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안녕 again...
부장과 부딪힌 사건 이후, 생각이 많아졌다. 훅 올라왔던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는데, 저절로 전남편과 지금의 남자친구가 비교가 되었다.
전남편은 내가 직장에서 부당한 일을 겪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면 '너가 참아. 얼마 안있으면 그만두잖아. 열받는 것은 열받는 것이지만 문제 크게 일으키지마. 너가 참고 다녀. 원래 다 그런거야' 하며 순응의 언어를 썼을 것이다.
그는 질서와 권위를 절대적인 것으로 가정하고 개인적인 감정은 나중으로 미뤘다. 그의 생존전략은 순응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만나는 사람은 내 일에 자기가 더 감정이입을 해서 "여기 정말 안되겠네. 내가 찾아가서 뒤집어 엎고 싶네. 신고해. 따져. 싸워!'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쪽으로 말한다.
반대편에서 내 편을 들어주는 남자친구의 말은 내 분노를 정당해주고, 억눌린 감정을 풀어주기에 치유적 효과가 있다. 그런데 이것도 "내 방식"은 아니었다.
나는 양 극단(무조건 참기 vs 무조건 싸우기)에서 고민하다가 나만의 선택을 내렸다. 상황을 관찰했고, 감정을 인지하며, 나를 지키려는 성숙한 언어들을 썼던 것이다. 그렇게 해야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을 구분했고, 또 내 시야에서만 상황을 봤던 것도 인정했다.
그런데 어제는 저 전남편의 언어가 진짜 그이의 것이었을까?
내 안의 검열자(super ego)가 했던 말을 그에게 덮어씌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이 들었다. 공감에 서툰 그였지만, 그래도 내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내가 혼내줄게!'하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유머로 나의 순간적인 화를 흝어뜨리는 것이 그의 능력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가 나에게 했던, 해줬던 것은 쏙 빼먹고 '서운했던 감정'으로 그를 감정이라곤 하나도 볼 줄 모르는 냉혈한 취급을 하고 있었다.
"너가 나를 이렇게 억압했잖아!!!"하면서.....
실제론 내 안의 검열자가 그 사람의 언어를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인데 말이다.
우리는 상처를 기억할 때 사실보단 구조적으로 나에게 남은 지점을 기억한다. 그렇게 생체기가 난 것을 더 크게 인식하는 것이다.
나에게 남은 것은 이거였다.
"참아야 한다"
"감정은 나중문제이다"
"일 크게 벌이지 말아라"
이 언어들은 전남편의 것들이면서 동시에 나의 내면질서를 유지하던 핵심규칙이었다. 그 사람은 나의 감정에 공명하지 못했고, 나는 그 공백을 내 안의 검열자로 채웠다. 그게 내가 상처를 다루던 방식이었다.
어느 정도 내 상처에서 멀어지자 "그 관계에서 작동한 언어"가 보인다. 그것이 어떻게 내 안에서 살아서 작용했는지도... 더 이상 지배언어의 주인이 '전남편'이라며 그를 탓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제 이 둘이 완전히 구분된다.
"그가 나를 이렇게 다뤘고, 나는 그이 밑에서 참고 살았어"라며 그를 가해자로, 나를 피해자로 그리지 않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그 사람은 왜 내 편이 아니었을까?"하면서 분노하고 억울해했다. '너는 왜 그래야만 했니?'하며 술을 마시고 비련의 여주인공마냥 울곤 했다.
지금의 나는 "나는 왜 저 말에 그렇게 오랫동안 붙잡혀 있었을까?"하며 질문한다.
나는 이제 전남편에게서 상처를 꺼내고 덮어씌우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내 안에 남아있는 목소리의 정체를 밝히는 단계에 왔달까? 그렇게 있어야할 곳으로 정리하는 중이다. 내 것이 아닌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으며 단단해지고 있다.
이혼 후 일년 반이 넘게 많은 글을 썼다. #이혼일기 수준으로... 나는 이렇게 쏟아내면서도, 전남편이 내 글을 보지 않았으면 했다.(물론 보지 않을 사람이긴 하다) 그 안에는 순전히 내 시점에서 '너가 나한테 이렇게 굴었잖아'하며 그를 탓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글만큼은 다르다.
나는 이제 당신을 가스라이팅한 존재로, 내 삶을 망쳐버린 가해자로 그리지 않는다. 그걸 당신이 알면 좋겠다. 그렇다고 우리를 막 로맨틱한 사랑의 존재로 보지도 않는다. 한 때 정말 사무치게 사랑했고, 인생의 한 부분에서 함께 성장하기도 했던 그런 사람으로 본다. 형제애와 에로스가 섞인채로....
당신과 나 사이에는 여전히 정리해야 할 것이 많을 거다. 15년이란 세월은 한 번에 딱하고 끊어지는 것이 아니니. 나는 여전히 당신을 상실했단 슬픔에 울고, 애도중이다. 새 사랑을 시작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오늘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내면의 검열자'와 당신을 섞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내 안의 목소리, 규율이 이야기한 것을 당신에게 덮어씌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 너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