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그때는 토요일에도 학교에 나갔다. 대신 4교시까지만 했는데 오전은 교과수업을 하고, 오후는 6시까지 자율학습을 해야 했다. 어차피 공부를 포기한 아이들은 잠이나 자거나 만화책을 보거나 딴짓만 한다.
우리는 2주 전부터 영화 '더티 댄싱(Dirty Dancing)'에 꽂혀 있었다. 언니가 대학생인 선미가 "울 언니가 보고 왔는데 엄청 야하대. 춤이 한마디로 진짜 더티하대."라고 말문을 열었다. 태숙이는 영화를 좋아해 영화잡지를 매달 서점에서 보는데(사지는 않고) 이번 달 모든 잡지에는 그 영화 얘기로 가득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화가 보고 싶었다. 영화 더티 댄싱은 미성년자 관람불가였다. 즉 우리 같은 고등학생은 못 들어간다. 우리는 작전을 짰다. 선미는 언니의 립스틱과 아이쉐도우 등 화장품 일체를 맡기로 하고, 태숙이는 고데기를 가져왔다. 준희랑 나랑은 언니가 있는 친구들에게서 옷과 가방, 구두 등을 빌렸다.
토요일이 되었다. 문제는 어떻게 오후 자율학습을 빼먹는가 였다. 일단 시간차를 두고 교무실로 갔다. 담임이 총각 선생님이었는데 일부러 "생리통이에요. 너무 배가 아파요."하고 말했다. 학기초에는 얼굴이 빨개지셔서 우리의 그런 변명에 무조건 집에 가라고 자율학습을 빼줬지만 총각 샘에게 몇 달이 지나니 이런 이유는 통하지 않았다. 큰아버지 생신이라 멀리 가야 한다고 했지만 이것도 "집에 전화해 볼 거야." 하는 소리에 그대로 교무실을 빠져나와야 했다. 우리 네 명 중 자율학습 면제권을 획득한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그냥 자율학습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자율학습을 감독하는 선생님들이 한 명씩 남아서 떠들면 조용히 시키고, 아이들이 도망가면 명단을 체크해 다음 주 월요일에 와서 벌을 서야 했다. 그날은 학생주임인 물리샘이 남았다. 학교에서 제일 무섭고, 체벌도 강하게 하는 걸로 유명한 샘이었다. 잠깐 망설였지만 우린 오후 자율학습이 시작하자마다 한 명씩 살금살금 빠져나갔다.
그 당시 제일 번화가인 남문에 중앙극장이 있었다. 우린 미리 준비해둔 옷으로 갈아입고, 화장도 하고, 고데기로 머리를 만졌다. 극장 입구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4장의 표를 구매하는데도 성공했다. 그때는 극장에 꼭 상영시간에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중간에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었다. 자리도 지정되어 있지 않아서 유명한 영화는 끝나지도 않았는데 미리 들어가 자리를 맡으려고 눈치를 봤던 기억이 있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Dirty Dancing'은 17세의 프란시스와 가족이 여름방학 때 산장으로 피서를 떠나는 내용으로 시작을 한다. 60년대 배경이었는데 그때 미국에서는 부자들이 주로 여름에 휴가를 그렇게 보냈다. 그곳에서 순진하고 모범생인 프란시스는 춤을 가르쳐주던 댄스 교사를 만난다. 그가 자니인 페트릭 스웨이즈였다. 그들이 추는 춤은 그 당시에는 음란하고, 필요 이상으로 접촉(?)이 많은 더티 댄싱이었다. 많이 배우지 않고 가난한 자니와 좋은 집안의 프란시스가 만나 춤을 추고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었다. 음악도 좋고, 춤도 멋졌다. 가끔 키스를 하고, 야한 춤을 추고, 밤을 보내는 듯한 장면에서는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영화가 끝나고 친구들도 감동한 표정이었다. 고등학생이 자율학습을 빼먹고, 몰래 와서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 보기에 성공했다는 동지의식도 있었다.
문제는 극장을 빠져나오면서 발생했다. 영화 얘기를 하며 나오는데 출구에 학생주임이 서있는 것이었다. 분명히 두세 시간 전에 학교에서 봤는데 그사이 극장으로 아이들을 잡으러 온 것이다. 그 당시는 주말에 학교샘들이 번화가 주변을 시찰했다. 혹시 청소년들이 가지 말아야 할 장소나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지 않을까 감시를 했다. 거기에 우리가 딱 걸린 것이다. 토요일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화장을 하고 감히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보러 왔으니, 우린 순간적으로 '이젠 죽었구나'싶었다. 평상시 엄격하고, 무섭고, 매를 드는 것도 자주 보았으니 말이다. 이건 '부모님 모시고 와'소리를 들을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학생주임 샘은 우리를 끌고 시장 골목으로 향했다. 어디로 가는지 보다는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벌을 생각하느라 잘못했다고 빌지도 못했다. 그런데 샘이 우릴 데리고 들어간 곳은 분식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게 그렇게 보고 싶었냐. 학생이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잘하는 짓이다. 어떤 벌을 받을지 월요일을 기대해."라고 말하며 일단 먹을 것을 시켜주셨다. 그곳은 쫄면, 냄비 가락국수, 만두 등이 유명했는데 여러 개를 시켜줬다. 그때 그 분식이 맛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평상 시라면 콩나물을 잔뜩 넣어, 새콤달콤한 비빔장이 일품인 쫄면을 서로 먹겠다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곳은 매운데도 중독적이다. 친구랑 가면 냄비 우동을 시켜서 탁자 가운데 두고 쫄면을 먹다가 매우면 우동을 한 젓가락씩 먹으면 끝내주는 곳이었다. 냄비우동은 조금씩 찌그러져 있었고, 유부가 잔뜩 들어있고, 쑥갓이 올려져 있었다. 계란이 안 익혀져 나오면 뜨거운 우동국물에 마구 휘저어 탁해진 그 국물을 떠먹는 맛이란... 나중엔 냄비를 통째 들고 국물을 남김없이 다 먹고 배를 두드리며 나오는 곳이기도 했다.
그 식탁에서는 맛보다 분위기가 기억난다. 학생주임 샘은 근엄한 표정으로 학생의 본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서 젓가락질을 멈추기도 했고, 혼날 생각에 단무지도 하나 제대로 집어먹지 못했고, 당장이라도 큰소리를 치거나 막대기로 맞을 것 같아서 조심했었다. 거의 다 먹었을 무렵 샘은 "영화가 재밌었냐."라고 물어서 그냥 웃기도 했다. 그 분식집에서 나온 후 근처의 공원에서 음료수를 한 병씩 사준 샘이 말했다.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것이다. 너희들 나이엔 한 번쯤 그런 일을 호기심에 해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다음부터 그러면 안돼. 다른 아이들한테도 얘기하지 말고, 다음에 걸리면 그때는 국물도 없어." 이런 이야기였다. 샘과 헤어지고 우린 믿을 수 없다고, 샘이 뻥치는 거라고 했지만 월요일 진짜 우리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샘을 복도에서 마주쳐도 평상시의 무서운 표정일 뿐 그날을 아는척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우리에게 그날이 꿈처럼 남아있고, 그 분식집을 갈 때마다 그때를 떠올렸다. 그 이후로 친구들이 학주 샘을 욕할 때마다 우린 샘 편을 들어서 친구들에게 눈총을 받았다. 지금도 쫄면을 먹을 때면 더티 댄싱과 학주 샘이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