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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Jun 28. 2023

100년전 공주 이야기 첫번째, '꽃의 공주'(3)

-꽃 아가씨를 다시 만나다






 다음날 아침 같은 시간, 주와이예즈는 산책로를 헤매며 꽃 아가씨를 찾아 다녔다. 어제 처음으로 그녀를 보았던 곳은 나팔꽃 넝쿨로 덮인 아치형 정자 부근이었다. 하지만 오늘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어제와는 사뭇 다른 구역에서 그녀를 발견하기 전까지 그는 꽤 너른 범위를 살피고 다녀야 했다. 백합 꽃밭 속 꽃 아가씨의 물결치는 머리칼에는 하얀 백합 한 송이가 놓여 있었다.

       

“아!” 주와이예즈가 탄성을 내뱉었다. “오늘은 백합이로군요. 어제 전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보니 틀린 것 같네요. 정말 어울리는 선택이군요. 티 없이 맑고 순수한. 공주님조차도 더 나은 걸 고르시진 못 할 거예요.”     

플뢰렛이 밝게 웃으며 긴 머리칼을 좌우로 흔들자 반짝이며 파도가 일었다. 

“제 생각을 원하는 대로 쉽게 읽어내는 분은 여태껏 뵌 적이 없답니다.” 그녀가 놀리듯이 말했다. 

“친애하는 아가씨.” 주와이예즈가 성큼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제게는 그대와 같은 작은 공주님을 초대할 만한 이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정원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함께 길을 떠나 우리들만의 작은 정원을 만들어요. 그곳에서 우린 누군가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노닐겠죠. 행복한 두 마리 나비처럼.”   

   

플뢰렛은 고개를 저었다. “안돼요.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정원과 공주님 곁을 떠날 수 없어요. 그 분은 저 없이는 살지 못하세요. 이 꽃들이 피고 저라는 꽃이 피어있는 한 언제나 이곳에 머물러야 해요.”      

“그렇다면 저도 반드시 언제까지나 이곳에 머무를 겁니다!” 주와이예즈가 선언했다. “공주님이 음유시인이나 군인, 약사 혹은 어떤 역할로든 저를 곁에 두시기만 한다면 우리는 함께 정원에서 노닐 수 있겠지요. 퍽 괜찮은 생각이지 않나요, 작은 꽃이여?”


플뢰렛은 생각에 잠긴 듯 했다. “당신을 내보내야 한다면 제 마음이 좋지 않겠지요. 꽃을 너무나 사랑하시니까요. 그리 되면 너무 가여울 거예요.”

“네, 전 꽃을 사랑합니다!” 주와이예즈가 힘주어 말했다. “우리 함께 공주님을 찾아뵙고 저를 당신의 사람으로 써 주십사 청해봅시다.”

공주는 오랫동안 그를 응시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당신이 뛰어난 음유시인인지 아닌지 제가 무슨 수로 알겠어요? 재주를 보증하지 않으면 공주님께 데려갈 수 없어요. 그 분은 오직 최고만을 바라십니다. 자,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야생의 정원으로 함께 가요. 거기선 들킬 걱정이 없으니 기꺼이 연주를 듣도록 하죠.”     

그리하여 둘은 정원의 길들여지지 않은 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겨 작은 시냇물 옆의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 주와이예즈가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자 플뢰렛은 기쁨에 차 손뼉을 쳤다. 공연이 끝나자 그가 말했다.     

“자, 친애하는 아가씨, 제가 공주님의 음유시인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분을 행복하게 할 능력이 있을까요?”     

“물론이에요, 주와이예즈. 덕분에 정말 기뻤답니다. 단연 음유시인 왕자님이세요.” 그녀가 대답했다. “하지만 아직은, 글쎄요. 이것으론 충분하지 않아요. 잠깐, 들어봐요! 예배실 종소리가 들리네요. 서둘러 궁전으로 돌아가야겠어요. 내일 다른 노래를 들으러 다시 올게요. 그동안은 공주님을 만나려 하지 마세요.”      

“저는 공주님께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그가 멀어져가는 플뢰렛을 향해 말했다. 

“당신을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작은 꽃이여!” 꽃밭 너머로 화답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이 밝았다. 주와이예즈는 류트를 가지고 정원에서 꽃 아가씨를 만났다. 이번에는 한참을 헤맨 끝에 장미꽃밭에서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긴 머리칼을 진홍색 장미 한 송이로 장식했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오는 발소리를 듣고 흘깃 올려다보는 두 뺨이 꽃처럼 붉었다. 거기에 더해 붉은 점 하나가 고운 손 위에 나 있었다.

“보세요!” 그녀가 울먹였다. “이 잔인한 가시가 저를 찔렀지 뭐예요. 의사 선생님, 허브 진료를 시작하세요.”      

플뢰렛의 모습에 주와이예즈가 울상을 지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나도 함께 아픈 법이다. 그는 상처에 잘 듣는 특정 종류의 식물 잎을 찾으러 달려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와서는 리넨 천 조각을 조금 꺼내 상처 입은 부위를 잎과 함께 부드럽게 감쌌다.        

“이제 괜찮아 질 겁니다.” 그가 말했다. “이 약초는 상처에 특효약이니까요.”

“정말 현명하시군요.” 그녀가 속삭였다. “훌륭한 의사 왕자님이세요!”

“그렇다면 말해보세요, 이제 공주님의 의사가 될 거라는 희망을 품어도 될는지요?”그가 간절하게 말했다.  그러나 플뢰렛은 고개를 저었다. “손가락이 내일 아침에 어떨지 꼭 봐야 해요. 꽤 많이 낫는다면 그땐 아마도- 하지만, 들어봐요! 정원사의 호루라기 소리예요. 늦었어요. 이만 돌아가야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린 발각될 거예요.” 그러더니 주와이예즈가 무슨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달려가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주와이예즈는 아주 오랫동안 플뢰렛을 찾아 헤맸다. 드디어 서로 마주했을 때 그녀는 라벤더 꽃들 사이에 있었다. 손가락은 씻은 듯이 나았다. 그녀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자 이제 류트 연주를 가르쳐주세요. 제가 알기론 공주님은 기꺼이 류트를 배우실 겁니다. 하지만 그 전에 당신이 선생님으로서는 어떤지 직접 봐야겠어요.”     

두 사람은 대리석 분수대 옆에 나란히 앉았다. 정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다. 주와이예즈는 류트 연주법과 어떻게 하면 달콤한 음색을 낼 수 있는지를 가르쳤다. 아주 잘 가르치고 배우느라 둘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만큼 즐거웠다.      

“주와이예즈, 당신은 아주 잘 가르치는 왕자님이세요!” 플뢰렛이 말했다. 



그때, 잔디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뿔싸! 수석 정원사였다. 출입 금지 시간에 들어온 자를 붙잡으려고 급히 달려온 모양이었다. 공주는 조금 울먹이더니 한 마디 말도 없이 생 울타리 입구 속으로 슥 하고 사라져버렸다. 워낙 잽싸게 달아나는 바람에 정원사는 미처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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