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뿌리를 찾아서...
최근 내가 나의 전업주부였던 시기를 통째로 미워하고 있단 걸 알아차렸다.
'제가 참 병신같이 살았죠' 라며 결혼시절, 그것도 유산 후 부모에게 기대어 산 시간을 묘사하는 내 언어가 보였다.
이것이 이혼 후, 나에게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는 허무함에서 나온 반응인 줄 알았는데... 콕 짚어 전업주부였던 것을 비하하다니! 이거 뭔가 있겠구나 싶어 파들어갔다.
그러자 "엄마"라는 키워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엄마처럼 살았다는 부분에서 나를 경멸하고, 수치스러워하고 있다. 그래서 이 지점을 붙잡고 더 들어갔다. 도대체 왜? 어떤 지점이?
처음엔, '전업주부'라는 표면적 상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 가부장제+ 성과중심의 언어에서 전업주부는 '아무것도 안 한 시간, 사회적으로 무가치한 시간, 경험이 축적되지 않은 공백, 멍청하게 흘려보낸 시간'이다.
나는 이걸 그대로 받아들여서 경험이라고 하면 = 돈을 벌었다, 경력이 남았다, 타인에게 증명 가능하다, 이력서에 쓸 수 있다, 나중에 써먹을 수 있다라고 믿었다.
그런데 내가 반복된 유산을 하고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고, 방향을 찾던 시기가 공백으로 남으니... 스스로를 '무용한 사람'으로 보게 된 것이다. 사실은 몸의 붕괴와 함께 정체성의 붕괴가 왔고, 죽음에 대한 고찰을 하며 '나는 아이를 원하는가? 진정 그렇게 살고싶은가?'라는 깊은 질문을 마주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나에게 전업주부란 기호에 = 경제력이 없는 여성이란 이미지 말고도 엄마를 보며 다른 것이 추가된다. 내가 본 엄마, 김*숙씨의 실체는 돈을 벌지 않으면서 아빠의 생활비에 의존하고, 가정 안에 머무르며 사회적 권력은 약하지만 뒤에서 사람들을 조종하는 약하지만 마녀같은 존재다. 이런 상징적 위치를 가지니, 내가 엄마와 비슷한 시기를 보냈다는 것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나는 겉으로는 약자이고,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사회적인 발언권은 없으면서... 감정으로 사람을 조종하고 피해자 위치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며, 뒤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그런 엄마같은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에게 엄마는 '생존모델'이면서 동시에 도덕적으로 금지된 동일시 대상이 되었다. "저렇게 살아남는 방식도 있다. 하지만 저렇게 되어서는 안된다"라는 강력한 메세지를 주는....
이런 구도를 보지 못한 어린 나는 겉으로는 분리되었지만, 내부에서는 강력한 감시와 처벌로 나를 방어했다. 그래서 내가 전업주부였던 자신을 잔인하게 때렸던 것 같다.
라캉의 이론으로 가면 좀 더 명확해진다.
라캉에서 히스테리적 주체는 겉으로는 약하고, 결핍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타자의 욕망을 조종하는 위치에 있다.
히스테리적 주체의 공식은 이것이다.
"나는 부족하다" -> "그래서 타자가 나를 채워야한다" -> "타자는 나를 떠날 수 없다"
내가 본 엄마의 모습은 정확히 이 공식과 겹친다.
"나는 불쌍하다. 약자다. 희생자다"라며 나(대상 a)를 못떠나게 한 것이다. 이 말들을 무력함과 연민을 유발시키지만, 실제로는 관계를 묶어도는 교묘한 권력의 언어이다. 나는 이 구조에 속해 어린 시절부터 너무도 길들여져있다.
그래서 전업주부였던 내가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자' 무의식이 삐뽀삐뽀하며 발작버튼을 눌렀다.
"이건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이건 엄마의 자리다!!!"라면서...
이 지점에서 혐오가 폭발했다.
여기까지 오니, 보인다. 나는 사회가 상징적으로 비하하는 '전업주부의 이미지'를 갖는 것도 두려웠지만, 무엇보다 '엄마처럼 관계를 작동시킬까봐' 가장 무서워했다. 엄마의 행동을 재현할까봐...
약자의 위치를 점유한 채, 도덕적 우위를 주장하고, 타인의 죄책감 위에 서는 방식 말이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알게 모르게, 전남편을 조종했을 것이다. 다행인지.. 그는 그에게 먹히진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이 방식의 희생자면서도 가해자였고, 이 지점이 너무 싫어서... 그 가능성이 보이는 나를, 전업주부란 언어로 가차없이 공격했다.
그 시기의 나를 그렇게까지 때리고, 지금도 그런 낌새가 올라오면 커다란 자기검열과 비하가 올라오는 이유는 내가 다시 통제권을 가지기 위해서이다. 엄마에게 휘둘리지 않는다는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건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야'라는 안전장치를 마련하며 자기혐오를 방어로 썼다.
여기까지 봤음에도 '엄마와 나는 천륜인데... 엄마는 안바뀌는데... 내가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어'라며 체념했다. 무조건 엄마를 덜보고, 안보는 날이 오길 기다리고(여기서도 도덕적 판단이 올라온다), 멀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엄마와의 관계는 이미 틀어져버렸고, 이 모든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집에서 태어났고, 저런 생존방식을 택한 욕망이 큰 엄마를 가졌고, 이렇게 자란 것은 내 업이라고... 운명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이런 체념의 방식 속에서 나는 늘 과거와 현재의 나와 싸워야만 했다. 엄마처럼 행동하는 것은 아닌지 늘 검열해야했고, 동시에 떠오르는 과거의 내 모습을 비하하고 경멸하기의 반복이었다. 미래도 비슷할 것이라며 변하지 못하는 우리를 미리 포기해버렸다.
그런데 오늘, 오래도록 묵힌 '엄마와 나'라는 주제를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보자... 생각의 방향이 아주 조금 바뀐다.
내가 엄마를 닮은 것도 맞다. 이런 엄마라도 인생에 고비가 오면 찾게 되는 것도 맞다. 엄마에게 '이번엔 다르겠지'라며 희망과 기대를 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엄마에게로 돌아가는 패턴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건 내 업이나 습이라기보다, 오래도록 가져온 정서적 구조다. 딱딱한 틀에 견고하게 짜여져 박힌 운명이 아니란 뜻이다. 단단하게 형성된 패턴이 맞지만, 이것이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나 정서는 늘 변하니까 말이다.
'나를 봐도 얼마나 변했는가?! 나란 인간이 새싹에서 줄기가 된 것이 바로 이 모든 기록에 나와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천륜이나 운명이라 부르지 않고, 심리적 패턴 정서적 구조라고 보기로 했다. 그러자 갑자기 다른 가능성이 열린다.
구조라면 관찰할 수 있고, 이렇게 이름을 붙일 수도 있다. 드디어 거리가 두어진 것이다. 드디어 나는 아이의 상태에서 '엄마는 강력해. 무서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라며 체념하기를 멈춘다. 나는 조금씩 다른 선택을 해볼 수 있다.(그렇게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내가 어디쯤 왔는지, 어떤 실천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변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는 것, 내가 그럴 수 있다는 것, 그런 힘과 틈이 있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 어떤 숨통을 열어준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계속 보고 또 들여다보고, 멈췄다가도 한 번씩 발악을 한다. 이런 다른 순간순간의 선택을 내리는 것_
이것이 나만의 리듬, 나만의 패턴이 될 지도 모르겠다. 엄마와는 다른 지도를 그리는 것 말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온 나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엄마의 실체를 보는 것은, 아플정도로 고통스럽고 무서운 일이지만... 그 안에서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방법을 찾느라 애썼다고... 그런 용씀이 참 기특하다.
이렇게 또 한 번의 분리가 이뤄졌다. 조금이지만 나의 주권을 가진 느낌이 든다.
잘했다. 잘하고 있고, 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