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떠나게 됩니다

보통 사람의 평범한 가계부_6. 여행비

by 단아정담

손쉽게, 여행을 훌쩍 떠나는 사람이었습니다.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가깝게는 일본으로, 멀게는 캐나다며 유럽으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부산과 제주도에, 동남아 휴양지에 며칠씩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맞으면 친구나 언니와 함께, 시간이 맞지 않으면 혼자 떠나는 것도 거침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혼자서 여행간다고 하면 그렇구나 하지만, 20년 전부터 혼자 여행을 다녔다면 저도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혼 후에는 배우자가 여행 메이트가 되었습니다. 타고난 집순이 집돌이도 아니고 역마살 낀 사람들도 아닌지라, 열심히 회사 다니다가 둘의 시간과 재정 여건이 동시에 허락할 때 가끔 떠났습니다. 개인일정, 가족일정 맞추다보면 일년에 한두 번 국내, 일이 년에 한 번 정도 해외로 떠나게 되더라고요. 저는 일단 마음 먹으면 떠나는 게 중요한 지라 비행기와 숙소를 크게 가리지 않습니다. 배우자는 떠나려는 결심을 쉽게 하지는 않지만, 일단 마음 먹으면 비행기와 숙소가 중요하고요. 제가 마음을 먹고 제안하면 배우자가 비행기와 숙소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여행은 경비가 쑥쑥 올라가더군요. 혼자일 때 보다 예산이 두 배가 아니고 체감상 세 배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짐도 많을 뿐더러 여행가도 장소를 바꿔서 육아하는 것 뿐이라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워터파크 가서 슬라이드도 못 타고, 바다 가서 스노클링도 못 하고, 관광지에 가서 관광명소도 다 돌아보지 못하는데, 뭐하러 가나 싶어서요. 아이와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한 것은 저와 아이 둘이 외국에서 살았던 시기였습니다. 3일 이상 쉬는 연휴가 종종 있었는데, 눈 떠서부터 눈 감을 때까지 둘이서만 얼굴 보고 지내니 시간이 더디 가더라고요.


그래서 3일 이상 쉬는 날이면 무조건 떠났습니다. 두 시간 거리의 놀이공원은 단골 여행지였고, 열시간 운전해야 갈 수 있는 친척 집에 다녀오기도 하고, 2주 넘게 둘이서 자동차 여행도 했습니다. 혼자 운전해서 아이와 긴 여행 다녀오는, 동네에서 유명한 엄마가 되었지요. 비행기를 타고 나가면 기본 일주일, 길게는 한달 동안도 여행하고요. 그렇게 2년이 지나자 아이와 저는 꽤 잘 맞는 여행 메이트가 되었습니다.


저 혼자 아이를 데리고 다니니 숙소는 안전한 동네에 있어야 했습니다. 코로나 시절에는 위생과 청결에도 더더욱 신경쓰고요. 게다가 제 아이는 하루 세 끼 꼭 챙겨먹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지라, 안전한 동네, 깨끗한 시설에 조식까지 포함하니 숙소비가 껑충 올라가더라고요.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공원은 물론, 좋다고 하는 것들 많이 보여주고 싶은 엄마 마음에 유명한 박물관이나 관광명소는 반드시 들르게 됩니다. 입장료 필요하지요. 한창 커야 하는 아이 데리고 다니면서 밥은 고기로 사 먹이고 중간중간 간식으로 과일도 먹입니다. 어른인 배우자와 다닐 때만큼 식비가 많이 드네요?!




때가 되면 떠나고 싶은 저, 비행기와 숙소가 중요한 배우자, 삼시세끼 맛있는 식사와 재미있는 활동이 필요한 아이로 구성된 저희 가정의 여행비는 늘 제 예상금액을 가뿐히 뛰어넘습니다. 분명히 비슷한 금액 대의 유럽여행 광고를 본 것 같은데, 저희는 동남아에 다녀올 뿐입니다.


날짜는 물론 극성수기입니다. 비수기에 평일 연차를 며칠씩 쓰기에는 배우자와 저의 상황이 녹록치 않네요. 여름휴가, 명절, 연말처럼 국내외를 막론하고 숙소비가 최고조인 시기에, 항공료도 두 배 이상 올라가는 시기에 떠나요.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오겠냐고, 최대한 오래 있는 게 남은 거라며 4박 이상은 여행지에 머무르는 일정을 짭니다.


이왕 가는 거 좋은 데 가자는 배우자 덕에 저도 좋은 호텔에 가 봅니다. 아이 덕에 조식은 당연히 포함하고요. 맛집 역시 배우자와 아이의 몫입니다. 둘이 어쩌면 그렇게 맛있지만 결코 싸지 않은 식당을 잘 찾아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왕 왔으니 맛있는 현지음식 먹어야지, 가성비는 저리 가라 입니다. 하루 종일 셋이 얼굴 맞대고 방에서만 삼일 이상 붙어 있으면 싸울 수도 있습니다. 수영장, 놀이공원, 워터파크, 스노클링으로 하루하루를 채웁니다.




여행비가 늘 예산을 넘어가는 이유에 대해서 길게 설명했지만, 사실 저는 이 시간을 즐기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만 좋자고 쓰면 아까운 돈을, 배우자와 아이가 원하는 데에 쓰고 저는 그냥 얹혀가는 것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더 편하니까요. 집과 회사라는 일터에서 멀리 떨어져 낯선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만, 배우자가 사랑하는 좋은 숙소와 아이가 행복한 맛있는 음식에 제가 기대하는 즐거운 경험까지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이거 아낀다고 삶이 뭐 그렇게 달라지겠어, 이런 시간도 있어야지 하는 생각도 하고요.


낯선 곳에서 서로 의지하는 시간, 새로운 모습들을 보며 서로를 더 이해하는 시간, 일상의 무거움과 고단함을 잠시 잊고 함께 많이 웃는 시간들이 소중하니까요. 언제든 마주 앉아 '그 때 우리 그랬잖아' 하며 소소한 이야기들을 공유하면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추억이 소중하니까요.


여행비는 늘 제 예상치를 뛰어넘지만, 이런 이유로 저희의 가족여행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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