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빌 언덕

보통 사람의 평범한 가계부_7. 부모님 챙기기

by 단아정담

2024년 11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2년 국민이전계정' 자료 중에는 '1인당 생애주기적자'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개인의 생을 기준으로 보면 0세부터 28세까지는 적자, 28세부터 61까지는 흑자, 62세부터는 적자로 전환된다고 합니다. 28세까지 적자가 누적되다가 28세에 직업이 안정화되면서 흑자로 전환하고 61세까지 흑자가 누적됩니다. 61세까지 누적된 흑자 금액으로 62세부터 살아가게 되는 인생 흐름입니다.


기사를 보며 '나는 한창 인생의 흑자 시기를 지나고 있는데, 왜 풍족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생각해 보니, 지금 저의 흑자로 아이 인생의 적자를 메꿔주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벌어 혼자 쓰는 것이 아니고 아이의 생활비와 교육비까지 지출하고 있으니까요. 반면, 제가 지금 흑자시기를 맞이한 것은 제 인생의 적자 시기를 메꿔주신 부모님 덕분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부모님께서는 막 본인들의 흑자 시기를 시작하고 계셨을 테지만, 흑자 기간 내내 알토란 같은 자식들의 적자를 채워주셨을 겁니다.




예전에는 노후 시기의 적자를 자식들이 채워주었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이 부러움을 사는 일이었고, 논 팔이 소 팔아 자식들을 공부시켰지요. 집안의 재산을 몰아서 지원해주다가 성공한 자식 한 명이, 또는 그럭저럭 키운 자식 여럿이 십시일반해서 부모님을 부양하던 것이 사회적 관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본인들의 인생 흑자 시기에 노후를 스스로 준비한다는 개념이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노후준비가 중요한 인생과업으로 대두되었죠. 1997년 외환외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개개인의 흑자 시기가 짧아지기 시작했을 겁니다. 자식들은 한창 크고 있고 부모님들은 본인 공부시키느라 모아놓은 자산도 없으시니, 윗 세대와 아랫 세대 적자를 메우기에도 벅찼겠지요. 한 세대(본인)가 한 달 벌어 세 세대(부모님-본인-자녀)가 함께 쓰는 구조가 되니, 본인의 노후에 쓸 돈을 모으지 못한 채 인생의 흑자 시기가 끝나 버립니다. 적자시기를 맞이할 때 즈음에 자식들은 사회 초년생이어서 본인 앞가림 하기도 급급하거나, 초경쟁사회에서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는지라 도움을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충분치는 않지만 조금이나마 모아둔 연금과 저축으로 생활하시면서 소일거리로 용돈벌이를 하시는 것이 현재 중년 세대 부모님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제 부모님 역시 외환위기의 파급효과로 생의 흑자시기가 짧아졌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상보다 10년 정도 일찍 퇴직하시게 되면서 한 동안 가정경제가 위기 상황이었죠. 한창 소득이 올라가고 있을 때 잃어버리는 10년은 매우 큽니다. 30년 동안 일을 한다고 가정하면 경력과 연차가 쌓인 마지막 10년의 기대소득이 가장 크니, 10년 일찍 퇴직한다는 것은 생애 기대소득은 30% 이상, 어쩌면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타격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저희 형제들은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부모님께서 얼마나 막막하셨을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저희 부모님께서는 자녀들 교육을 끝까지 책임져 주셨습니다. 대학 다니는 자녀들의 등록금은 물론 취직 준비 학원비와 용돈, 늦둥이 자녀의 유학까지 자식들 일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필요한 비용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저희 뒷바라지 하시느라 벌어놓은 돈도 많이 까먹으셨을 겁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저희에게 아쉬운 말씀 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생을 꾸려가시는 부모님은 늘 저희 형제의 비빌 언덕이셨습니다.




저희 부모님과 형제들은 따로 또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혼인 형제는 부모님과 함께 살며 도움을 받기도 하고 드리기도 하고요. 저 역시 외형적으로는 독립된 가정을 꾸렸지만, 들여다보면 여전히 부모님의 시간과 보살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평일에 아이 돌봄과 집안 살림을 부모님께서 전적으로 맡아서 돌봐주십니다. 주말에도 부모님이 해 두신 반찬으로 식사를 하고, 부모님이 나눠주시는 김치로 1년을 납니다.


제가 돈을 많이 벌어서 부모님께 턱턱 생활비를 드리거나 일이 있을 때마다 목돈을 내어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그저그런 월급쟁이가 그럴 수 있나요. 부모님께서 아이를 봐주셔서 아이 돌봄비로 용돈을 조금 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 물론 부모님께서는 아이를 봐주시는 고생이 훨씬 커서 그 돈 안 받고 그만 오고 싶다고 하실 테지만요. 저는 부모님께 아이를 맡겨서 안심, 부모님 생활에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서 안심입니다.


부모님을 챙기는 비용이 늘 제 가계부 한 줄을 차지하고 있지만, 사실은 제가 받고 있는 도움은 그 한 줄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큽니다. 부모님은 지금까지도,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저에게는 커다란 비빌 언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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