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립일기

[몸의 일기] 나는 내 몸을 다시 입는다.

by Tess

요즘 나는 주 1~2회 폴댄스를 꾸준히 다니고 있다.

심지어 어떤 날은 출근할 때 폴복을 챙겨가서, 퇴근 후 바로 운동하러 간다.

집에 들렀다간 게으름을 이기지 못할 걸 알기에, 일부러 저녁도 센터 근처에서 해결한다.

이 정도로, 폴댄스가 재미있다. 진심으로!


수업은 총 60분. 그중 절반은 웜업이고, 나머지 30분 동안 본격적으로 폴을 탄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동작들이 된다’는 사실이 나에게 커다란 성취감을 준다.

직장에서는 느끼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성취감이다.

폴을 타는 순간, '내가 할 수 있을까? 떨어지면 어떻게하지?' 라는 아슬아슬한 도파민이 느껴진다. 너무도 진하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날의 동작을 해내면 어떤 짜릿함과 동시에 자존감이 확 솟는다.

“내가 내 몸을 이용해서 이런 것도 해내는구나.”

그 자체로 나에게 큰 힘이 된다.


며칠 전.. 폴웨어를 처음 샀다.

3부 레깅스 같은 짧은 하의는 태어나서 처음 입어보는 수준이라, 큰 용기가 필요했다.

사실 폴댄스 시작 이후로 쭉 일반 운동복으로 버텨왔는데, 어떤 동작들은 피부 마찰이 꼭 필요해서…

결국 고민 끝에 샀다. 앞으로는 아마 더 짧고, 더 노출이 있는 옷을 입게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폴을 탈 때 ‘몸을 드러내는 일’은 오히려 안전한 일이 된다.

며칠 동안 온라인 폴웨어 샵을 들락날락했는데, 그냥 옷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는 것과는 또 다른 장벽, 방어막 같은 게 느껴졌다.

“이건 그냥 운동복인데… 왜 이렇게 수치스럽지? 창피하지?”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알게 됐다.

내 몸에 대한 엄마의 언어가 여전히 내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단 걸.


어릴 적부터 엄마는 내 옷차림을 철저히 감시했다.

“여자는 아래가 따뜻해야 해.”

“짧은 건 입지 마.”

“치마를 입을 땐 꼭 속바지를 입어라.”

그 모든 말의 핵심은, ‘임신과 출산을 준비해야 하는 몸’이었다.

나의 다리는, 나의 배는, 나의 몸 전체가 ‘엄마의 계획’ 안에 있었다.


엄마는 늘 말했다.

“여자는 결국 애를 낳아야 한다. 네가 못 낳으면, 네가 끊는 거야. 그건 안 돼.”


이런 언어에 둘러싸인 채 나는 살아왔다.

임신을 원하지 않는 내 마음이 올라올 때면, 죄책감이 나를 덮쳤다.

유산조차도, 나의 상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죄처럼 여겼다.


그동안 나는 “운동하면 건강해지겠지”,

“건강해지면 임신이 되겠지”,

“아이를 낳고, 건강한 엄마가 되어야지” 같은 도식 속에서만 몸을 움직였다.

몸의 모든 행위는 ‘임신’이라는 목적에 묶여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세계를 떠났다.

이젠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물론 여전히 조심해야 할 것도 있지만)

덜 입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마주한다.

조금씩, 몸 위에 붙은 타인의 언어와 욕망들을 알아차리고, 떼어내는 중이다.


오늘도 한 꺼풀 벗었다.

몸도, 마음도 조금 더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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