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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빈작가 Oct 28. 2022

가깝고도 먼 엄마

  

남편이 말하던 말투를 바꾸려면 엄마와의 관계 개선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딸은 애증의 관계가 가장 맞는 말일 것이다. 

애증은 사랑과 미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한다. 

그냥 엄마이기 때문에 한없이 사랑하다가도 엄마의 행동과 말투에서 미움들이 묻어나기도 한다. 

엄마의 한 없는 사랑을 그냥 받기만 하면 되지 나는 엄마를 왜 미워할까를 고민했다. 

엄마가 나한테 올인하는 게 문제였다. 

아빠 없이 형제 없이 나 혼자니까 엄마가 나밖에 의지할 데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 나는 더없이 착한 아이로 생활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가 나한테 쏟는 애정은 나에게 너무 버거웠다. 

잘 알지만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엄마와의 대화는 늘 서로 짜증이 나는 말투로 배어있었다. 

서로를 위한다고 하는 말인데 그 끝은 어김없이 기분이 나쁘다.      


“요즘은 팔, 다리 안 아픈 데가 없어.”

“그럼 병원엘 가. 가자 나랑 같이” 

“싫어 안가” 

“아프다면서 왜 안가. 아프다는 소리를 말던지” 

“엄마한테 말이 그게 뭐야? 키워봐야 하나도 소용없어. 

내가 저기 이모들 있는데 가서 살던지. 집이고 뭐고 하나도 안 줄 거야. ” 

“내가 언제 엄마한테 집 달라고 그랬어? 말을 맨날 그렇게 해. 내가 엄마 집 가지려고 이러고 있는 거야? 아. 몰라. 나 집에 간다”      

쿵. 꽝~


휴. 이렇게 돌아서면 나도 마음이 심란하다. 

그렇다고 엄마가 뭘 원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매사에 짜증만 날뿐이다. 

엄마한테 늘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왜 엄마한테만 예쁘게 말을 못 하는지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매일 이렇다. 

이런 게 싫어서 엄마 집에 안 찾아가면 바로 몸이 아프시다. 

꾀병이 아니고 진짜로 아프시다. 

얼굴이 많이 부어있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며칠 찾아뵙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루 안 갔을 뿐이다. 

찾아가면 매일 투닥거리며 끝이 나니 찾아뵙는 게 좋은 건지 안 가는 게 좋은 건지도 잘 모르겠다. 

엄마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하고 돌아오면 또 엄마한테 모질게 말했구나 하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죄책감은 그저 죄책감일 뿐이고 만나면 좋지 않은 말투를 되풀이하고 있다.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과 엄마와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함께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엄마랑 차로 5분 거리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 

결혼하고 처음 2년은 차로 20분 거리의 아파트에 살았다. 

버스로 한 번에 오는 곳이 아니어서 엄마가 집에 잘 오지 못했다. 

은근히 좋았다. 

전세 계약이 만료되고, “어머니 혼자 계신데 엄마 옆에 가서 살자”는 남편의 권유로 엄마네 아파트 옆 동으로 이사를 했다. 

아직은 아가가 없으니 그래도 신혼인데, 엄마는 전화도 없이 “띠띠띠띠 띠로링”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오셨다. 

너무 싫었지만, 엄마한테 표현을 하지도 못했다. 

나는 그런 딸이었다. 

그저 난감해하는 남편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고 아이를 낳고, 그 옆 다른 아파트로 이사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옆 동이 아니니 엄마가 아무 때나 오시지는 않았다. 

그게 좋았다. 

엄마와 관계 개선을 위한 책을 읽던 중 엄마와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내용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그래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으나, 현실적으로 엄마는 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알기 때문인지 엄마도 자꾸 “저기 이모들 있는데 가서 살아야겠다”하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살지 못하실 것을 뻔히 아는데도 예쁘게 말하는 척하며 다음과 같이 말도 해봤다.  


“엄마 마음대로 하세요. 나중에 나 때문에 이모랑 살고 싶었는데 못살았다 하지 말으시고, 이모랑 같이 살던 그 동네 집을 얻어서 살던 진짜 엄마가 좋은 대로 하세요. 나는 어떻게 하든 괜찮아요. 엄마가 그게 행복하다면 그렇게 해요” 


정말 예쁘게 말했다. 물론 엄마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 말이다. 

한두 번이어야지. 

다시는 그런 소리를 말라고도 말해봤으나 소용없기에 한 선택이었다.

서운하셨을 테지만, 이렇게 말하고 나서부터는 가서 살아야겠다고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했다. 육아휴직을 1년 꼬박하고 싶었는데, 6개월 차에 회사에서 불렀다. 그때 복귀하지 않으면 내 자리가 없어질 것을 알기에 서둘러 아이의 젖을 떼고, 회사로 출근했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훨씬 편하지 시어머니에게 불편해서 어떻게 맡겨? 뭐라고 말도 못 하고’ 하기도 했지만, 나는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싶었다. 

일단 엄마보다 9살이 어리시고, 3년 전에 고은이의 사촌언니를 맡아서 키워주셨고, 우리 엄마보다 훨씬 잘해주실 것 같았다. 

키워준 공은 없다고 혹여나 뭔가 문제가 있을 때에도 어머니와는 잘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엄마에게는 내가 짜증을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아이로 인해 엄마와 얼굴 붉히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기도 했다. 

고은이 사촌 언니를 키워보신 시어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예방 주사도 맞으러 가시고, 보건소 교육도 받으시러 가시는 것을 보았기에 어머님이 해 주시길 원했다. 

하지만 어머님은 일을 더 하고 싶으시다고 하셨다. 

원래 어머님은 일을 계속하셨었다. 

그러나 첫 손주가 생기고 일을 그만두시고 아이를 봐주셨다. 

동서네가 둘째를 낳고 동서가 일을 그만두고, 남편이 직장을 옮겨 이사를 하는 바람에 어머님은 다시 일을 하셨다. 

이제 내가 아이를 봐줄 수 있는지 여쭤 보았는데, 일을 더 하고 싶으시다고 하셨다. 

남편도 어머니 힘들게 하지 말라고 했다.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이를 엄마에게 맡기는 것이 썩 탐탁지 않아 8개월 아이를 떼어 놓으며 어린이집도 알아봤었다. 

걷지도 못하는 애를 어떻게 어린이집에 맡기냐고 엄마가 봐주신다고 하셨다. 

그제야 엄마에게 맡기고 출근하기로 결정했다. 

엄마가 먼저 해주신다고 하기 전까지는 엄마에게 아이를 맡아달라고 말도 못 했었다. 

엄마가 어려워서 그랬던 것인지 엄마를 믿지 못해서 그랬던 것인지 모르겠다. 

남편이 시어머니를 생각하는 것처럼 엄마가 힘들 것 같아서는 절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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