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법대 첫 학기 성적 - 빵(0)점

by 자유로운 콩새

제 브런치 글을 처음 읽으시는 분들을 위한 간단한 정보입니다.

저는 북한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이사 와서 살고 있는 새터민입니다.


북한을 떠날 때 6살 된 아들을 두고 떠났고

그 아들이 20살 될 때 한국으로 오게 되어 14년 만에 아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20살이면 한국은 한참 대학공부를 하고 있을 때인데 그 나이에 한국에 왔으니 낯선 한국땅에서

공부도 해야 하고, 모르는 건 많고, 주변 사람들은 너도나도 열심히,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고. 혼자 뒤떨어져 있다고 느낄 때 얼마나 조급하고 혼란스러웠을까요?



이런 과정들은 아래의 글을 참고하시면 이해에 도움이 되실 듯합니다.


https://brunch.co.kr/@hee91801/10



https://brunch.co.kr/@hee91801/14



이러한 과정을 거쳐 법대에 합격했고 드디어 원하는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과정도 나오지 않았고, 한국의 교육시스템이나 교육방식, 교육내용을 전혀 배워보지 못했던 아들이 한국에서 나서 초,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이어지는 교육방식에 적응하는 것은 분명히 쉽지 않아 보입니다.






1. 헐~~ 수강 신청을 부모가 해준대요.


매일 학교에 갔다 오는 아들에게 학교 수업 따라가기 어떠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사실은 물어보나 마나 한 질문임을 알기에 공부에 대한 것은 감히 물어보지 못했어요. ㅎㅎ

다만 학교생활은 어떠냐고, 북한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를 텐데 괜찮을 것 같아? 하는

그냥 상식선에서의 질문만 했던 거죠.~


"뭐... 잘해봐야죠" 하는 다소 건조한 답변만 봐도 녹녹하지 않았음이 느껴집니다.

그러면서도 툭 던지는 한마디...

아들 : "근데.. 좀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어요"

엄마 : " 그래? 뭔데?"

아들 : "수강신청을 부모가 해주는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왜 그러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러다가 수업시간 과제물까지 부모가 해주는지도 모르겠네요.ㅠㅠ"

엄마 : "어.... 그건 좀. 그러네....................."

저도 사실 좀 놀랬죠. 제가 느끼기에 한국의 부모님들이 자녀에 대한 관심(저는 간섭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각자가 다른 관점일 수 있겠죠)이 지극해서 자녀교육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그동안 좀 했습니다만, 아들한테서 자녀의 수강신청을 부모가 해주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사실 좀 충격에 유구무언이더군요.


암튼,

이렇게 학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집 자녀들의 수강신청을 부모가 해주던 말던 저는 사실 전혀 관심 없었고요. 한국사회에 적응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들이, 한국의 교육과정에 대한 아무러한 정보도 없는 이 아이가 상상만 해도 어려울 것 같은 법대 수업과정을 어떻게 따라가는지 오직 그것이 매우 궁금했답니다.







2. 아들의 첫 학기는 0(빵)점.


그렇게 학기말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고민했어요. 성적 어떻게 나왔는지 물어볼까 말까?

뻔할 텐데 물어보면 괜히 상처 받지 않을까? 모른 체 지날까?

그런데요. 모든 부모들이 궁금하지 않을까요? 나만 그런 가요?

정말 너무 궁금했어요. 설사 낮은 성적이라고 하더라도 너무너무 알고 싶더라고요. ㅎ


저는 아들과는 평상시에 친구처럼 대화를 잘하는 편이라 그냥 편하게 물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물어보지 않는 것도 지나친 무관심일 것 같고, 궁금한 것 또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들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 선에서의 적당한 단어와 문구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요. 휴~~


엄마 : "아들님. 한 학기 수고했어. 대학생활 재밌게 보냈어? 좀 낯설었을 텐데... 힘들었지"

아들 : "응. 처음이니까 아무래도 쉽지는 않았어요."

엄마 : "당연하지. 쉽지 않지, 이런 방식의 공부는 한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나도 한의대 편입해서 공부하던 첫 학기에 4학점짜리 과목을 낙제 맞고 재시(재시험) 쳤어. (저를 디스해야 혹시 아들이 성적이 낮아도 덜 민망하지 않을까 싶어서

제 나름으로는 저의 치부를 드러낸 거죠. ㅎㅎ)

아들 : "그러게 나도 0점(빵점) 맞았어. 이번 학기"



헐~~ 조금은 놀랐죠.

어려울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빵점이라니~빵점이라니~~ 아이고 빵점이라니ㅎㅎ


잠시 침묵과 함께

엄마 : " 빵점? 오 예. 하하하~~ 수고했어."

아들 : " 그러게. 그렇게 됐네요." 멋쩍은 웃음~

왜 "0점"을 받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사연인즉~~

한 개의 과목을 빵점 맞았다고 합니다. 교수님이 리포트를 내셨는데 제출 날자를 지키지 못해 임의로 찾아가서 제출 했다는 것. 교수님이 안 계셔서 문틈으로 페이퍼를 밀어 넣고 왔다는 것. 그래서 0점이었나 봅니다.


엄마 : "엄마라도 0점 주었을 것 같아. 교수님께 문자나 메일 드려서 이렇게 저렇게 되었다고 상황을 설명하고 죄송함과 함께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그런 것도 없이 훅~~ 던지듯 놓고 왔으니 당연한 결과인 듯.. 배우는 학생으로서의 행동은 아닌 것 같아 엄마 생각에는.
혹시 억울해?"

아들 :...... 묵묵 부답(대답이 없는 거 봐서는 잘못은 인정하는 것 같았어요)


엄마 : "응, 그래도 수고했어. 그래도 칭찬하고 싶어. "

아들 : "빵점인데?" 의아한 표정입니다.

엄마 : "응. 빵점 맞은 것이 잘해서가 아니라 빵점 맞았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야.

사람의 심리상 이런 경우는 대부분 숨기고 싶어 하거든,

하지만, 넌 묻지 않았는데 먼저 얘기했잖아. 용기 있게. 그리고 솔직하게.

그건 빵점을 회복할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수고했어. 역시 멋져."






3. 아들의 학업 플랜



아들의 학과 등수는 마지막에서 3번째라고 합니다. 겨우 골찌를 면한거지만 꼴찌나 다름없죠.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다음 플랜을 얘기합니다.

다음 학기는 중간 정도까지 성적 올려볼게요.

그리고 2학년 1학기는 30등 안에 들 거예요.


그렇게 저한테 자신의 학업 플랜을 조곤 조곤 얘기해 줍니다.

물론 학업계획 외의 기타 동아리 활동을 비롯한 다른 계획도 이야기합니다만~

이 부분은 다른 이야기라 다음 기회에 또 하죠.


계획을 세운다고 다 이룰 수 있거나 꼭 이룬다는 건 쉽지않다는건 우리가 모두 알고 있죠.

하지만 저는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말하는 아들의 법대 4년의 학업 계획을 들으면서 이 아이가 이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후 더는 성적에 대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습니다.


집안에서 아들과 나누는 대화는 대략 이러합니다.

TV를 통하여 보이는 여러 형태의 상황들에 대한 서로의 생각은 어떤지,

우리 주변의 이러저러한 상황들에 대한 서로의 생각은 어떤지에 대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시간 되면 함께 영화 보고, 함께 뮤지컬 감상하고, 함께 드라이브 다니면서 보냈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났을 때 다시 성적표를 들고 옵니다. 목표대로 1학년 2학기에는 중간 등수에 들었고 그다음 학기인 2학년 1학기에는 30등 안에 들었고 결국 3학년을 마치고 4학년 올라가는 봄에 졸업시험을 치르네요.


1년이나 앞당겨 졸업시험을 치르면서 헌법 A, 민법 A. 형법 A의 졸업성적표를 카톡으로 보내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이때는 정말 아는 사람들 한 테마다 그 성적표를 보내면서 자랑 좀 했답니다.



법대졸업성적.jpg



계획을 세운다고 다 실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실행을 위하여 얼마나 고군분투했을까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대견하고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처음에 한국 왔을 때 공부에 대한 압박이나 삶에 대한 조급함으로 다그쳤다면 여기까지 왔을까 싶습니다. 첫 시기에 충분히 쉬고, 놀고, 주변을 보면서 충분히 생각하고 스스로의 결심을 하기까지 기다리지 않았다면 삶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고, 주변에 쫓기는 삶을 살았다면 이렇게 침착하고 담담하게 여기까지 올 수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한국에서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 아니라 증오 대상이죠. 이 글이 혹시 자식 자랑의 글로 비칠 수도 있지만 20대의 새터민 청년이 낯선 한국사회에 와서 적응하는 과정의 이야기로 생각해 주시면 고마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공간은 제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는 공간이고 제 삶의 많은 부분을 아들과 함께 하는 고로(이건 누가 봐도 합리화네요. 죄송합니다) 내 삶 가운데 아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보니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가네요. 네. 맞아요. 아들 자랑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아들은 4년의 법대 공부를 마무리합니다.

대학과정에 학업을 제외한 다른 활동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써볼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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