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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ss Jun 18. 2021

#안창부부


  23살에 서로를 만나 불같이 연애하는 6년을 보낸 우리가 어느 덧 결혼 6년차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자타공인 ‘안창부부’이다. 우리의 이름인 안희연과 이은창을 줄여 #안창부부 인 것이다. 그리고 3년전에 입양한 강아지 깨비까지 합세해 우리는 ‘안창팸’으로 완전체가 되었다. 


  우리는 동갑부부로 2009년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라는 도시에서 만났다. 나는 러시아어문학을 전공해, 대학교 3학년 때 교환학생으로예카테린부르크로 갔다. 남편은 좀 특이한 케이스로 예카테린부르크에 있는 우랄국립대학교에 입학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예카테린부르크는 러시아중간에 위치한 내륙도시로 공업이 발달되어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대구와 같은 도시이다. 이 곳은 1990년대까지 외국인과 교류가 없던곳으로 내가 갔던 시절만 해도 외국인 특히 동양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길거리를 지나가면 손가락질과 함께 러시아어로 욕하고 나를 보고, 비웃는 일이 허다했다. 슈퍼에서는 러시아어를 잘 못 알아듣는다며 캐셔가 나에게 잔돈을 집어 던지는 일도 있었다. 나는 미국의 가짜 친절이라 할지라도 ‘Hi, How are you?’ 라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문화에 익숙해 있던 차라, 러시아에서 대놓고 아시아인을 비하하고, 인종차별 하는 것에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의 이런 인식도 나를 힘들게 했지만, 그보다 사는 환경도 한국과 비교하면 너무 뒤쳐졌다. 와이파이와 같은 통신망이 깔려있지 않아 한국에서 쓰던 스마트폰은 쓸모가 없었다. 이에 기능이 거의 없는 흑백휴대폰을 사서 전화카드를 충전해 한국에 있는 엄마아빠와 친구들에게전화를 해야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로 온 것 같았다. 

학교에선 배려를 한다고 외국인 기숙사에 배치해줬지만, 이 곳의 상황 또한 기함을 하게 만들었다. 우선 바퀴벌레가 드글드글 끓었다. 또 뻑하면정전이 되고, 녹슨 관을 타고 녹물이 줄줄 흘러 샤워를 하고 나면 몸이 간지러웠다. 러시아 기숙사는 공동주거형태가 기본이라, 4가구가 화장실 한개와 샤워실 하나를 공용으로 사용해야했고, 부엌은 8가구가 함께 썼다. 위생상태가 얼마나 엉망인지는 굳이 쓰지 않으려 한다. 이곳에서 난 생기를잃고 점차 시들시들해졌다. 처음 러시아에 갈 때는 현지 친구도 사귀고, 유명하다는 러시아 발레도 보러 다니며 무언가 진한 문화를 접할 것이라생각했는데 그 기대가 와장창 깨져버렸다.


  그렇게 시름시름 앓으며 한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을 때, 한국인들끼리 기숙사에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은 일이 있었다. 그 때 은창이를 만났다. 이미 예카테린부르크에서 3년동안 구르며 유학생활을 하고 있던 은창이는 비공식 한인회장이었다. 그는 러시아어실력도 수준급이며, 이곳의 지리도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기숙사에선 개인 세탁기 설치가 금지였는데, 그는 어떻게 했는지 드럼세탁기를 방에 보유하고 있었다!!! 나는 3달동안 쪼그려 앉아 손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은창이를 보고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은창이는 내가 적응을 못하고 많이 힘들어 하는것을 보고는 부대찌개를 해주고, 흔쾌히 세탁기를 사용하게 해주고, 함께 산책을 나가 그 동네 지리를 익히게 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기숙사공동부엌에서 함께 호떡을 구워먹고 러시아맥주인 발티카(балтика) 를 마시며 급격히 친해지며 사랑에 빠졌다. 이때의 추억이 강렬해서일까? 그뒤 우리의 6년간 불타는 연애 역사 속엔 남편의 군생활도 은창이가 러시아로 다시 돌아가 학업을 마치는 롱디도 포함되어있다. 물론 동갑친구답게‘내가 옳다’ 며 전투적으로 싸우는 일은 허다하지만, 그래도 이 친구를 열렬히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요즘 은창이는 이직 문제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현 직장의 사장은 작년 12월에 자기 말을 안 듣는 임원진과 직원들을 모두해고하고, 고졸 신입사원으로 남은 인력을 채워 넣었다. 인수인계도 할 시간도 주지 않고 내쫓았기에, 중간관리자인 은창이가 떠맡은 업무는어마어마하다. 도저히 안될 것 같아 사표를 쓴 은창이에게 사장은 ‘너가 나가서 잘될 것 같냐, 내가 너 아버지였으면 귀싸대기를 때렸을거다.’ 라며악담을 퍼부었다. 상처받고 집에 와 잠자리에 든 그를 보았다. 그의 머리에는 어느덧 희끗희끗 새치도 많이 보이고, 눈가에 주름도 깊은 것이 세월이느껴진다. 짠한 마음과 함께 23살의 싱그럽고 소년 같던 은창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늘 은창이는 이직을 위해 지원한 외국계 회사에 면접을 갔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단정하게 차려 입고 나가는 그를 배웅하며우리의 첫 만남을 떠올려보았다. “은창아, 우리 화장실 한 칸과 샤워부스 한 대 갖고 12명이서 나눠 쓰는 곳에서도 살았잖아. 잘될거야. 창이 믿어(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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