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20세에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습니다. 6살에 엄마와 헤어졌으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북한 땅에서 보낸 거죠. 제가 한국에서 살면서 많이 받게 되는 질문 중의 하나가 가족 중 한 명이 한국에 있으면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이 고통을 받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 맞습니다. 고통을 받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먼저 와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서 고위직이었거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런 사람이 한국에 왔다면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은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할 수 있지요.
저 같은 경우 북한에서 10여 년간 의사로 일했습니다. 그러한 삶은 지극히 평범했고 지금 한국에 와서도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와있는 3만 명 이상의 새터민들 중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죠.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북한 가족들을 모두 탄압하기에는 북한에 여력이 부족할 뿐 아니라 오히려 주민들에게 두려움과 불안정을 조성하면서 북한을 탈출하려는 마음을 줄 수 있죠.
단적으로 우리 아들의 예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살면서 조금씩 돈을 모아 북한에 보냈습니다.
아들의 생일 때, 중학교 입학할 때, 고등학교 입학할 때, 때때로 돈이 필요하다고 할 때.. 꾸준히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지원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에 와서 다른 사람들이 입던 옷, 모자, 생활필수품 등 닥치는 대로 모아서 몇 박스씩 보낼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내면 주변에서 서로 나누어 입을 수 있을 테니까요. 아들의 생일 때는 시계도 보냈고, 자전거도 보냈습니다.
처음에 보낼 때는 옷가지에 있는 한국 라벨은 가위로 잘라버리고 보냈죠. 언제부터인가 자르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한국 라벨이 붙은 옷이 시장에서 더 잘 팔린다고요. 그만큼 북한 사람들에게 한국은 점점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거죠.
아들이 한국에 왔을 때 제가 물었죠. 엄마가 남한에 있다는 것이 생활에 불편함이 없었냐고요.
불편함도 있었지만 크게 문제 되는 점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의 안기부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북한의 보위부에서 보위원이 가끔 찾아왔다고 합니다.
아들에게. 와서 하는 말.
"엄마가 한국에서 잘 나가는 의사인데. 연락은 오느냐, 돈은 좀 보내주느냐,
돈을 보내주면 잘 받아서 쓰고 대신 너는 남한에 가지 말라"
라고 하면서 때때로 찾아와 귀찮게 했나 봅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관계는?
우선 아들의 전언에 의하면 엄마가 남한에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합니다.
북한식 교육에서 북한 사람이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갔다는 것은 당과 조국에 대한 엄연한 배신입니다.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며 이해받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특히 새롭게 세계관이 형성되어가는 젊은 청소년들의 마음속에 남조선으로(북한에서 남한을 부르는 단어입니다) 간 엄마를 두고 있는 우리 아들과 친구 한다는 것은 반역자, 변절자를 옹호하고 감싸는 행동이 될 수 있는 상황인 거죠.- 적어도 제가 인식하고 있는 경험이나 추측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들을 통하여 들은 분위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우선 친구들은 아들을 많이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결국 엄마가 남한에 가있다는 것이 부러웠다는 거죠. 이유는요? 남한에서 엄마가 주기적으로 생활비를 보내거든요.
다른 친구들보다 비교적 여유 있게 살고 있었고 그것이 바로 남한에 있는 엄마의 덕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죠.
" 너는 참 좋겠다. 엄마가 남조선에 가 있어서"
여러분. 어때요?
여러분이 상상하지 못했던 북한의 분위기죠?
물론 저도 상상하지 못했었고요. 아들의 말을 들으면서 깜짝 놀랐답니다.
저는 아들이 12살인가 되던 때부터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늘 엄마 곁으로 오기를 원했지만 아들은 원치 않았었죠. 마음속에 엄마에 대한 원망이 있었던 것 같고 또 다른 곳도 아닌 바로 남조선이라는 것이 세계관이 형성되어 가는 청소년이 쉽게 마음을 정할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던 아들이 어느 날 문득 전화가 와서
"엄마, 나 엄마 있는 곳 가고 싶은데. 지금 가도 되나? 갈 수 있을까?"
안될 이유가 없겠죠. 저는 당연히 수락했고 이미 준비를 미리미리 갖추어 놓고 있었던 터라.
바로 실행에 옮기게 되었고 상봉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한, 두줄의 글로 옮겨 적지만 그 과정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긴장과 설렘과 함께 위험과 두려움과 고통과 절망과 많은 복잡한 상황들이 엉켜 있었답니다.(공개할 수 없음을 이해 부탁드려요)
아들이 한국에 왔을 때 물었습니다.
"오지 않을 거라고 그러더니 어떻게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어?"
아들 왈~
"공식적 이유요? 비공식적 이유요?"
일반적인 아이는 아닌 것 같았어요. 이런 반문을 하는 걸 보면요.
엄마 왈~
"둘 다.~"
아들 왈~
" 공식적인 이유로는 북한에서 지금처럼 산다면 미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비공식적으로는 두 가지인데.
한국에 오면 자동차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하나는 이지아나 송혜교 배우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죠." ㅎㅎㅎ
나의 승용차- 남자들의 로망 일가요?
실지로 저의 아들이 한국에 와서 첫 5일 사이에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운전면허 취득"이 랍니다.
북한의 20대 청년들의 생각이 이러한가 봅니다.
북한에 남한의 드라마 CD가 많이 들어간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아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참 많이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드라마 "아테네"와 "가을동화"를 너무 재밌게 봤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가을동화"보다 "겨울연가"가 더 재밌는데 하니까.. 절대로 아니라고. 그래도 가을 동화라고 하더라고요. ㅎㅎ
공식적으로는 남, 북한이 막혀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한국의 문화를 비롯하여 여러 상황들이 북한에 알게 모르게 전해지고 들어가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이해하고 동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언론을 통하여 볼 수 있는 모습은 당국자를 비롯한 일부의 모습이 짜증 나고 경악스럽지만
실지 일반국민들의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 동경의 이미지를 가진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인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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