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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Nov 21. 2019

지나야 알게 되는 것들

  아버님은 힘든 투병을 이어가셨다.     

 

  돌아가시기 이 주 전 아버님을 찾아뵈었다. 설 명절 때 찾아뵙고 두 달이 안 되어 찾아뵈었기 때문에 큰 변화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님은 혼자서 많이 힘드셨던 것 같다. 어머님은 걱정한다고 전화 통화 할 때마다 괜찮다고 하셨다. 아버님은 전과 다르게 방에서 움직이지 못하시고 누워만 계셨다. 섬망 때문에 홀로 옥상을 올라가시다 넘어지셔서 고관절에 골절상을 입으시고 그때부터 급속도로 나빠지셨다고 했다. 짧은 기간 동안 아버님은 누워만 계셔서 애기같았다. 다리 살도 많이 빠지시고 미음으로만 하루하루를 이기셨다. 말씀은 못 하시지만 들으실 수 있다고 느껴졌다. 아버님께 첫 손주인 유니의 이야기를 하며 눈을 바라보면 아버지의 눈동자가 커지고 광채를 띠며 그래그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우리가 집으로 올라오기 전날 밤 아버님은 갑자기 혈변을 보셨다. 어머님은 놀라 119에 연락을 취했다. 구급차가 도착하여 증상을 말하니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다급하게 아버님을 이동식 침대로 옮겨 병원으로 모셨다. 병원에서는 위독하시긴 하나 집으로 가 있으라고 해서 우리는 무거운 마음을 뒤로 하고 올라왔다. 아버님은 다행히도 진정이 되신 후에 퇴원하셨다. 그런데 퇴원한 지 일주일이 안 되 병원으로 다시 가셨다. 준비를 하라는 병원의 전화를 받은 남편과 나는 짐을 챙겨 내려갔다.      

 

 그렇게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4월. 아버님을 보내드렸다. 어머님이 걱정이 되었으나 아주버님이 계셔서 무거운 마음을 조금 덜어내고 올라올 수 있었다.      

 

 일상으로 몸은 복귀를 하였으나 마음은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유니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는 있지만 가만 있으면 눈물이 떨어진다. 그러다 유니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최면에 걸렸다 정신이 든 것 처럼 아이를 웃으며 맞이한다. 그리고 뱃 속에 있는 아이를 생각해서 기분을 전환하려 했다. 남편은 상을 치르고  올라온 날부터 계속 술이었다. 말로는 당신의 마음을 안다고 위로를 건냈지만 하루하루를 술과 한 숨으로 지내는 남편이 무책임해 보이고 미웠다. 건강이 염려가 되면서도 약한 모습이 보기 싫었다. 짠했던 마음이 분노가 되고 체념이 되었다.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후회하는 말까지 해가며 반복적으로 싸웠다. 하루하루가 나만 억울한 생각이 들던 때였다.      

 

 6월 어느 날 새벽 잠이 안 온다. 태동이 너무 심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유니를 재우고 거실로 나왔다. 잠깐 잠이 들었다 깼는데 양수가 조금씩 흐른다. 예정보다 빨리 둘째 아이가 신호를 보낸다. 남편은 아직 연락도 없이 들어오질 않았다. 그렇게 뒤척이다 새벽 5시가 되자 남편은 거친 발걸음으로 티를 내며 들어왔다. 늦은 귀가로 남편은 아이가 유치원을 갈 시간에도 한밤 중이었다. 나는 유니를 유치원에 보내고 짐을 챙겨 둘째 아이를 만나러 병원에 택시를 타고 갔다. 나중에 언니로부터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온 남편은 술 냄새가 너무 심했다. 진통하는 중에 밥을 먹고 와야겠다고 말을 한다. 남편을 내보낸 후 괜시리 서럽다. 초산이 아니기에 둘째 아이는 생각보다 빨리 만날 수 있었다. 남편은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두 달 동안에 술과 함께한 생활을 본의 아니게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후 친정아버지의 협심증으로 인해 몇 번의 위급 상황을 넘긴 뒤에야 나는 남편의 마음을 조금은 깊게 알게되었다. 아버님이 걱정이 되지만 남편이 그 분위기를 집안으로 끌고 들어오는게 싫었다. 그때 나는 너무 철없었다. 왜 같은 상황을 겪고 나서야만 알게 되는 것일까. 겪지 않고 알 수는 없는 것인지. 아쉬운 마음과 부끄러움이 한가득이다. 그때의 나의 콩알만했던 마음을 용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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