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몇 가지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술을 마시지 못하는 건데요.
지금까지 제가 마신 술을 다 합쳐도 5-6병 될까 말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인들과의 술자리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이 늘 속상하기도 하죠.
엄마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으면 하는 아들의 바람,
그래서 친구들과 술자리도에도 빠지지 말고 참석했으면 하는 아들의 바람,
고맙기도 합니다.
집에서 쉬고 있던 어느 주말 저녁 9시경 전화벨이 울립니다.
이 시간에 무슨 전화 일가?
그것도 주말 저녁에?
한의사지인 한테서 온 전화입니다.
근처의 한의사들이 모여서 술 한잔 하고 있는데 괜찮으면 나와서 합석하면 어떻냐고.
주말 저녁 9시면 매우 편안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상황이라 별로 가고 싶지도 않았고.
술 마시는 자리라 선뜻 마음 내키지도 않아 쉬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죠.
곁에서 듣고 있던 아들이 한마디 합니다.
"왜요, 그냥 가서 어울리죠"
"술도 마지지 못하는데 뭐. 시간도 너무 늦었고"
"술 못 마시면 조금 마시거나 흉내만 내면 되죠.
이 시간에 술도 못마시는 엄마한테 전화했을 때엔 술마시자는 목적보다 함께 이야기 하고 싶어서일 텐데.
가서 어울리면서 재밌게 얘기하다 오세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끝날때쯤 다시 전화 줘요. 제가 차 가지고 다시 모시러 갈게요"
결국은 아들이 식사 장소에 데려다 주어 저녁 늦게까지 재밌게 놀았답니다.
흠흠~~
엄마보다 나은 아들입니다.^^
이렇게 엄마를 응원해주던 아들이 오늘은 "엄마, 그런 남자 만나지 마요"라고 한 겁니다. ㅎㅎ
엄마의 연애관에 아들이 관여를 하는 건가 하는 의미로 곡해될 수도 있는,
충분히 그런 여지를 줄 수 있는 멘트네요.~
그날은 오래간 만에 예전 회사 상사를 만나 술 한잔 했습니다.
술을 마시지도 못할 뿐 아니라 술 마시는 것도 즐겨하지 않는 제가 그날은 반가운 마음에 술 한모금 두모금 삼킨 거죠. 술 못하는 것을 콤플렉스라고 느낄 만큼 술을 잘 마시고 싶어 하는 저는 한, 두 잔이라도 술을 마시게 되면 이 상황이 매우 뿌듯하고 기쁘답니다. 봤지 봤지.. 나 오늘 술 좀 마셨거든? 하는 느낌이 들어서요. ㅎㅎㅎ
함께 마셨던 상사가 제가 술을 마시지 못하는 걸 알고 계셨으니 조금은 걱정되었나 봅니다. " 집에 데려다 드릴까요? 어차피 택시 타고 가는 길에 먼저 들리면 되지"
저는 싫다고 했죠. 술은 목동에서 마셨고 상사님 집은 압구정이고 저의 집은 술 마신 곳에서 아주 멀지는 않으니 그분께 부담드리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게다가 술을 마시고 남자와 같이 차를 타고 이동한다는 것이 당시까지만 해도 저한테는 타협할 수 없는 행위 중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었던 거죠.
그렇게 데려다준다고 하는 상사님의 호의를 뿌리치고 택시를 타고 혼자 집으로 향했습니다. 택시 안에서 아들한테 전화했더니 목소리 듣고 대뜸 묻더군요.
"술 마셨어요?".
"응. 택시 타고 가고 있는 중".
"지금 어디쯤이에요?"
그러더니 시간 맞춰서 아파트 아래에 내려와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차에서 내리는 나를 부축이면서 차 안을 흘깃 들여다봅니다. "혼자 오셨어요?"
"응"
"술은 누구랑 마셨는데요?"
"예전 직장 상사분이랑 마셨어"
" 좀 데려다주시지 그냥 가셨어요?. 그분이?"
"응, 내가 그냥 가라고 했어"
" 가란다고 그냥 가나? 남자가. 잘 아는 사이면 술 잘 못 마시는 것도 알 텐데..
그런 매너 없는 남자와 술 마시지 마요. 책임지고 집에 데려다줘야죠"
이렇게 되어 나온 말입니다.
"그런 남자와 술 마시지 마요"라는 말이요.
아들은 엄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지만, 그 상사님께는 매우 죄송하더라고요.
사실은 굉장히 점잖고 매너 있는 분이시거든요. ㅎㅎ
굳이 혼자 가겠다는 제 의견을 존중해 주셨던 거죠.
그런데 아들은 정 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상황 속에서 저는 다시 한번 남자와 여자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날 아들과 대화하면서 저는 술 취했을 때 남자가 데려다준다고 하면 그것을 호의로 받아들여야 하나,
또는 호의가 아닐 수 있는 상황은 어떤 경우 일가?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고 던졌지만 이것은 그냥 서로에 대한 이해 또는 믿음, 그리고 존중인 것 같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