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몸아.
먼저,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고 말하고 싶어. 어릴 때부터 우리는 참 많은 시선을 받았지. ‘여자는 이래야 해.’ ‘조심해야 해.’ ‘짧은 건 입으면 안 돼.’ ‘속바지를 입어야 해.’ ‘치마보다는 바지가 안전해.’ ‘따뜻하게 입어야 해.’ 이런 말들은 모두 너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시선들이었어. 그걸 버텨낸 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학창시절, 너는 얇은 스타킹에 교복치마를 입고 추운 곳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했어. 그때 너의 허리와 다리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다리에 쥐가 나고, 혈액순환이 안 되고, 호르몬은 날뛰고… 그 누구도 너에게 쉬어가라고 말해주지 않았지. 지금 네 몸에 있는 튼 살들과 셀룰라이트는 그때의 흔적일지도 몰라. 그래도 너, 정말 고생 많았어. 애썼어.
희연아.
대학에 가서도, 너는 또 다른 폭력에 시달렸지. 스키니진과 하이힐, 유행이라는 이름의 억압. 너의 작은 가슴에 대한 조롱, 선배들의 무례한 말들. 그건 농담이 아니었어. 폭력이었지. 그 말들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너. 얼마나 불안하고 위축됐을지, 나는 이제야 알 것 같아.
그리고 러시아. 전남편을 따라 간 그 낯선 곳에서도, 너는 끊임없이 비교되고 불안해했지. 작은 가슴, 두꺼운 다리. 너를 감추려 애썼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만지지 말아줘”라고 말해야 했던 너. 그때의 너는 참 순수하면서도 외롭고, 겁이 많았던 것 같아. 그곳에서 겪은 고통도 컸지. 차가운 겨울, 낯선 언어, 그리고 “부모를 실망시켰다”는 죄책감. “나는 남자 따라, 부모를 배신하고 와서는 몸까지 버렸어”라고 너를 책망했지. 그 죄책감이 너의 자궁에 닿아, 자궁내막증으로 이어졌을지도 몰라.
결국, 결혼과 임신, 유산. 두 번의 유산, 그것은 단순한 의학적 사건이 아니었어. 엄마의 언어, “애를 꼭 낳아야 한다”는 그 무의식적인 명령이 너를 평생 옥죄었지. 너는 엄마의 대리인이었어. 아들을 낳지 못한 엄마의 좌절을 짊어진 채, 태어날 때부터 ‘재생산을 위한 몸’으로만 살아왔지. “엄마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너 자신을 너무 오래 외면했던 거야.
하지만 이제는 알아. 왜 그토록 임신에 집착했는지, 왜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는지. 왜 부모 앞에 서면 수치스럽고 면목 없었는지. 모든 게 엉켜 있었던 거야.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우리 안에 깊숙이 각인된 구조였던 거야. 그리고… 사실 부모는 너를 여성으로서 원하지 않았던 것 같아. 딸로서의 너는 늘 불편한 존재였어. 하지만 희연아,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는 네가 선택해서 태어난 게 아니잖아? 그들의 불만족은 그들의 몫이야. 너는 더 이상 그 짐을 질 필요 없어.
온전한 나의 이야기 -------------------
오히려 나는 내가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좋아. 여성성이 가득한 내 몸, 내 허리와 엉덩이 라인도 나름 예쁘다고 생각하고, 작은 가슴은 일상에서 오히려 편해. 이렇게 내 몸은 여성성과 남성성이 조화롭게 이루어진 곳이야.
더불어, 나는 자궁내막증 수술을 받은 몸이고, 두 번의 유산을 겪은 몸이기도 해. 내 몸은 나를 이루는 모든 역사와 전투의 흔적이기도 하면서, 내가 그 모든 것을 겪고도 살아남았다는 증거야. 그 모든 경험 덕분에 내 몸의 신호에 더 민감해졌고, 어디가 아프면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도 알게 됐어.
내 생각에, 지금 내 몸은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한 상태야. 너도 동의하지? 너는 지금 너의 내면, 욕망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고 있잖아. 희연아, 이렇게 살면 되는 거야. 너의 것이 아닌 소리들은 그냥 흘려보내면 돼. 혹여 들어왔다 해도 디톡스하면 되지 ^^
희연아, 정말 기특해. 너는 몸과 마음의 소리를 듣고, 진짜 너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이야. 그래서 그런 너라서 나는 참 좋다. 희연아, 너는 어떤 몸을 가졌든 나는 언제나 너 편이야. 너를 온몸과 마음을 다해 지지할 거야. 지금까지 버텨줘서, 살아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 사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