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관계맺기의 패턴
최근 '가장 보통의 연애'라는 영화를 봤다. 가볍게 보려고 했는데, 공효진 역에 얼마나 몰입이 되던지! 그녀의 센 방어기제가 마구마구 와닿았다. 마침 내가 지금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그러고 있던 참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벽을 쌓아놓고, '오빠 더이상 들어오지마. 지금도 과해. 내가 이런 거 시작부터 알고 있었잖아. 왜 존중해주질 못해?'라면서 그를 대하고 있었다.
오빠는 내가 그럴때마다 너무 무안하다며, 자신이 하는 표현을 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를 못하느냐고 했다. 경계를 세우는 것은 좋지만, 어느정도 열은데까지는 봐줘야지 왜 자꾸 팅겨내냐는 것이다. 제발 좀 받으라는 말과 함께...
그렇다. 나는 정말로 받는 것이 어렵다. 오빠랑 있을 때도 "내가 혼자 할 수 있는데, 왜 자꾸 끼어드는거야"라는 태도로 대한 적이 많다. 최근엔 날을 잡고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다.
시작은 부모의 조건적인 사랑이다. 나의 부모는 나에게 관심과 정성을 쏟아 키웠지만, 한 번씩 '너한테 교육비로 얼마, 병원비로 얼마가 들어갔다'라며 진심을 이야기했다. 이때의 배신감이란?! 나를 사랑해서 키운 줄 알았는데, 실제론 투자대상이었단 것을 직접적으로 들었을 때의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이때부터 나는 사람을 대할 때 뿌리깊은 불신이 생긴 것 같다. 태어나 처음 맺는 1차 관계인 부모로부터 '지금 저걸 받으면, 나중에 나에게 댓가를 요구할거야'라는 메세지를 깊이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어 쌓인 나는(재작년에 이혼할 때도 부모는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방어기제로 '도피'와 '입닫기'를 강화한다. 왜냐하면 감정적으로 미숙하게 구는 부모에게 너무도 시달렸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어린시절부터 내가 나의 감정이나 생각을 이야기해도 거부당함으로 오는 좌절이 컸다. 그런 나는 부모의 통제를 받지 않기 위해 어디로 숨어버리거나(해외 유학과 결혼) 대화를 하지 않는 전략을 썼다.
그리고 표층보다 더 깊은 인간관계를 맺을 때면
1.과도하게 줌으로써 나에게 통제권이 있음을 확인하고 안심하기
2.상대방이 나에게 잘해주면 그걸 받지 못하고 불편해하는 패턴을 갖게된다.
언젠가 나에게 댓가를 요구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뭘 받으면 빚진 기분이 들고 '갚아야 해' 라는 내적 메세지에 시달린다. 동시에 상대방을 의심한다. '이걸 주는 의도가 있을거야. 나중에 나를 이용할거야'라며 상대방을 믿지 못한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고 실제로 배신과 더불어 이혼을 겪고 난 뒤, 나는 "내가 혼자 해내여야만 해. 독립적이어야 해. 의존하지 말아야 해! = 내 의존성이 모든 것을 망쳤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미숙한 감정들을 처리하고, 내 의견은 무시당한 좌절의 시간이 쌓인 결과이기도 하다. 즉 혼자 감당한 시간이 매우 길다는 뜻이다. 그렇게 혼자 벽을 쌓고, 잔뜩 발톱을 세운 경계를 하며(밖으론 막 퍼주고 잘해주는 친절한 모습을 한 채) 타인이 내 안으로 한 발짝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실제로 저렇게 혼자있는 것이 먹히기도 했다. 동굴처럼 집에 쳐박혀 있으면서 안전이란 감각을 느끼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가 들어오지 않으면 나는 에너지를 적게 쓸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감정이 가라앉는 시간을 보내며 나를 달랬다.
하지만 이런 패턴과 그로 인한 강화된 '도피의 전략'을 인지하고 나니, 나는 좀 달라지고 싶다. '무조건 혼자 해내야만 해!'라는 목소리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다. 저런 무거운 책임이란 짐을 내려놓고, 도움과 사랑, 무조건적인 신뢰라는 것을 받고 또 받는 법을 배우고 싶다. 그렇게 상호의존과 독립이란 균형을 맞추고 싶다.
그 동안 나는 '저 사람은 나를 이용할거야'라는 불신을 갖고 세상을 바라봤던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저런 필터를 갖고 사니, 실제로 이용당한 사건(이혼)도 일어난 듯 하다. 하지만, 저 필터는 내 것이 아니다. 저것은 사업을 하며 사기도 당하고, 배신도 당하고, 가난의 공포를 자란 아버지의 것이다.
이혼 후 내가 겪은 세상은 저리 불신과 배덕으로 이루어진 곳이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갖고 싶은 필터는 나에게 1차적으로 씌워진 '배신의 필터'를 최대한 엹게 만드는 것이다. 동시에 '세상은 나에게 호의적이다'라는 경험을 쌓아 경계와 친절의 균형을 이루고 싶다.
궁극적으로 나는 사랑을 받고 싶은 것 같다. '언제 되갚아야 할지 몰라'라는 불안보다, '나는 이걸 받아도 되. 이건 사랑의 표시야'라는 믿음을 회복하고 싶다. 상처받아 웅크리고 있던 어리고 여린 희연은 조금씩 이를 마주하고 있다. 이를 기록하기 위해 이곳에 남겨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