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좋아하세요?

보통 사람의 평범한 가계부 8. 개인 비용

by 단아정담

가계부의 대다수 지출항목에는 가족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항목이라 가족 모두의 필요와 취향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식비에는 육류와 해산물과 야채, 과일 값이 적당히 포함되어 있고, 외식비에도 일식, 한식, 중식, 양식 비용이 섞여 있습니다. 개인의 취향이 명확히 드러나는 항목은 개인 비용 항목입니다. 부부가 각자 돈 쓰는 장소와 금액을 보면 서로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저의 배우자는 옷과 음식, 차를 사랑합니다. 차는 소소하게 지를 수 없고 본인이 원하는 맛있는 음식은 많이 비싸기 때문에 일상의 소비가 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밤마다, 주말마다 핸드폰으로 옷을 봅니다. 본인 맘에 꼭 드는 옷들은 가격이 높지만, 그래도 가격의 선택 폭이 넓은 편이어서 그런지 주기적으로 옷과 신발을 삽니다. 비싼 물건들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쿠폰 혜택이 있을 때 사는 것 같고, 모르긴 몰라도 당근에서도 온도가 꽤 높은 구매자(Buyer)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배우자의 소비 내역을 보면, 이 사람은 옷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단번에 알 수 있어요.


저는 점심 비용을 제외한 상당 금액을 음료에 지출합니다. 음료에는 아침의 커피와 저녁의 주류가 포함됩니다. 회사에 가는 길, 카페에 들러 오늘의 커피를 한 잔 픽업합니다. 텀블러에 담긴 카페인을 한 모금 넘기면서 회사에서 하루를 보낼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회사에서 집으로 가는 길, 편의점이나 마트에 들러 맥주나 하이볼 한 캔을 삽니다. 하루의 첫번째 힘을 회사에서 다 썼으니, 종종 알코올을 섭취하며 두번째 힘을 내 봅니다. 알코올에 곁들여 저녁을 먹은 후에는 아이가 공부하는 동안 모르는 문제도 봐주고, 아이가 학원 가는 날에는 해 둔 숙제를 점검하고 픽업하러 갑니다. 주말에 가족과 같이 카페에 가는 비용, 배우자와 같이 마시는 주류 바용은 생활비로 분류하지만, 주중에 마시는 음료는 오직 저만의 기호식품이기에, 제 용돈으로 분류합니다. 제 용돈 내역을 보면 카페와 편의점에서 지출된 작은 금액이 많습니다.


시간이 날 때는 책을 읽거나 글을 씁니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편이라, 지출 내역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가계부에 나타나는 제가 좋아하는 활동은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최근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서 제 용돈에 수업료와 미술용품 비용이 포함되었거든요. 여행지나 일상에서의 시간을 저만의 그림으로 나타내보고 싶다는 마음이 한 구석에 늘 있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돌발 상황이 많이 정기적으로 수업을 듣는 활동은 생각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시간 날 때 도서관에 가거나 카페에 가서 잠시 책을 읽는 것이 고작이었죠. 아이가 열 살 넘어가니, 정기적으로 개인 시간을 사용할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아직도 배우자와 시간 조율도 해야 하고 양가 가족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주말 한 나절 정도는 제가 좋아하는 일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봅니다.




배우자의 지출 목록에는 커피 값이 전혀 없고, 제 지출 목록에 옷 값은 많아야 계절에 한 두번 등장합니다. 서로 좋아하는 것이 완전 달라서 도대체 그 항목에 돈을 왜 그렇게 쓰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용이 과하지 않는 한 서로의 지출에 크게 관여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표현을 빌자면 '개인 취향 존중'의 마음이랄까요.


저는 일반 직장인이 양문형 옷장 세 칸과 행거 세 줄, 5단과 3단 서랍장 두 개를 가득 채울 만큼의 옷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지만, 배우자에게 옷장이 터져 나갈 것 같으니 안 입는 옷은 버리고 사라고 할 지언정 옷을 그만 사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배우자는 회사에 가면 커피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아침마다 커피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지 말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빈 속에 커피를 마시면 위에 안 좋으니 뭐라도 먹고 커피 마시라는 잔소리는 하지만 말이죠.


옷과 신발이 많을 필요 없다는 미니멀리즘이 대세이고, 매일 커피 한 잔 마실 돈으로 스타벅스 주식을 사서 미래를 준비하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배우자는 오늘도 옷장 정리를 끝내고 온라인으로 옷을 쇼핑하는 중이고, 저는 내일도 출근길에 카페에 들를 겁니다. 그것이 그와 내가 좋아하는 것이니까요. 이런 소소한 행동들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면, 그것 또한 가치있는 소비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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