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사지로 변해버린 학교
정자가 밭가에 서 있다 해도
보려 하지 않은 이에게 혹사는 보이지 않으리.
왕의 측근 신하들은 증명하겠지,
농부들은 허리를 굽히고 있을 뿐이라고.
누가 이를 더 잘 알겠는가
한때 정자가 서 있던 나라보다.
ㅡ전영애 교수님의 <한 분단국을 위한 씁쓸한 시조>에서
황무지에 괴테마을을 만들기로 마음을 먹고 노동과 학문으로 남은 여생을 채워가는 참다운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문학인이자 학자가 있다. 전영애 교수님이다.
인간세상의 수많은 유혹이 있었을 텐데,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묵묵히 삶을 이어나가는 선생님의 삶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위로와 감동을 준다. 아주 조용히!
선생님의 조용한 목소리, 소리 없는 발걸음이 내딛는 곳,
야생화를 호미로 심고 흙 한 줌을 뿌리는 손길, 여백서원을 찾아온 방문객이 풀어놓은 이야기를 살포시 안고 쉽고 간결하게 삶의 이야기. 굳이 환경운동가, 생태철학자라고 호칭하지 않아도 선생님은 그 많은 일을 지혜롭게 해내신다.
무엇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 두루 기여할 수 있는 일, 공동체를 위한 일을 참 잘하신다.
그런 분이기에 그분의 삶을 따라 욕심은 비워내고 삶의 진정한 가치를 채워가며 동시대 사람들과 교류하고 작은 것이라도 나눠가며 행복한 삶을 나도 살아가려고 한다.
그런 기쁨과 행복은 누군가가 주어지는 것도 아닌 나와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다. 그러기에 기대가 된다. 우리의 어떤 마음, 어떤 행복과 어떤 아름다운 세상을 탄생할 수 있을지 기대감이 구름처럼 푸른 하늘을 넘실댄다.
전영애 교수님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꾸만 선생님에 대한 생각이 커진다. 이러다가 오늘 써야 할 글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고 이야기 방향을 틀어본다.
현대인들이 누리는 문명의 혜택이 큰 만큼이나 잃어버린 것들도 많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도보하는 즐거움을 찾기란 정말 어렵다.
흙을 밟으며 녹음이 주는 청량함, 나무의 진한 향기, 서걱거리며 흔들리는 풀잎소리. 활짝 펼친 양손을 가르고 손등과 얼굴을 부드럽게 핥아주는 바람. 우리 감각을 깨우고 사색의 날개를 펼치게 하는 녹지는 우리에게 큰 자산이다.
그런 자산을 잃어버린 사람은 번잡한 대도시 사람들만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 콘크리트 건물에 갇힌 학생들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2년 동안 줄곧 운동장을 빼앗긴 학생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잃은 것은 어마어마하다. 그들 중엔 자신이 무엇을 잃었고 빼앗긴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들도 있다.
학생들이 성인이 되고서야 자신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며 자신들이 잃은 거대한 자산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잃어버린 무형의 자산! 무엇으로 찾을 수 있을까?
학교는 스마트 학교 리모델링 사업으로 긴 공사 기간으로 학생들은 소음공해로 고통받아야 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다,
소음 때문에 귀에 피가 날 것 같고 골이 흔들려 어지럼증이 생겨 앉아 있을 수가 없다는 아이들.
귀가해서도 귀에서 자꾸만 소리가 울어댄다고 하소연을 산더미처럼 토해놓는 아이들. 울렁증과 두통이 심해서 침대에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축 쳐져 일어나질 못한다는 아이들. 심한 아이는 구토까지 했다고 하니, 학생들이 겪었을 고통이 어땠을지 짐작이 된다.
아이들의 체력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는 있다니!, 이렇게 큰 고통을 당하는 학생이 있구나 싶었다. 부모도 무척 괴로웠을 것 같다.
하지만 리모델링 공사는 해야 하는 일인 만큼 중단시킬 수 없는 일이었다. 소음이 발생하는 작업 공정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집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고 휴식을 취하게 하는 일 이외에 뭐가 있겠는가.
그렇게 아이들은 작년에 소음으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당했다. 그리고 올해엔 조립식 교실이 있었던 운동장이 복원되지 못하고 폐사지처럼 변해서 학생들의 무형자산을 잃어버렸다. 그들이 향유해야 했던 무형의 자산, 더욱 확장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자산.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이기에 잃어버리고 인식하지 못하고, 찾고자 애쓰는 일도 하지 못 한 채, 그렇게 아이들은 무형의 자산을 잃었고 빼앗겼다.
학생들의 에너지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운동장. 폐사지가 되었다. 관리되지 않은 산속의 방치된 묘소처럼 잡풀이 우거지고 폐기된 구조물이 방치된 채
암울한 기운이 감도는 공유지. 그런 공유지에서 지친 마음을 회복하고 에너지를 충전하여 꿈을 향한 힘찬 출발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학우들과 체육대회를 하고 퍼포먼스에 열광하던 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일.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운동장을 나란히 걸었던 일. 이미 기억 속에 있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게 방치된 운동장. 쑥쑥 자란 풀.
왠지 길고 긴 미끈거리는 동물가 자신을 몸을 스멀스멀 기어 다닐 것 같아서 그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꺼림칙하지만 그리고 풀잎에 드러난 살갗이 따갑고 베일망정 이곳을 들어갈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을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은 알고 있었을까.
분리수거가 강화되고 학우들이 분리수거에 서툴러 여러 종류의 쓰레기가 섞여 있을 수밖에 없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그곳에서 모기에 물리고 풀잎에 살을 베이는 학생들이 그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
결국 쓰레기 처리하는 용역직원이 불편했던지 분리쓰레기통 주변에 자란 풀을 깎았을 뿐, 여전히 운동장의 풀은 수북하다.
유리창 내다보며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교사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풀은 참 자라네!. 풀이 있으니 잔디밭처럼 보는 것처럼 눈의 피로가 싹 가시네!
내가 들어갈 것도 아닌데~. 도교육청이 복원하는 비용을 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러고 무관심 행정과 방관으로 일 년이 쭉 흘려 추운 겨울이 오면 자연히 풀들이 기세를 꺾일 텐데, 뭐 하러.
전영애 교수님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보려 하지 않은 이에게 혹사는 보이지 않으리.>
그런 생각에 멈춰있는 학교 운영자와 교사진이라면
이 학교의 운명은 밝지 않다. 인구 감소와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소멸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건학이념은 허울뿐이다. 겨우 서가래만이 집의 형태를 말해주는 폐가옥처럼 낡은 교육 소프트웨어로 교육하고 있어 언제 폭싹 주저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앤서니 브라우니가 이 학교의 처사를 보았으면 뭐라고 했을까. 그의 수많은 작품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되었다. 하루 일과 주에서 집 근처 센트럴파크를 다녀오는 일이 습관이며 그렇게 얻어진 영감이 전 세계 어린이와 어른에게 꿈을 주었다. 그의 나직한 소리와 섬세한 일러스트는 우리에게 감동과 위로를 주었다. 그리고 또 다른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함께 꿈을 선사했다. 그리고 우리가 더불어 자연과 살아가는 가치를 깨우쳐 주었다.
그 엄청난 일은 자연에서 시작됐고 앤서니 브라우니가 이어갔고. 그의 작품을 본 독자들에 의해 완성되어가고 있다.
앤서니 브라우니는 말한다. 녹지 공유지를 걷고 느끼고 향유하는 것이 예술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그의 소리에서 우리는 인간이 가진 독창성과 창조성, 예술성은 자연과 함께하며 교감할 때 더욱 발전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학교 측에서 풀밭이 돼버린 운동장을 적어도 풀을 베고 도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면 풋풋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학생들이 더욱 창조적이고 독창적이며 상생가치를 가지고 공동체를 위한 가치 있는 삶을 이끌어 나갔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