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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콩새 Mar 04. 2021

내가 "배우" 선발에 탈락한 이유

머리 큰남자가이상형이에요.



저는 머리 큰 남자가 이상형이에요. 거기에 배가 좀 나오면 더 좋아요.라고 하면 제 주변 친구들은 저를 변태 같다고 놀리기도 합니다. 변태는 아니지만 좋은 걸 어떡합니까~ ㅎㅎ






30대 중반에 한의대 입학했으니  중,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바로 대학에 입학한 어린 친구들과는 대략 15년-16년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납니다. 거의 이모 벌 되죠.~ ㅎ


북한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도 사실 크지만 15년의 나이 차이는 또 다른 문화적인 차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나름 젊은 사람들의 문화에 익숙하려고 노력했지만 노력이란 사실 생각만으로 남아있고 실지는 동기들을 매우 당황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적극적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 때는 "어.. 이건 좀 혁명적으로 해야겠네~"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 거죠. 동기들이 아... 언니, 어... 누나... 늘 친숙하게 느껴지다가 그런 단어를 쓸 때는 다른 사람 같아요... 할 때가 있었거든요. 이런 북한식의 격한 단어들을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은 했지만 오랫동안 배어 있어서 순식간에 입에서 튀어 나가기도 했답니다. 지금은 제 친구들도 농담으로 가끔 함께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제 서로가 많이 이해되고 익숙되는 거 같아요. 제 입장에서는 너무 고맙죠.

한의대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은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일가요?

그중 머리가 특별히 큰 친구들도 꽤 있었죠. (이건 편견이라는 것 압니다요~~ㅎ)

언제인가 제가 그 친구에게 "너는 머리가 커서 참 좋겠다. 근데 진짜 머리가 크네" 했었거든요.

순간 분위기가 싸~~ 하더라고요.. 왜 이러지? 나는 칭찬한 건데..

후에 알게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머리가 작은 사람이 인기가 있고 머리가 크다는 말을 듣는 건 그 당사자에게는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라는 거죠.

하하.. 제가 참 큰 실수를 했네요.




북한에서 남, 여의 문제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대화의 주제로 한국만큼 광범위하게 회자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사 다 그렇듯이 좋아하는 남성 스타일, 좋아하는 여성 스타일들은 있지 않겠습니까? ㅎㅎ

그렇게 본다면 저의 이성 취향은 머리가 큰 남자입니다. 하. 하


개인적으로 저는 머리가 아주 작습니다.

CD 하나로 가려질 정도죠(지금 비웃으시죠. ㅎㅎ 앙~~ 그렇다고  돌은 던지지 말아 주세요. ㅎㅎ)

북한에 있을 때 저의 가장 큰 콤플렉스는 머리가 너무 작다 것입니다.


혹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남, 북한 문화적 차이를 알아간다는 점에서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북한에서는 영화배우를 학교에 와서 선발해 갑니다. 평양에서 이름난 배우들이 학교로 찾아와서 앉아있는 학생들을 쭉~둘러보면서 우선 인물을 우선으로 선발하는 거죠.

배우 뽑으러 온다는 소문이 나면 아이들은 잘 보이고 싶어서 난리도 아닙니다.

북한에서 학생의 화장이 금지이지만  립스틱 바르는 친구들도 있거든요.

또 입술이 좀 두터운 사람이 배우가 된다는 소문이 있어서 입술을 이빨로 자꾸 자극을 주어 두텁게 보이려고 하는 경우도 있죠. ㅎㅎ


암튼 그렇게 선발된 아이들은 교장실에 가서 몸매 등 신체상태까지 간단히 체크하고 평양으로 데려가서 최종 선발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담임선생님이 제 손목을 잡고 교장실에 데려가서 저를 이미 선발된 아이들 속에 쓱 세워놓았습니다. 담임선생님 입장에서는 내가 뽑힐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그런데 선발 안되니 혹 스쳐간 건 아닐까 생각해서 직접 데리고 가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평양에서 오신 배우 선생님들은 저는 안된다고 하더군요.

저도 물론 매우 실망했습니다.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해본 적은 없지만 그 시절에는 늘 이쁘게 보이고 싶고 그런 곳에 한 번쯤 뽑히고 싶고 뽑히면 자신이 뭔가 된 듯하기도 해서 긴장하고 설레고 기대하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볼 여지도 없이 단숨에 탈락입니다.


배우 선발에 탈락된 이유는요.

제가 머리가 너무 작아서 다른 배우들과의 필름 구도를 맞출 수가 없다는 겁니다.

사실 너무너무 슬펐고, 속상했고, 실망이 컸습니다.

북한은 한국보다 조금은 다르게 옛날 맏며느리 같은 후덕하고 이쁜 유형을 배우로 선발하거든요.

최근에는 좀 다라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머리가 크다, 작다는 북한의 문화에 크게 오르내리는 이슈가 아니어서 별로 신경 쓰는 일이 없었는데 이후부터 저는 머리 작은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이해되기도 했죠. 왜냐하면 실지 저도 머리가 큰 남자를 정말 좋아하는 등. 무의식적으로 머리가 큰 사람에 대한 공감대가 크게 형성되어 있는 상황이기도 했으니까요.






머리 큰 남자가 왜 이상형이냐고 한국 친구들이 저한데 자주 묻습니다. 개인적으로 남자가 머리가 크면 머릿속에 엄청 많은 지식이나 지혜가 들어있다고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물론 성인이 된 지금은 전혀 상관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릴 때의 그런 관념이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릴 때 많이 감상했던 소련 영화에서 나왔던 "레닌"이라는 인물이 머리가 유난히 컸던 것. 이후 북한에서 존경의 아이콘로 추앙되었던 김일성, 김정일도 머리가 큰 인물들이었죠. 알게 모르게 북한사회의 영향이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북한사회의 잔재인 거죠.


지금은 물론 생각이 많이 달라졌지만 머리가 크면 지적 자산이 머릿속에 많을 것 같다는 느낌이 절대적이라는 생각보다 어릴 때 가졌던 감정이 너무나도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지금은 그냥 무의식적인, 때로는 맹목적인 감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예를 들면 공식적인 장소에서, 또는 사적인 장소에서 처음 만나는 남자가 말을 걸어올 때..

그 남자의 머리가 큰가, 작은 가에 따라 제가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작은 남자에 대해서는 충분히 파악되기 전까지는 경계하는 자세를 취하고요. 머리가 큰 남자인 경우에는 처음부터 마음을 활짝 열고 대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한다는 거죠. ㅎㅎ


사실 머리가 크다는 것에 하나 더 추가해서 배가 나오면 더 좋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저를 변태 같다고 놀리거든요..하. 하, 하.

 머리 큰 것 까지는 이해하겠지만 배가 나온 사람은 제외시켜라고 자꾸 저를 압박합니다.

제 기준으로 질병이 의심되는 정도로 배가 나오면 문제 되겠지만 적당한 "배 둘레 헴"은 저한테는 애교입니다.


머리가 크다, 작다에 대한 남과 북의 너무나도 다른 인식이죠?

북한에서 머리 큰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이 사실 저만의 취향은 아니므로 이것도 북한문화의 한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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