 퇴근하면서도, 새벽 2시면 어김없이 독서실에서 돌아오는 딸아이를 마중하러 나갔다.
입맛에 맞지 않는 학교급식 대신 매일 도시락을 싸며 전전긍긍했던 시간들. 나의 선택이 아이들의 미래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마음을 졸여야 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보란 듯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기뻤던 순간이 또 있었을까. “사람은 마음먹기 나름이야. 너희가 어떻게 하느냐가 가장 중요해.”라며 아이들을 달랬던 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무모해 보였을 선택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지극하게 정성을 쏟았다. 운전을 배워 아이들의 발이 되어주고,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려 애쓰며 미안함의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그 선택의 끝에 무엇이 기다릴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끝이 아름답기를 바라며 용기 있게 달려온 세월이었다.
살다 보면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내어주어야 할 때가 있다. 다만, 내가 쥔 그 하나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할 때, 우리가 선택한 길을 걷는 발걸음이 조금은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 선택 # 비움 # 채움 #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