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를 쓰면 달라집니다

보통 사람의 평범한 가계부 10. 가계부의 효용

by 단아정담

매월 마지막 날이 지난 주말에는 가계부를 마감합니다. 이번 달에는 장을 많이 봤네, 방학이라 여기저기 많이 놀러다녔구나 등 한 달 동안 있었던 이벤트들이 떠오릅니다. 다음달 가계부를 준비하면서 가족들의 생일이나 1년에 한두 번 내는 세금도 챙겨봅니다.




결혼하고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에 깜짝 놀라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는 특별히 돈을 아껴쓴다거나 얼마를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크게 없었습니다. 시절이 그랬던 건지, 저희가 철이 없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당시 가계부를 쓰면서 배우자와 제 소비 스타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경험에, 배우자는 물건에 소비한다는 것을요.


아이가 태어날 즈음에는 집을 사면서 대출을 받았습니다. 생애 첫 대출이라, 갚아나갈 일도 막막했고 이자도 아까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계부를 들여다보며 한 달에 원금과 이자를 얼마까지 갚아나갈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가계부는 배우자와 저의 수입 내에서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대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었습니다.


그렇게 샀던 생애 첫 집을 부동산 대세 상승기 초입인 2017년쯤 팔아버리고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정말 한 순간에 벼락거지가 되더라고요. 그래도 가계부를 계속 썼습니다. 아무리 가계부를 써 봐야, 매월 빤한 수입에서 생활비를 빼고 남는 돈은 오르는 집값과 비교해 너무 미미했습니다. 이렇게 돈을 모아나간들, 자고 나면 억 단위로 오르는 집값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계부를 쓰면서 수입과 지출을 관리해서 다시 집을 살 수 있는 자금을 한 푼이라도 더 마련하는 것이 부동산 광풍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습니다.





10년 넘게 가계부를 썼지만, 큰 부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가계부를 쓴다고 수입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지출이 그리 드라마틱하게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배우자와 저는 많이 절약하면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출규모를 과하게 줄이지도 않거든요.


그렇지만 가계부를 쓰는 행동 자체가 저에게는 안정감을 주고, 조금씩이지만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우리 가족 잘 지내고 있구나, 이대로 별 일 없이 지내면 좋겠지만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대처할 수 있겠구나 하는 안정감이요. 소박하고 귀여운 월급을 쪼개어 대출도 갚아나가고 저축도 하니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는 희망도 말이죠. 현재를 충실히 살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마음이 저를 지탱해 줍니다.


가계부를 써 보세요. 일주일에 한 번, 카드값을 정리해 보기만 해도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다음 주에 어떤 일들이 있을지 살펴보게 됩니다. 그렇게 한 주, 한 달, 한 해를 준비하다 보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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