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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리 Dec 05. 2021

그럼 그냥 퇴사할게요

독립근무자의 치열한 라이프스타일, 시작

“그럼 그냥, 할게요 퇴사!”


2021년 8월, 나는 만 5년이 넘도록 근무한 첫 회사에 사직서를 던졌다. 그것도 대면도 아닌 재택 근무 중 퇴사 통보를 하는 다소 무례하고도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성의가 없다거나 예의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름대로의 변명을 하자면 나는 개발도상국이 거주 중이며, 당시에는 국가의 코로나 락다운으로 인해 외출이 금지 된 상황이라 모두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사와의 대화 중 그 말을 내뱉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 닥쳤다.


“그럼 어쩔 수 없이 퇴사 처리로 결정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척, 회사에 미안한 척 하며 넌지시 말을 건냈다. 하지만 내 마음 속 외침은 달랐다 “그래요? 그럼 그냥, 할게요 퇴사!”


그렇게 나는 다른 누군가가 보기에 코로나로 인한 실직자가 되었다. 그것도 진급을 4개월 앞두고 말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지난 5년이라는 세월을 정리하는 경우가 있을까? 


순간적으로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사람들을 만나 서로 시원섭섭하게 나눌법 했던 마지막 인사도 퇴사 통보 이메일로 대신하게 되었다.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씁쓸했던 것은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지 못해서가 아니다. 5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정리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애정을 쏟았던 직장  나의 역할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바로 기업이 돌아가는 방식이다. 특히 큰 기업일수록 더 그러하다. 코스피에 상장되어있던 중견기업인 나의 전 직장에서 내 일을 대체할 사람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당연했다. 단지 씁쓸했던 감정이 드는 것은 내게 퇴사의 경험이 처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과 건강, 가족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유로 인해 한국에 임시적으로 방문할 방법을 찾고 있던 내게, 휴직도 휴가도 허가되지 않았던 회사는 더 이상 함께 갈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이해를 하기 힘들것이다. 하지만 이해를 바랄 필요는 없었다. 내 인생은 내 인생이니까. 회사보다는 내 인생이 더 중요한 나는 MZ세대니까. 하지만 이렇게까지 자신감있게 퇴사 하겠다고 얘기할 수 있었던 데에는 모두 “가장 안전한 상황에서, 가장 치열하게, 가장 위험해질 그 언젠가를 대비”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남은 사진




가장 안전할 때 가장 치열하게 대비한 가장 위험해질 그 언젠가


그래서 나는 지난 날의 삶에 대한 후회가 없다.


남들의 시선으로 보기엔 코로나로 인해 한국으로 도피하다가 실직자가 된 대표적인 케이스겠지만, 내 개인적인 인생에서 코로나는 나의 커리어 전환을 앞당겨 준 고마운 계기이기도 하다. (물론 누구보다 코로나 종식을 꿈꾼다. TMI지만 나는 30개국이 넘는 해외를 돌아 다녔다. 자유롭게 비행기를 타는 세상이 오길 그 누구보다 바란다.)


전 회사가 내게 남긴 것은 결혼할 배우자와, 평생 갈 친구들, 그리고 직장이라는 생태계에 대한 이해와 종잣돈을 만들어 준 월급이다. 그리고 결국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회사는, 사실 지금의 알찬 내 인생을 만들어 주었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그리고 독립 근무자로 일을 하며 이전과 같은 월수입을 벌고 있다. 물론 복지는 사라졌고, 집이 근무지인지 휴식의 공간인지 가끔 헷갈린다. 그래서 워라밸이 붕괴될 때도 많다. 미래가 보장되지도 않는다. 물론 전 직장에서도 평생 직장이라던가 정년 보장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지만, 지금의 내가 하는 일은 당장 오늘 일거리가 사라져도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는 계약이다.


하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문 밖을 나서야 하는 출퇴근 시간이 사라졌다. 나 스스로 출근 모드 온앤오프가 가능하다. 점심 시간을 2시간씩 가지며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쇼파에 기대어 카페라떼와 함께 책을 봐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운동은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시간대에 가서 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생겼다. 물론 나 스스로 풀어지지 않게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고 삼시세끼를 잘 챙겨 먹도록 강력한 자기규율을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나 스스로 내 시간을 계획하고 통제하는 이 기분이 참 좋다. 회사를 갈 때는 6시 기상이 힘들었는데, 왜 지금은 힘들지 않지? 





아마도 지금은, 좋아하는 환경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극히 평범했던 나였기에, 이런 삶을 살게 되기까지 많은 준비 과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동시에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내려 놓아야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생에 둘도 없을 많은 것들을 성취할 수 있었다.


앞으로 풀어갈 나의 이야기들은, 오늘도 적성에 맞지 않는 회사 생활을 하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직장러들이 “좀 더 자유롭게 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할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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