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넘어서기
아버지를 피해, 나무꾼을 찾아 결혼했던 나(의 한 부분)는 망했다. 도피의 결과가 이거라니...
내 문제를 직접 마주하지 않고, '당신이 대신 해줘. 사랑하면 그럴 수 있잖아'라며 매달린 결과는 늪지대였다. 푹 빠지고 빠져 숨이 막혀 죽을 공간_
서로가 서로를 질식시키기 전에 큰 댓가를 치르고 나온 이곳에서도 나는 불안했다.
그래서 "남편이 없으면 직장이라도 있어야지"라며, 나를 내맡길 다른 울타리를 찾았다. 그렇게 쌍문동의 작은 사립초등학교는 나에게 있어 또 하나의 동아줄 같았다. 이 학교에 합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안양천 뚝방길에서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모른다.
"나 드디어!!! 목동 탈출 할 수 있어. 나 저 집, 엄마 아빠의 것으로 가득찬 그 곳을 나갈 수 있어" 하면서 말이다.
모든 것이 깜깜했는데도 직장 하나, 그나마 안정적인 곳이 생긴 것이 얼마나 안심되고 좋았는지 모른다.
목동에서 쌍문동으로 거처를 옮기기까지 3달을 왕복 3시간이 걸려 출퇴근을 했는데도 고된지 몰랐다. (그땐 심지어 주말에 과외하고 평일에 퇴근하고 필라테스 레슨까지 했움) 그저 이런 울타리가 있는 것이, 내가 능력을 발휘해서 돈을 벌고, 대우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고 감사했다.
그런 곳에서 1년 반을 일하고, 다음 달 13일이면 마지막 근무를 한다.
여기서 나는 두 번의 성희롱과 뭔 말같지도 않은 여러가지 사건들(교장 둘째 딸의 결혼식에 참가하라는 강요 및 압박, 다른 선생이 캠프 예산으로 횡령한 것을 뒤집어 쓴 일, 아파서 결근한 것을 병가가 없으니 방학때 나와서 메꾸라는 것, 옥상가서 스트레칭하지말고 무조건 자리에 앉아라, 튀지 말아라, 결혼하는 선생에게 선물했더니 '돈으로 주지'라는 말을 들은 것 등등), 원어민 뒤치닥거리(집에 가있는 애 연락해서 데려오기, 일 안하고 튄 거 마무리하기 등등)을 겪었다.
와 정말 진짜로 사람을 통해 많이 배운 한 해였다.
가정이란 울타리에서 남편과 강아지와 셋이 살 때는 전혀 모르던 세상_
"세상에 진짜 이 정도의 사람이 있구나?!" 하는 놀라움.
내가 삶의 현장으로 들어와서 직접 겪어야만 알 수 있는 사람들 사이의 이득관계, 한 곳에서 오래있어서 고이다 못해 썩은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서도 공포스러운 것인지 등등을 온몸으로 겪었다.
그리고 판단을 내렸다. 나는 이런 환경에선 일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내가 나로써의 개성을 드러낼 수 없는 곳.
통제, 감시가 일상인 곳.
자신과 다르게 행동하면 정 맞는 곳.
나는 이런 곳이 매우 숨막히구나.
가정이 있는 몸일 때의 장점이었던 칼퇴나, 안정성 등이 내 고통을 상쇄시키지 않는 구나 라면서 말이다.
여긴 내가 있어야할 곳이 아니란 판단이 제대로 섰다.
크으_
나는 이제 '성실과 책임의 일꾼'이 되고 싶지 않다. 성실의 신화를 믿으며,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지'하면서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싶지 않다.
어제는 나에게 권위와 엄마투사를 일으키던 부장에게 맞섰다.
"선생님은 벽같은 존재라 말이 안통해서, 그 동안 이야기하려고조차 안했다. 하지만 당신의 그런 부분이 나를 매우 힘들게했고, 퇴사를 결정짓게 만든 이유기도 하다. 원리원칙대로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너무도 많은 부당함을 느껴왔다. 곧있음 퇴사하는 사람에게 방학때 나와 앉아있으라고 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는 따를 수 없다. 계속 강요하시면, 계약마무리고 뭐고 난 이번주까지만 일하고 그만나오겠다. 나는 더 이상 "마무리를 잘하자"라는 것 때문에 나를 갈아넣고 싶지 않다"
라고 똑바로 말했다.
감정에 휩쌓여 이야기하는 것 없이, 내 할 말을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다 전달했다.(너도 한 번 엿먹어봐라 하는 의도도 있었다) 이런 내가 어른이 된 것 같더라.
내 문제를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고, '너가 좀 해줘'라는 마음을 품지 않은 채, "그래. 올게 왔다. 해보자!"라며 내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 그게 나를 지키는 길이며,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사건을 겪으며 등선을 넘었다.
ㅅㅂ과 엿같음을 달고 산 직장이었지만, 이 학교에서 "테스티쳐 팬클럽"이 생길정도로 순수한 사랑도 많이 받았다.
정말 많이 배운 한 해였다. 조직생활의 고단함, 소시민을 대할 때의 답답함, 그런데도 매일 출근해야하는 그 한스러움, 자책, 후회, 이걸 잊을 만큼의 순수함, 귀여움 등등... 매일같이 배우고 또 배웠다.
얻은 것도 사람이며 잃은 것도 사람인데, 가장 큰 건 사람을 통해 내가 배웠다는 것이다. 그러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