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 2. 포기하다
“너 이런 직장 다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여자가 이만하면 됐지, 뭘 또 하려고 그래.”
은행 퇴사를 생각한 기간은 짧지 않았다. 지점장과 부지점장은 무슨 일이 있는 거냐며 고민을 털어놔보라고, 마치 고등학교 한 구석에 있는 ‘학생상담실’에서 오가는 것 같은 정작 학생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물음표들을 쏟아냈다. 퇴사를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퇴사’라는 두 글자가 찰나의 순간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수 백 수 천 시간이 농축된다. 그래서 그런 물음표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도 온전히 맞는 방향으로만 생각의 끈을 휘젓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때는 ‘방송일’을 하고 있지 않은 나는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그릇된 확신을 했다. 은행 지점 내에서 영업 전과 후로 사내 아나운서의 방송이 흘러나왔는데, 그 시간조차 고문이었다.
“왜 화면 속에 내가 아닌 저 사람이 있는 거지?”
급기야 나중에는 아나운서가 아닌 방송기자로 방향을 틀어서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희망했던 것이 아나운서냐 기자냐는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마이크나 펜이 아닌, 은행 단말을 두드리고 있는 나는 이미 불행의 낭떠러지 앞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는 꼴이었다. 생살을 앓으며 손 끝에 닿는 모든 것들이 고통으로 다가오는 시간들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고통에 취해있었다.
어쩌면 나의 은행 취업은 나 빼고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지난 26년 간 오롯이 혼자서 짊어져오던 것을 딸과 나눌 수 있었고, 당장 그날 아침을 깨우는 사우나에서 동네 아줌마들에게 은근슬쩍 딸의 직업을 자랑하면서 어깨를 폈다. 아직 장교 생활을 하던 동생도 갈급하게 취업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며 한시름 덜어냈겠지. 구 남친 현 남편 역시 혼자 부담하던 데이트 비용을 함께 부담할 수 있어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마저도 퇴사를 한 뒤에 돌아보니 눈에 들어왔다. 당시에는 옆이나 뒤의 시야는 내 것이 아니었다. 정면만 보였다. 인생의 목표를 ‘명사’로, ‘직업’으로만 가졌던 탓에 급기야는 내비게이션이 고장 났다.
“여기만 아니면 돼!”
까지 다다른 거다. 차라리 언론고시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으로 퇴사 선언을 했으면 모르겠는데,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로 이 회사만 벗어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젖어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 해 9월, 구 남친 현 남편과 보라카이로 휴가를 떠났다. 그때 구름만 보이는 저 상공 위에서 그릇된 이분법적 사고가 극에 달해서는, 타지 땅을 밟는 순간부터 돌아가면 ‘퇴사’를 입 밖에 내리라 마음을 굳혔다. 호텔 방에 누워 한국에서부터 챙겨간 맥도널드 컷팅 칼로 망고를 무제한시켜먹으면서 하반기에 진행되는 채용공고를 신나게 캡처했다. 마치 캡처한 기업들이 어서 오라고 두 팔 벌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부웅 떴다. 기분으로 따지면 보드카를 한 병 다 비운 듯한 들뜸이었달까. 맥주 한 잔도 제대로 못 마시는 알쓰 주제에.
휴가를 다녀온 바로 다음 날 사직 의사를 밝히면 너무 속이 뻔히 보이는 것 같아서,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입을 열었다. 사실 의미 없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부지점장한테 퇴사 얘기를 꺼냈다. 일이 힘든 거냐며 이유가 뭔지 모조리 다 얘기하라며 담임 선생님 모드로 전환됐다. 내가 입 밖으로 꺼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꿈’과 ‘사람’. 방송일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도 있었지만, 실제로 지점 내에서 텃세가 꽤 심한 편이었다. 전학 온 학생을 배척하듯 다 들리는 목소리로 나를 깍아내리는 것은 기본이고, 어느 날은 잔업을 함께 돕겠다는 나를 만류하며 먼저 퇴근을 시켜놓고 다음 날 출근하니 ‘도와달라’는 요청에도 안면 몰수하고 먼저 퇴근을 한 발랑 까진 신입으로 이미지 메이킹이 돼 있기도 했다. 자신의 서랍 구석에 외화 한 다발을 박아두고는, 그날 외화를 만진 적도 없다는 내 서랍을 뒤지고 급기야 오리발을 내미는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사례도 있었지만 하나하나 다 열거하면 이 글은 더럽고 치사한 텃새 이야기로 물들어 버릴 테니 이쯤 하자.
지금 생각해도 우스운 것이, 퇴사를 위해 본점 인사팀에서 직원이 나와서 상담을 할 때는 주 소재가 ‘적응’이었다. 내가 적응을 잘 못한 것은 아닌지, 괴롭힘을 당했다면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당한 것인지 서술하기를 요구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이름이나 속 시원히 얘기하고 떠나자, 작정하고 이름을 얘기했지만 당사자들이 인정할리는 만무했다. 그저 자기만족일 뿐. 사직 처리가 되기 직전까지도 지점장, 부지점장 심지어 텃새의 장본인들도 ‘이 직장이 얼마나 좋은 직장인지’를 강조했다. 요즘 같은 취업난에 (그러고 보면 2016년에도 지금도 ‘취업난’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인다.) 또 다른 직장을 어떻게 들어갈 것이며, 무엇보다 여자가 은행에 다니면 됐지 도대체 얼마나 좋은 직장을 가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급기야 100% 후회할 것이라는 저주 같은 조언도 있었다.
돌고 돌아 은행이 아닌 다른 직장들도 여럿 겪으며 프리랜서가 된 내가, 만약 누군가에게 퇴사 결심을 듣는다면 혹시 그 친구가 그 회사에 남아있는 것이 더 좋은 방향이라고 판단했다면 조금은 다른 얘기를 해줄 거다. 어쩌면 내가 듣고 싶은 얘기일지도 모르고. 거창한 건 아니고 ‘현 직장에서 자아를 실현하는 방향’에 대해서, 퇴사하지 않고 여기서 내가 나다울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에 대해서 그럴듯한 조언도 아니고 그저 같이 고민을 나눠줬다면 나는 아직도 그 직장에 다니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혹은 조금이라도 더 오랜 시간 그 직장의 일원으로 함께 했을지도 모르고.
지금까지 나를 콘텐츠로만 접한 구독자나 랜선 너머의 분들은 왜 그 좋은 직장인 은행을 그만뒀는지 궁금해했다. 이제부터는 이 글을 스윽 내밀어야겠다. 그리고는 꼭 두 가지를 함께 물어볼 거다.
“퇴사하고 싶으세요? 왜요?”
“여기서는 불가능한 목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