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나날(2026)

by Tess


L의 블로그에서 봤을 때부터, '이 영화는 꼭 봐야지'했다. 마침 일요일 오전에 자리가 있길래 시간을 내 영화관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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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목부터 여행과 나날이라니! 영문제목은 two seasons, two strangers 인만큼 영화는 단촐하다. 여름과 겨울, 단 두 계절과 여자와 남자 이렇게 두 주인공이 나온다.


영화는 심은경이 잘 깎인 연필로 사각사각 시나리오를 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일본의 작은 방에서 그녀는 노트북이 아닌 종이와 연필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영화 속의 영화, 액자구성으로 진행된 여름이야기는... 나에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2023)'을 연상시켰다. 괴물의 아이들이 커서 바닷가에 온 이야기 같달까?(물론 성별은 다르다)



풀잎이 무성한 숲 속을 들어갔다가 나오면 바닷가가 펼쳐지는데, 나에겐 이 장면 사후세계로 보였다. 경계를 넘어왔달까? 그 해변엔 그렇게 삶과 죽음 사이에 걸쳐져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서도 겉도는 남자아이가 있고, 또 여자아이가 있다. 둘 다 사연이 가득해 보인다.


이들은 태풍이 오는데도 바다수영을 한다. 이 겁없는 모습이, 오묘하게 이 아슬아슬함을 즐기는듯한 모습이, 혹은 그러면서도 이 생에 참 미련없어 보이는 듯한 모습이 더 죽음 쪽에 가까운 사람들로 보였다.



젊은 여자와 소년이 나오는데도, 싱그럽기는 커녕 서늘해서 영화관에 앉아있는 내내 속이 시려웠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있는데도, 감각적으로 추위가 느껴졌다. 허허...



그 후 두 번째 계절이 온다. 시나리오작업이 막힌 심은경은 눈이 고요하게 그러나 소복소복 내리는 곳으로 여행을 간다. 하... 눈 내리는 소리를 듣고있자니, 이 영화가 추구하는 바를 알겠더라. 그 고요함과 적막_ 이건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힐링이었다. 이 장면을 길게 담아줘서 고맙단 마음이 들었다.



심은경은 그 곳에서 상실을 겪어 말을 하기 싫은 남자, 언어로 꺼내고 싶지 않는 남자를 만난다. 이는 참 작가로 나온 심은경의 상태와 대비가 되었다. 그녀는 말이 나오지 않아, 언어화되지 않아, 여행을 올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입을 닫은 남자와 비의지적으로 말이 나오지 않는 여자. 이 구도안에서 둘이 만들어내는 에피소드도 참 재미있었다.



아! 사건을 만들어내는 매개는 심은경이 죽은 선생에게서 선물받은 아날로그 카메라다. 그녀는 이걸 통해, 기록한다. 그렇게 공책과 연필이라는 기록용 도구에서 카메라로 심은경은 열심히 풍경과 자신의 감각을 담는다.



영화의 말미엔 각자의 방식으로 회복하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간 듯 하다. 병원에 가는 여관사장하며 글을 쓰러 돌아가는 심은경까지.... 어느정도 회복이 되었으니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 영화는 감독이 이야기했듯이, 10000% 심은경에게 딱 맞는 역할이었다. 일본과 한국 중간의 경계인의 감성을 아주 잘 녹여냈다. 무채색의 옷만 입으며 표정이 별로 없는 것조차 저 경계에 서있는 모습같았다.




개인적으로 나도 어딘가로 이행중이다. 계속해서 경계를 넘나들고 있달까?


그렇게 끊임없이 적막하지만 내적인 소용돌이에 휘몰려 있으니, 요즘엔 글이 안나온다. 쓰고 싶어도 시작이 어렵다. 그렇게 내 안에 많이 담아놓고 있다.



한 때는 내가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이 그렇게 서러웠다. 나는 아무도 없어... home이 없어... 하면서 울었다. 이젠 좀 다르다. 없어서 가벼운 것도 있다. 없어서 경계를 넘는데 무리가 없다.


내 한 몸과 마음만 잘 간수하면 된다. 이것이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서도....



겨울 영화로 딱이다. 어느 곳이든 가파른 엣지에, 그 얇은 선에 서있는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공감하며 볼 것이다. 묘하게 추웠는데 끝은 따뜻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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