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나눈 엄마의 남자 친구 이야기

by 자유로운 콩새



6살에 헤어진 아들과 14년 만인 20살에 장성한 청년의 모습으로 만났습니다. 엄마인 저의 입장에서는 엄마손이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 미안함이 컸고, 아들의 입장에서는 남들처럼 어리광 부리면서 의지하지 못했던 시절에 대한 원망이 클 것이지요.

저는 늘 아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가지려고 노력했고 아들도 그러는 것 같았어요.

아들의 노력 때문에 제가 또 더 미안해지기도 하더라고요.

엄마 없이 어려운 환경을 견디어 온 아들은 나이보다 훨씬 더 성숙되어 있었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당연히 엄마가 아들의 보호자였지만 한해, 두해 지나면서 아들이 엄마를 보호해 주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예를 들면 아들과 함께 사람이 많은 전철이나 백화점에 갈 때 이전에는 제가 이쪽으로, 저쪽으로 하면서 아들을 리드하고 이끌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인가 사람이 많은 곳에서 아들이 제 뒤에 서서 사람들을 마크하고 있더라고요. 그것이 느껴질 때 언제 이렇게 아들이 컸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했고, 든든하기도 했답니다.





한국에 온지 몇 개월 정도 되었던 어느 날 맥주 한잔 마시고 들어온 아들, 뜬금없이 저한테 한마디 하네요.

"엄마 때문에 가끔 속상할 때가 있어요~" 하고요. 깜짝 놀랐죠. 상처 주지 않으려고 그렇게 조심하고 있는데

나 때문에 아들이 속상하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어디서, 어떻게 잘못되어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어. 어.. 뭐가? 왜?" 굉장히 놀랐고 당황스러웠습니다.

갑자기 제 손을 꼭 잡더니 말합니다. "응. 엄마를 보면 나는 속상해요. 엄마가 한국에 와서 어렵게 성공했고 열심히 멋지게 살아오셨다는 건 알겠는데요. 엄마 또래의 아줌마들은 보면 다 손가락에 반지 하나씩은 끼고 있던데, 엄마는 왜 반지 하나 끼워줄 남자를 만나지 못했나요? 나는 안쓰럽고 속상해요. 엄마"


그러면서요.

그러면서요.

자기가 사 가지고 온 반지 하나를 제 손가락에 끼워주었습니다.
"나는 엄마가 또 다른 행복을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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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저는 서울대 의대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서울대 의대는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아들 앞에서 뿌듯했고, 공부에 대한 잔소리는 하지 않았지만 아들이 내심 따라서 공부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일종의 솔선 수범의 수법인거죠.


그런데 아들의 생각은 그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엄마, 서울대 의대도 좋지만 나는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멋진 남자도 만나고, 연애도 하고 그러세요"

"하하, 난 너만 있으면 돼. 아들이 있는데 뭘 하러 남자를 만나"

" 엄마, 아들과 남자 친구는 달라요. 아들한테서 느끼지 못하는 행복한 감정을 남자친구를 통해 엄마가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분에 대해 뭐라고 말하지는 않겟지만 아이 아빠와 저는 여러모로 차이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들도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엄마, 남자 만나는 것에 대해 저한테 미안한 생각 하지 않으셔도 돼요. 내 아버지이지만 우리 아빠는 엄마한테 한참 부족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 저 생각하지 말고 엄마 행복을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공부도 좋지만

그동안 행복하지 못했던 삶, 마음껏 누리셨으면 좋겠어요. 난 엄마를 보면 안쓰러워요."


제가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하면서 살아왔는지 처음부터 제 글을 읽으신 분들은 다 아실 테죠. 그런 고생 속에서도 제가 펑펑 소리 내어 울어본 적은 없습니다. 늘 마음을 다잡고 의연해지려고 노력하며 살아왔거든요.


그런데요. 이 순간, 무너졌습니다.

아들 앞에서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드러냈습니다.

밤새 울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삶을 아들이 통째로 위로해주었습니다.

이제 아들 앞에서 솔직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응, 그런데 있잖아, 난 남자가 좀 무섭고 싫어"
아들이 제 주변에 있는 남자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엄마의 남사친들을 몇 번 만났거든요.
엄마의 남사친이라 해야 같은 한의사들, 세미나 함께 하는 교수님들 등등이죠.


그 사람들에 대해 아들이 묻습니다. "지난번에 만났던 그 남자 한의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응. 편하고 좋으신 분들이셔. 내가 처음 한의원 개업할 때 아무 멋도 모르던 상태에서 도와주셨고 이끌어 주셔서 지금까지 편하고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어. 고마운 분들이시지"

"엄마, 내가 보건대는요. 그 남자들이 다 특별히 더 좋고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그 런 남자들에 대해 괜찮다고 생각되시면 다른 남자들도 만나셔도 돼요. 이세상에는 무섭고 이상한 남자들보다 평범한 남자들이 훨씬 더 많아요. 너무 겁내지 말고 만나셔도 돼요. 마음 한번 열어보세요."

하. 하. 하.
아빠가 딸을 앞에 앉혀 놓고 상담하는 느낌이네요.
내 아들이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되었나.. 한국 와서 몇 개 월 지나서 였을 때이니 20살 되는 가을쯤이었습니다.

" 남자는 자꾸 만나봐야 돼요.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보세요"
" 아니야, 안돼야.. 내가 이 남자 만나다 헤어지고, 저 남자 만나다 헤어지고 하면 넌 좋겠어? 이상한 소문이 날 텐데"
"소문이 무슨 중요해요. 그리고 내 판단으로 엄마는 즉흥적으로 만났다가 함부로 헤어질 분 아니에요.. 그러니 헤어질 때는 충분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할 것 같아요. 난 엄마를 믿어요."

난 엄마를 믿어요.
이 말이 이 세상을 통째로 제 앞에 가져다 놓아도 마음대로 움질 일 수 있는 자신감 같은 것을 안겨주었어요.





그렇게 저는 가끔 아들과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아들의 여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합니다.

아들은 남자의 성향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저는 여자 친구를 잘 대해줘라, 싸우면 먼저 잘못했다고 하고 먼저 전화하고 먼저 풀어라, 큰 선물에 목매지 말고 작은 것으로 수시로 감동을 느끼게 해 줘라 등등 나름 편하게 속을 터놓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다시 엄마의 남자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조심스럽습니다. 오해는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성분들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에 대해 미리 양해 말씀드립니다.


제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 어떤 남자들은 왜 여자한테 비싼 밥을 사려고 하는걸가? 밥 먹을 상황이면 그냥 그 순간에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먹으면 될 텐데.. 굳이 비싼 곳에 가서 먹어야 여자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걸가? 여자를 속물처럼 생각하는 것 같고, 때로는 그게 불편해서 남자랑 밥 먹는 거 싫고 망설이게 돼"


사실 당시 아들의 대답이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좋은 데 가서 밥 먹자면 그냥 밥 먹으면 되죠."

" 굳이 나랑 좋은 데 가서 밥 먹을 사이는 아닌데.. 그러면 여자들은 불편하거든. 꼭 어떤 보상을 해주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쉽게 응할 수 없어, 난."


"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요. 엄마, 그냥 밥 한번 먹는다는 것으로 생각하세요. 안 좋은 마음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 땐 상황에 맞게 대처하시면 되고요. 남자 입장에서는 그냥 밥 한번 먹고 여러 가지 사는 이야기 엄마랑 해보고 싶을 수도 있어요. 단순한 상황을 너무 깊에 생각하면 남자도 그런 여자 상대하기 피곤해요."

" 그니까. 왜 그런 단순한 상황이 필요하냐고 굳이, 그것이 이해 안 된다는 거지 난."


"아이고 엄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근사한 곳에 가서 맛난 거 사준다고 하면 그냥 그 순간 맛있게 드시고 오세요.

남자는 그냥 그것뿐일수 있어요. 여자가 오히려 그 다음을 넘겨짚어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구요.


그리고요. 엄마.

내가 생각하건데 엄마는 참 매력적인 여성이에요.

내가 남자라면 엄마랑 밥 한번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생각 할 것 같아요.

그러니 피곤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식사하면서 살아가는 얘기 서로 나누고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남자는 자꾸 만나서 이러저러한 얘기 나눠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고 저를 교육(ㅎㅎㅎ) 합니다.

지레짐작하고 판단하면 서로가 피곤하다고요.


** 어쩌면 우리 아들도 어쩔 수 없이 우리 주변의 그 흔한 남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만나다 보면 남자 보는 눈이 생기고 좋은 남자 가려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요. 하. 하. 하.

엄청난 교육을 받고 이후 제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음~~

이제 한국사회에 어느 정도 적응도 되었으니 편안하게 생각하면서 살아보자 하고요.

그러고 나니 삶이 훨씬 편안하네요.

까칠하지 않아도 되고, 예민하지 않아도 되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흘러가는 대로 사는 지금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아... 봄이에요. 봄이 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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