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하지 않기 위해 그마저도 꾹 눌러 쓴 인사말
등을 보이고 앉은 나에게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돌아앉은 나의 등에서 독백이라도 들은 양, 비추지 않은 나의 표정에서 용케 슬픔을 알아채었나 보다.
그 물음에, 사연 많은 여자라도 된 양 눈을 조아려 본다.
여전한 모습이 고민이어서, 여전해지지 않을 방법을 여전히 고민 중인 나는 '알고 있던 것들로의 회귀'를 택했다. 다시 돌아가 그 개념을 파악하는 일. 알고 있던 것에 대한 부정이 아닌, 존재를 알았다면 정도를 돌이켜보는 후끈한 일을 말이다. 그렇게 난 스스로 낭만적 편집증 환자가 되었고, 덕분에 내 주변에 널브러진 모든 것들에 대한 존재가 새로워졌다. '나'라는 것도 아직 뜯어보지 않은 '상품'에 불과해서 들여다보기가 가능해졌다.
투명 비닐로 싸인 나를 들여다보고 해체하여 알아내는 작업을 시작한다.
자신을 잘 안다고 오해했을 때쯤, 풀리지 않는 고독감과 불투명한 그리움을 발작적으로 과시해왔었다.
안다고 생각했기에 내 문제에 대한 답변에 초조해진 것이다.
답을 기다렸던 나의 문제는 '어떻게 자신을 방어하는가'였다. 그동안 오해의 상황에서도 어설픈 항변이 따랐고, 날 품어준 이들에 대한 감사마저도 드센 타인의 목소리에 묻히기 일쑤였다.
마음속에 가득 재워놓은 감사가 따뜻한 마음에 부패될 것만 같은 답답한 나날들.
되짚고 갈 필요가 있음을 온몸으로 느껴 스스로가 포장지에 들어가 들여다보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나와 같이 진열된 많은 상품들의 눈이 느껴진다. 스스로 들어간 포장지를 찢고 걸어나올 그날을 위해 병적으로 병들 준비를 한다.
긴 인사를 하였지만 목소리는 싣지 않았음에, 그렇게 침묵으로 첫인사를 마칩니다.
- 히초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