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댄스를 시작하고 나서, 나는 ‘몸을 드러내는 일’에 유독 긴장하고 있다는 걸 자주 느낀다.
171cm에 52~53kg 정도 나가는 저체중임에도 불구하고, ‘더 말라야 한다’, ‘허벅지가 말라야 한다’, ‘셀룰라이트는 없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다닌다. 그 말들은 나를 계속해서 채근하고, 내 몸을 불완전한 것으로 규정짓는다.
오랫동안 나는 내 콤플렉스가 ‘두꺼운 다리’, ‘울퉁불퉁한 셀룰라이트’, ‘매끈하지 않은 피부’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최근에서야 그 표면 아래에 ‘불균형’이라는 더 근원적인 감각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내 허벅지에 살이 있는 것도, 오동통한 엉덩이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느낀다. 문제는 지나치게 마른 상체와 함께 놓였을 때, 다리가 상대적으로 더 뚱뚱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내 몸이 조화롭지 못하다고, 어딘가 비율이 어긋나 있다고 느낀다. 결국 내가 싫어했던 건, 어느 한 부위가 아니라 **‘흐르지 않는 전체의 감각’**이었다.
몸 어딘가에서 에너지가 막힌 듯한 느낌_
특히 하체에 정체된 것 같은 그 무거운 느낌은, 단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멈춤'과도 닮아 있다.
나는 이 불균형을 ‘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몸과 마음의 흐름, 순환의 단절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인지 요가나 명상처럼 ‘순환’을 이야기하는 활동들에 자연스레 관심이 간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살아내는 사람들에겐 묘한 부러움과 존경의 감정이 함께 밀려든다.
이렇게 바라보니, 나는 단순히 ‘글래머가 아니라서’, 혹은 ‘가슴이 작고 허벅지가 굵어서’ 몸에 콤플렉스를 느낀 것이 아니었다.그보다도, 이미 오래전부터 내가 알아차리고 있었던 ‘막힘’, ‘멈춤’, **‘불통’**이 내 안 어딘가에 있었고, 그 감각이 몸의 형태로 표현되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이 먼저 느끼고, 몸이 따라 반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내 몸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우리가 흔히 듣는 ‘기능하는 몸’이라는 기준은 과연 해방적일까? 그 기준 아래서, 늙은 몸이나 장애가 있는 몸, 혹은 나처럼 불임의 몸은 또다시 ‘비정상’으로 규정되지 않을까?
몸을 정말로 몸 그 자체로 볼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시선과 여성에게 부여된 의미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란 가능할까?
폴댄스를 시작한 지 어느덧 4개월, 나는 드디어 폴복이라는 걸 샀다.
그전까지는 늘 3부 레깅스를 입고 수업을 들었지만, 어제는 그것보다 짧은 치마바지를 입었다.
그 옷을 입고 처음 수업에 들어갔을 때, 나는 어색함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여자들만 있는 공간이었지만, 나는 계속 밑단을 잡아내리며 내 다리를 감추려 애썼다. 남들은 사실 나의 몸에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내 안의 오래된 긴장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는다. 아직도 ‘보여지는 몸’에 대한 낯섦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도 나는 이제 내 몸을 임신이나 재생산의 도구로 여기지 않는다.
그런 시선에서는 확실히 멀어졌다. 이제 나는, 내 몸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다.
기존의 역할과 의무에서 조금은 벗어나, 희연과 희연의 몸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유연하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지를 계속 질문하고 싶다.
폴을 타며, 몸을 드러내며,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그 질문을 다시 꺼내본다.
나와 내 몸은 어디까지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