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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Mar 10. 2023

나는 쾌락을 추구하기로 했다



 기원전 4세기 중반에 태어난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의 고통에 치료법을 제시하지 않는 철학자의 말은 공허할 뿐이다." 





 나에게 철학이란 학창 시절에 배웠던 '윤리'과목과 결부된 이미지였다. 윤리 시간에 배운 수많은 철학자, 사상가들의 언어란 곧 시험의 언어였다. 머릿속에 집어넣고 사지선다 중 '옳은'답을 골라야 하는 종류의 지식이었다. 직접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기보다는 선생님의 설명으로 먼저 접하고, 시험에 어떤 유형이 나오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언제나 누군가의 해석, 주로 선생님이나 문제집의 해설로 이해해야 했다. 철학이 좋은 인생을 사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을 어디서 들어서 알고는 있었으나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다. 애초에 다른 사탐 과목 중에 그나마 덜 지루해 보여서 고른 게 '윤리'였으니까. 


 그런 '철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작년 말부터였을 거다.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알고 보니 이미 이천 년 전에 답은 다 나와 있었다. 부처님, 예수님, 공자, 맹자, 순자, 장자, 노자, 소크라테스...... 내가 해야 할 몫은 그 수많은 철학자들의 말을 뷔페에서 음식 담듯 우선 골라 맛을 본 뒤 현재 나의 상황과 타고난 성향에 맞게 응용하는 것일 터였다. 


 도서관에서 철학 쇼핑을 했다. 니체, 노자, 석가모니... 쉽게 풀이된 철학 입문서들을 조금씩 맛보았다. 어느 날 '에피쿠로스'를 만났다. 윤리 시간에 몇 줄의 설명으로 배우고 지나간 적이 있는 사상이었다. 쾌락주의. 하지만 먹고 마시고 놀고 하는 쾌락주의라기보다는 오히려 금욕적인 좀 이상한 쾌락주의.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적극적으로 감각을 추구한다기보다는 고통을 피함으로써 만족감을 누리는 쪽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빵 한 조각에 물 한잔만으로도 지극한 기쁨을 맛보았던,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느라 불행해하기보다는 현재 가진 것에 만족을 느낌으로써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고자 했던. 신자유주의 논리로 따지자면 발전성 없는 삶을 살았던 사람.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행복한 삶의 조건은 아주 간단하다.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면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우리에게 필요한 걸 구하기란 어렵지 않다. 우리는 배고프기를 원하지 않고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집을 원하며 정신적 교류를 원한다. 따라서 행복해지려면 끼니를 챙겨 먹고 지붕 아래에서 잠을 자고 친구를 사귀면 된다. 맛집 탐방이니 내 방 거실에 티브이가 생겨서 좋으니 하는 건 부차적인 문제다. 

 욕망을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걸 얻는 건 크게 어렵지 않으며, 그러한 필요가 충족되었을 때 충분히 감사하고 만족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염두에 두라는 쪽에 가까울 테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쾌락주의자였다. 나는 줄곧 어떻게든 고통을 피하고 싶어 했다. 나보다 인생을 두세 배로 더 살았다는 어른들이 성공하려면 수능을 잘 쳐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했을 때도 '어째서 미래의 성공을 위해 오늘 밤 10시까지 야자를 하며 고통을 겪어야 하지?' 하는 생각에 오후 보충학습을 당당하게 땡땡이쳤던 불량 학생이었다. 멀쩡한(?) 직장에 들어가서 돈을 모아 미래(결혼-출산-육아 등)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에도 '어째서 인간은 스무 살이 넘으면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6시 혹은 그 이상을-준비시간과 출퇴근 시간까지 합치면 거의 하루종일이다- 몸에 꼭 끼는 출근복을 입고 의자 안에 갇혀서 남이 시키는 일만 하는 고통을 겪어야만 하나?' 하는 생각에 풀타임 직장을 구할 생각은 않고 파트타임 일만 전전하며 부모님 속을 썩였다. 


 한 번은 풀타임 직장을 가진 적이 있었다. 영어 유치원 일이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였으니 소위 말하는 워라밸이 지켜질 만한 조건이었다. 무슨 일을 했다고 딱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수업 준비와 수업을 비롯해 학부모 관리, 원생 관리, 행사 준비, 청소, 행정 업무와 매일 마다 아이들 똥오줌 닦아 주는 일까지 몸이 열개라도 된 듯 온갖 일을 다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드디어 부모님이 어디 가서 자랑스럽게 말할 만한 제대로 된 직장을 가졌지만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오히려 의문은 더욱 커져만 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져보는 액수의 돈을 몇 달씩 가져갔지만 남는 건 없었다. 일이 힘든 만큼 스트레스와 보상심리로 번 돈을 탈탈 써버렸기 때문이다. 이럴 바엔 왜 굳이 고생을 해가며 풀타임으로 일하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차피 돈도 못 모으는 거, 적게 일하고 덜 쓰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이런 나에게 있어서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간결한 맛으로 침샘을 자극하는 약선 요리 밥상과도 같았다. 에피쿠로스 철학은 그동안의 내 선택에 당위성을 안겨 주었다. 그동안 불효자식, 세상 물정 모르는 인간을 비롯해 심하게는 철 모르는 어린애처럼 취급받기 십상이었던 내게 그의 철학은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헤매고 헤맨 끝에 드디어 나만의 이타카(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고향)를 찾은 셈이다. 그런 내 이타카의 이름은 바로 '쾌락주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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