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촬영팀은 8-90년대 배경의 영화 촬영지를 찾아야 할 때 어쩔 수 없이 발전이 되지 않은 동네들을 찾아다닌다. 그렇다 보니 지방 촬영 위주인 데다 숙소 생활을 하게 된다. 내가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를 할 때, 뜬금없이 집사가 될 뻔한 일이 있었다. 극 중에서는 송강호 선배님과 딸이 사는 집이 있는 동네였는데, 지역은 마산이었다. 사건 당일에는 '확인 헌팅'이라는 업무를 수행 중이었다. 담당 제작팀이 그곳 제반 사항은 어떤지, 촬영을 할 수 있는 곳인지 확인 후 문제가 없으면 키스텝들(감독님, 피디님, 촬영감독님, 미술감독님, 조명감독님 이런 헤드 스텝들을 키스텝이라고 한다.)과 함께 최종 확인을 하러 가는 것이다. 최종 확인 후 문제가 없고 촬영 장소에 적합하다 싶으면 그곳이 최종 촬영 장소로 확정이 되는 절차를 거친다.
제작팀 막내였던 나는 확인 헌팅 중 키스텝들의 대화에 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그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도 봤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 거나 흥미롭지 않아 금세 딴짓을 했다. 그날도 그곳 주민들의 동의 여부는 어떤지, 이 곳에서 이 씬을 찍으면 되겠다, 여기는 이것이 좀 걸린다 등의 이야기를 듣다가 다른 생각을 하던 차였다. 키스텝들과 한참 뒤에 떨어져 천천히 걷던 나는 주변을 돌아보며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골목길 안 쪽에 알 수 없는 생명체가 꼼지락 대는 것이 보였다. 자연스레 내 발길이 멈춰 섰고, 두려운 마음에 천천히 한 발자국씩 살금살금 다가갔다.
더 안 쪽으로 들어가 마주친 그것은 다름 아닌 아주 작은 아기 고양이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고양이 한 마리가 골목길 바닥에 엎드려 세상이 떠나가라 울고 있었다. "야옹~ 야옹~ 야아아아옹~" 소리를 들지 못했더라면 쥐 비슷한 것인 줄 알았을 거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작은 고양이라 신기했다. 그래서 가까이 갔던 건데, 그 작은 호기심이 큰 사건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내가 동물을 좋아하고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맞았지만 당시에는 일을 하던 중이었다. 지방 출장 탓에 반려동물은 생각지도 못 하고 있던 시기였다. 내가 가까이 가자 그 골목에 자리하고 있던 조그마한 슈퍼 주인 할머니께서 내게 말을 건네 오셨다.
"어미가 사라졌어."
그 말을 듣고도 나는 별 생각 안 했다. 잠깐 자리를 비운 어미가 돌아올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눈치채셨는지, 아기 고양이 앞에 쪼그려 앉은 나를 향해 할머니는 다시 한번 외치셨다.
"지금 일주일이 넘도록 이 자리에서 울기만 하네. 젖도 못 먹고. 이러다 굶어 죽을 것 같아."
할머니의 마지막 말은 원펀치 쓰리강냉이처럼 나의 정곡을 찌르고 말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K.O를 당했다. 결국 나는 확인 헌팅을 하는 도중에 그 고양이를 번쩍 들어 안아버리고 말았다. 내 주변에 계신 주민분들도 너무 불쌍하다며, 일단 데리고 가야 하는 거 아니냐며 나를 부추겼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철이 없지만 나는 그 작은 생명체를 외면할 수 없었다.
골목길에서 혼자 울고 있던 아기 고양이
내가 고양이를 안고 키스텝들이 계신 곳으로 가자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이게 뭐야?" "고양이야?" "고양이를 어쩌자고 데리고 왔어?" "어미는 어디 갔어?" 촬영 장소를 확인하던 키스텝분들은 장소 확인이고 뭐고 내 품에 안긴 고양이를 보기 위해 빙 둘러 섰다. (나이 있으신 분들이었는데 귀여웠다.) 그중 우리 팀 부장님께서 일단 병원에 데려가 보자고 하셨다. 그 부장님은 집에 고양이 두 마리가 있는 집사이셨고, 평소에도 길 고양이 구조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 분이었다. 하지만 그게 일과는 별개였으나 나 때문에 갑자기 업무 외 업무를 떠맡게 되신 것이었다.
그렇게 부장님께서 병원에 데려간 고양이를 본 의사 선생님은 곧 죽을 거라는 말을 하셨다고 전해 들었다. 젖을 먹지 못 해 굶은 지 한참 돼 보이는 듯한 녀석의 건강 상태는 아주 위중한 상태라고 했다. 게다가 배가 고파 자신의 꼬리를 물어온 탓에 꼬리까지 휘어 상처가 있었다. 부장님께서는 간단한 예방 접종을 마친 뒤 케이지와 젖병 등을 사 오셨다. 우리 제작팀 모두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지인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사진을 보내주면 너무 귀엽다는 말만 들을 수 있을 뿐 누구도 책임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이해는 갔지만 당장 우리가 촬영을 하며 일을 해야 하는 상황 탓에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이가 새로운 주인을 만나지 못 하자 결국 우리 제작팀이 아기 고양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상사분들은 고양이에게 '막내'라는 호칭도 붙여주었다.
막내는 우리가 숙소에서 잠을 잘 때 함께 자고, 촬영을 할 때는 함께 촬영장에 갔다. 처음에는 분유도 안 먹고 울기만 하여 골치가 아팠다. 무엇 때문에 우는지 알 방법이 없으니 미치고 팔짝 뛰는 기분이었다. 갓난아기와 함께 있으면 이런 기분일까 감히 예상도 해봤다. 막내의 체온을 높이기 위해서 나와 같은 방을 쓰던 최부장님(아까 부장님과는 다른 분이다.)께서는 자신의 후드티를 케이지 안에 넣어주었다. 더불어 500ml 페트병 안에 따뜻한 물을 담아 수건으로 감싼 뒤 막내의 곁에 놔주었다. 막내는 따뜻한 페트병이 어미인 줄 알았는지 젖을 무는 것처럼 입을 오물오물 대다가 이내 잠들고는 했다. 그러다 우리가 자고 있는 새벽에 칭얼대며 사정없이 울어댔다. 마치 아이가 우는 것 마냥 '엄마! 엄마!' 하듯이 애처롭게 '야옹! 야옹!' 거렸다.
분유를 먹는 아기 고양이 '막내'
제작팀의 평균 수면시간은 하루에 짧게는 3시간, 길게는 5시간 정도였다. 업무 때문에 잠을 거의 자지 못 하는데 그 시간마저도 막내에게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내가 데려왔으면서 책임지지도 못하고 짜증을 내며 잠을 자기 일쑤였다. 나랑 같은 방을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최부장님은막내를 거의 책임지고 돌보셨다. 막내가 우는 이유는 주로 배고파서 혹은 용변이 마려워서였다. 막내는 소변을 보려면 티슈로 그곳을 톡톡 쳐줘야 했다. 우리는 막내가 계속해서 울면 용변을 해결하도록 도와주거나 분유를 데워 젖병으로 먹였다.
숙소에서는 그나마 수월한 편이었다. 막내와 함께 촬영장에 가는 것은 배로 더 힘들었다. <택시운전사>는 야간 촬영이 많았는데, 18시 정도 시작해서 다음날 오전 6시에 끝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게 새벽 내내 숙소에 혼자 둘 수 없으니 우리 제작팀 차량인 스타렉스에 두었는데, 나는 케이지 안에 있더라도 차 안에 혼자 있는 막내가 너무 걱정됐다. 걱정을 하되 맡은 업무라도 잘 수행하면 상관이 없었 건만 멀티 플레이가 되지 않는 나는 그게 불가했다.영화 현장에서는 거의 모든 업무가 무전기를 통해 팀원들과 소통하기 때문에 잘 들어야 하는데, 막내 생각으로 가득 찬 채로 무전기가 잘 들릴 리 없었다. 그래서 결국 업무에 방해가 됐고, 현장에 대한 집중력을 모두 잃은 내 태도에 상사는 뚜껑이 열리고야 말았다.
"야! 너 뭐해? 무전기 똑바로 안 들어?"
하지만 이럴 때만 긍정적인 나는 쓴소리를 듣고도 막내 생각을 계속 이어 나갔다. 급기야 견딜 수 없어져 제작팀 사수 훈이 오빠에게 다른 상사들 몰래 부탁까지 하게됐다. "오빠, 저 막내한테 잠깐만 갔다 올게요. 제 자리 좀 봐주세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 주셔야 해요!" 내 어리석은 행동들을 자주 눈 감아주던 훈이 오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 자리를 지켜주었다. 덕분에 나는 밤샘 촬영 탓에 무거워진 몸을 이끌며 막내에게 전력 질주할 수 있었다. 보통 실제 촬영 장소와 주차장의 거리는 아주 멀어서 웬만하면 차에 가지 않는다. 그런 거리를 달리고 달려 우리 팀 스타렉스가 보이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같이 있어주면 막내가 외롭지 않을 것 같은 일방적인 생각에 괜히 혼자 들뜨기도 했다. 그렇게 도착한 스타렉스 문을 힘껏 열어젖히는 순간, 막내를 안고 있는 최부장님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최부장님도 막내가 걱정되어 머나먼 주차장까지 왔던 것이다. 부장님은 막내인 나와 다르게 현장에서 할 일이 많으셨는데, 여린 마음 탓에 자주 들른 눈치였다. 결국 부장님은 우리 팀원 전체에게 막내 돌봄 순서를 정해주셨다. 제작팀은 현장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는 팀이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말없이 자리를 비우면 팀원 전체가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게 나뿐만 아니라 제작팀 모두가 시간을 맞춰 밥을 먹이고, 용변을 봐주고, 페트병의 따뜻한 물을 갈아주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을 한 것이다. 촬영을 하면 미치도록 바쁘고 정신없기 때문에 다른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데(그래서 촬영 중에 연인과 이별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 와중에 아기 고양이를 살려내고 보살폈다는 게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잘 자라주던 막내
우리 팀의 보살핌을 번갈아가며 받은 막내는 건강이 점차 회복되었다. 우리의 마음을 알았는지 생각보다 잘 견뎌주고 잘 자라주었다. 하지만 애처롭게도 그런 나날이 계속되자 제작팀 모두가 피폐해져 갔다. 해결해야 할 업무가 넘쳐나는 상황 속에 잠도 제대로 못 자는 형편에 막내까지 돌봐야 하니 한 두 명씩 아프기 시작했다. 데려온 것은 나였지만 그때는 어려서 내 책임이 아니라 생각했다. (정말 어리석었다. 23살이었다.) 그래서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니 상사분들이 해결할 거라 믿었다. 한데 나 빼고 모두가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게 내 책임이냐며 상사분들한테 대들기도 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해보니 분명 내가 데려왔고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분명 나였다.첫 사회생활을 하며 책임에 대한 것을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에는 발을 뺐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반려동물을 분양받고는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들을 증오하면서도 내 행동 또한 유사 행동임을 진심으로 알지 못했다. 어쩌자고 이 작은 것을 데려다가 촬영장에서 키울 것인지 계산조차 하지 않은 채 무작정 데려와서 우리 팀 전원을 힘들게 했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우리가 함께 감수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당시 나의 상사였다면, 막내인 내가 정말 미치도록 미웠을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상사들은 함께 고민해주고 해결 방안을 찾아주시는 분들이셨다. 그걸 깨닫게 되자 내가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나는 막내를 돌본 지 몇 달이 지나서야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했다. 내가 키우고 싶었지만 전국 방방 곳곳을 돌며 우리 팀과 막내를 고생시킬 수는 없었다. 또한 이런 책임 의식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내게 키워진다면 막내가 행복하게 살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가장 컸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스러운 막내를 아무한테나 맡기고 싶진 않아친한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SNS에 막내의 사진과 함께 집사를 구하는 글을 올리고 개인적인 메시지로 소상히 사정을 설명했다. 이 모든 과정을 여기저기 이야기한 결과 나의 친한 지인 중 한 명인 호중 오빠가 막내와 함께 하기로 했다. 영화 일이 반려동물과 함께 하기 어렵다는 걸 아는 오빠(영화 '옥자'의 제작팀이다. 이후로 영화 일을 안 하실 거라며 막내를 데려가셨다.)는 흔쾌히 막내를 가족으로 맞이해 주었다. 그렇게 막내는 '부추'라는 이름까지 생긴 채 지금까지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새로운 집사 호중 오빠와 행복한 부추
가끔 부추를 보러 가면 나를 기억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꽤나 오랫동안 내 눈을 응시한다. 비록 내가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곧 죽을 거라는 의사 선생님 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아주고, 내게 책임이라는 매우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준 부추에게 감사하다. 그런 부추와 지금까지도 함께 해주는 호중 오빠와 더불어 부추를 잘 보살펴 주셨던 제작팀 상사들에게 감사하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제작팀 막내는 사실 내가 아니라, 아기 고양이 '부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