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0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체계적으로 한국의 시스템에 맞게 공부를 했고 그러한 학습방법에 기초하여 선택할 수 있는 대학이 결정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 한국에 와서 놀랐고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대학마다 입학기준이 다르고 수시 같은 경우는 시험과목도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가려고 하는 대학을 미리 정해놓고 그 대학의 입학기준에 맞춰 공부를 하더라고요.
북한과는 전혀 다른 교육시스템에 온 아들은 어떻게 진로를 선택해야 할까요.
20살이 되었으니 고등학교에 가기는 쉽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대학에 간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지만 뭐든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거죠.
엄마 곁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저한테 물었어요.
" 나는 이제 뭘 해야 할까?"
이 질문을 하는 아들의 표정과 말투와 억양을 통하여 저는 이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할지가 느껴졌습니다. 한국에 오면 조사기관의 조사를 마친 후 교육기관에서 3개월 정도 한국에 대한 대략적인 교육을 받게 됩니다.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일반은 물론 연령대에 맞춰 학생들에게는 대학입시와 진로에 대하여, 남성에게는 남성이 할 수 있는 일들, 여성들에게는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직업의 폭 등 나름대로의 다양한 교육들이 진행되는 거죠. 남성들에게는 기중기, 굴착기, 지게차 등 중량이 차들에 대한 이해와 면허시험 준비까지 시켜주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면허시험도 교육기간에 치르기는 하지만 이론 시험만 치르고 실기는 교육받고 나와서 본인이 직접 학원에 등록하고 치르게 됩니다. 저의 아들도 사회생활 시작한 지 5일 만에 운전면허증을 가져왔더라고요.~~
여성인 저도 한국에서 누구나 차를 가질 수 있고 누구나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부러웠는데.. 북한에서 온 젊은 청년의 입장에서 얼마나 운전이 부럽고 신기했을까요? 본인이 한국에 온 이유 중의 하나가 자동차 가지고 싶어서~~라고 지난번에 말씀드렸잖아요.
차 사줬을까요? 내심 엄마가 그동안 자기한테 미안한 점도 많으니, 게다가 아들이 와서 너무 행복해하고 있으니 중고자동차라도 한대 사주지 않을까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착교육에서는 여성들을 위해서는 간호조무사 교육, 요리, 봉제 등 다양하게 시키지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화장을 배우는 것이 그렇게 재밌고 신기하더라고요. 한국에 오니 워낙 한국 여성들이 예쁘게 화장하고 세련되어 보였거든요. 저는 매우 촌스러웠던 걸로 기억됩니다만. ㅎㅎㅎ
정착교육을 받으면서 가장 어려워하는 경우가 20대 들인 것 같아요. 고등학교 다시 다니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대학에 바로 가기는 수준과 능력이 부족하고. 얼마나 생각이 많았을까 하는 느낌이 아들의 표정에서도 확 드러났거든요.
나는 무얼 할까 하는 질문에 어떤 답을 할까 잠깐 망설이기도 했지만 저는 "그냥 놀아, 아무것도 하지 말고, 싫증 날 때까지"라고 대답했네요.
"?? , 그게 무슨?, 다른 사람들은 다 열심히 사는데..."
"응. 그건 다른 사람들 일이고, 너는 놀아도 돼. 너는 그동안 20대가 겪지 않아도 될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어, 그러니 지금 놀 자격이 충분해. 너의 20대는 좀 놀아도 되는 나이야."
놀아도 되는 나이가 있을까요?
상황에 따라 삶의 여유를 가지고 좀 느긋하게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탱자탱자, 베짱이처럼 놀기만 해도 되는 나이가 있나요?
아들의 20대, 정말 놀아도 되는 걸까요?
저는 아들의 진로 따위에 아무러한 관심도 책임도 없는 엄마 일가요?
"조금 더 나이 들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정말 쉴 수 있는 날이 쉽지 않은 것이 삶이란다.
나는 지금 네가 아무 생각 없이 쉬면서, 놀면서, 지금까지의 힘들었던 기억들을 다 떨쳐버리면서 깊이 생각하지 말고 정말 편안하게 즉흥적인 삶을 살아봤으면 좋겠어.
그러다 보면 뭘 할지 생각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들의 뜨악한 표정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한의사 엄마, 북한에서 너무 많이 듣고 있었을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하면 아무래도 엄마가 이제부터 이거 하고, 다음에는 이거 하고. 삶은 이렇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하는 거란다. 놀 시간이 어디있어. 한국청년들은 이렇게, 저렇게 하는데~~하는 이야기를 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 밖이라는 표정이었거든요. ㅎ
당시 아들에게 했던 말은 저로서는 진심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공부라는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을 때, 그리고 하고 싶은 사람이, 하고 싶은 전공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왔던 그 해 수능시험을 치르던 학생 두 명이 첫 과목을 치르고 고층건물에서 떨어지면서 삶을 놓아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놀랐죠.
아니 수능이 뭐길래. 시험이 뭐길래, 공부 좀 못할 수도 있는 거 아닐까요?
자살하는 어린 친구들을 보면서 공부에 대한 집념, 성적에 대한 고민이 학생 자신의 것 일가? 아님 부모의 욕심 일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할 말이 있네요. ㅎ
공부를 취미로 한다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공부를 좋아서 사람이 분명히 있거든요. 좋아하지도 않고 공부머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억지로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물론 이런 것도 무조건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에 미처 적응하지도 못했고, 아직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공부에 대한,
진로에 대한,
미래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는 자칫 꿈에 부풀고 설렘이 가득해하는 아들의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사회에 대한 두려움부터 가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습니다.
2.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놀고 싶은 대로 놀면 어떻겠냐고 했던 것은
그동안 고달 팠던 아들의 삶을 보상해주고 싶은 엄마의 작은 반성, 배려이기도 했고
스스로의 선택과정을 통하여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가지게 하려는 바람 때문이기도 했고.
그리고 미래의 삶이 정말 빡빡할 거라는 마음의 준비를 스스로 가지게 하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자기의 진로에 대하여 선택하는 과정을 통하여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될 것이고
생각하는 과정에 한국사회의 이모저모에 대하여 깊은 관찰을 가지고 들여다보게 될 것이고 그런 과정을 거쳐 선택한 삶에 대한 책임도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거라는 판단으로 인함이었습니다.
놀아도 된다고 했으니 생각 없이 탱자탱자 놀고만 있다면 저도 아들의 성향을 파악하게 될 것이고, 그 또한 아들의 선택이니 공부하라고 제가 잔소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거든요. 지난 친 공부 잔소리는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타입이거든요. 저는.
그렇게 아들은 놀기(??) 시작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가장 먼저 했던 건 우선 #운전면허" 네요. 5일 만에 운전면허 땄답니다. 물론 차는 사주지 않았습니다. 면허증을 보여줄 때 자동차는 자신이 보험금을 낼 수 있는 수준이 될 때 가질 수 있는 거라고 못 밖았더니 사달라는 말은 하지 않더군요. 물론 엄마 차를 운전해보고 싶다는 표현도 한번 없었고요. ㅎ
얼마나 서운할까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시작부터 쉽게 가면 녹녹하지 않은 한국사회의 정착에 대한 젊은이의 마음가짐이 가벼워질까 걱정되어 마음 굳게 다잡고 잘랐습니다.
이후 동네 복지관에 다니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트로트도 부르고 춤도 추고 하면서 놀더니 어느 날에는 또 #힙합 하는 곳에 가서 힙합을 배우기도 하더군요. 점차#컴퓨터 자격증을 따고 대학생도 아니면서 대학생들과 어울려 #독서모임 도 하는 등 나름대로 자기 삶을 만들어 가고 있더군요.
정말 할 일이 없는 어느 날에는 제가 집에 들어오니 방바닥에 비누를 풀어놓고 무릎 꿇고 엎드려 바닥을 닦고 있었습니다. 이걸 왜 했냐고 했더니 심심해서요... 하더군요. ㅎㅎ
그렇게 7~8 개월이 지났을 무렵 어느 날 정말 진지하게 말하네요.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공부하고 싶어요. 학원 보내주세요."
" 오, 그래?, 무슨 공부를 하고 싶은데."
" 엄마는 내가 의사나 한의사 되었으면 좋은 거겠죠?"
"응, 물론이지. 그런데 그건 엄마 생각인 거고, 주도적인 삶을 살아야 할 당사자인 너에게 결정권이 있고 결정권자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걸 해.
의사, 한의사가 아니어도 엄마는 네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라면 찬성이야"
" 음... 난 법학을 하고 싶어요.."
" 법학? 왜? "라고 되묻지는 않았네요. 제가. ㅎㅎ
이유요? 당근 있었죠. ㅎ
우선은 심사숙고한 아들의 선택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었고요.
다음은 제가 사실은 법대 가고 싶었는데. 저의 엄마 때문에 제 꿈을 포기하고 의대에 갔었거든요..ㅎ
법대 가고 싶다는 아들의 대답에 제가 거부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거죠.
대리만족이 확실했습니다.
" 대신 엄마로서의 관점? 당부? 한마디 해도 될까? "
" 네."
" 의대나 한의대는 대학 가기까지는 매우 힘들지만 졸업하고 나면 진로가 비교적 편하고, 법대는 대학 입학이 의대보다는 쉬울 수 있지만 졸업 후 자리잡기까지는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고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지치고, 힘들고, 고달플 수 있어. 그것을 버티고 견디어낼 마음의 준비를 든든히 해야 돼."
" 알았어요"
그렇게 아들은 대학 가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답니다.
이후의 에피소드요?..
물론 있죠.
다음 기회에 이어서 할게요. ㅎㅎ
글이 길죠?
아들에 대한 이야기 가능하면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좁게 보면 내 아들의 이야기이지만 넓게 보면 한국사회에서 함께 살고 있는 새터민들의 이야기, 남북한 청년들의 이야기, 문화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용기를 냈습니다. 이해해 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