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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Jul 24. 2023

100년 전 공주 이야기 첫 번째, '꽃의 공주'(6)

-공주의 마음이 담긴 꽃을 찾다



  하나- 둘! 하나- 둘! 잘 벼려진 칼날들이 번쩍였다. 두 사람은 상대방의 허점을 찾으려 빈틈없이 움직였다. 

두 사람 모두 숙련된 검객이었다. 하지만 구경꾼들은 곧 주와이예즈의 실력이 한수 위라는 걸 알아챘다. 그는 솜씨 좋게 찌르고 신중하게 상대의 검을 쳐냈다. 마침내, 불현듯 뛰어올라 몸을 비틀더니 포트망의 손에서 검을 빼앗기에 이르렀다. 검이 저 멀리 홀을 가로질러 날아가자 포트망은 우거지상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채 검을 주우러 갔다.       


 “멋지다! 훌륭해!” 군중들이 환호하며 손뼉을 쳤다. 승자의 활약에 마음을 빼앗겨 애초에 그가 여기 불려 온 이유 따윈 까맣게 잊어버린 듯했다. “잘했어요!” 공주도 함께 소리쳤다. “저는 공주로서, 그대가 이미 가진 이름들에 더하여 용감한 왕자로 불릴 자격을 수여합니다. 일어나세요, 주와이예즈 왕자여. 구혼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따라서 저와 함께 할 영광을 구하는 모든 왕자들께 드리는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그대가 저와 결혼할 왕자라면 제 마음을 찾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테지요. 정원에 들어가 제 마음을 찾아보세요. 그건 제가 가장 아끼는 꽃에 있습니다. 작별입니다. 두 분 왕자님. 내일 한낮이 되기 한 시간 전에 청중을 모으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벌을 받을 자와 상을 받을 자의 운명이 결정될 것입니다.”     


말을 마친 공주는 사뿐히 왕좌에서 내려와 연회장 밖으로 나갔다. 그 즉시 모든 제후들과 숙녀들이 공주를 따르자, 구혼자 둘 만이 남았다. 포트망이 주와이예즈를 노려보자 그 역시 함께 쏘아보았다. 피차 감정이 좋지 않았던 터라 각각 반대 방향의 문을 통해 홀을 빠져나왔다.      


정원사가 다가와서 어깨를 건드리자 주와이예즈가 슬그머니 물러났다. “이제 어떻게, 범죄자 신분으로 다시 지하 감옥으로 돌아가야 합니까?” 감정이 솟구쳐 올라 화끈거리는 얼굴로 주와이예즈가 물었다.      

“지하 감옥이라뇨. 사정이 바뀌었어요, 왕자님.” 정원사가 샐쭉하게 말했다. “이제는 침입자가 아니라 구혼자이지 않습니까. 어쩌다 갑자기 일이 이렇게 됐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지만 말입니다. 어쨌거나 지하 감옥에 왕자님 방은 없는 것 같습니다. 공주님께서 포트망 왕자의 방만큼이나 훌륭한 방을 내드리라고 하셨으니. 따라오시지요, 괜찮으시다면.”        


주와이예즈는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천장이 높지는 않았지만 첫 눈에 보기에도 쾌적했으며 넝쿨에 휘감긴 창문을 통해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궁전 안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니셔도 됩니다, 주인님.”

정원사가 몸을 낮춰 인사하더니 자리를 떴다. 










 낮 동안의 일이 모두 마무리되자 어느덧 밤이 깊었다. 주와이예즈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밤에는 그 꽃을 찾아다니지 않을 거야. 내 사랑스러운 꽃 아가씨는 아침 일찍 정원에 나가길 좋아했으니까. 플뢰렛 공주님은 갓 피어난 꽃봉오리들을 소중히 어루만지며 돌보셨지. 말씀하신 꽃은 틀림없이 그중 하나일 거야. 지금은 너무 지쳤어. 얼른 자고 일찍 일어나서 그 꽃을 찾아볼 거야.”     

그는 침대에 머리가 닿자마자 잠에 들었고 내일에 관한 달콤한 꿈을 꾸었다. 공주가 가장 아끼는 단 하나의 꽃을 찾으리라고 굳게 믿었기에 마음이 편했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감춰둔 비밀을 알아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반면, 포트망 왕자의 마음은 조금도 평화롭지 않았다. 방랑음유시인에게 패배한 일은 자존심이 센 그에게 치명타였다.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그는 주와이예즈보다 한 발 앞서 문제를 해결하고 집 나간 자존심을 되찾으려 했다. 한 밤 중에 정원에 나가서는 정원 구석구석 가리지 않고 두루 살피며 공주가 가장 좋아할 꽃을 찾아 헤맸다. 그가 중얼거렸다. “그 재수 없는 싸움 때문에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어. 내일 잠에서 깰 때쯤이면 이미 공주 앞에 나서야 할 시간일 텐데.” (그는 게으르고 늦장 부리는 왕자였다. 짐작컨대 성질머리가 그 모양인 이유도 생활방식 탓일지 모른다.) “그러니 반드시 오늘 밤에 그 꽃을 찾아야 해. 망할 음유 시인 녀석이 찾기 전에 말이지.”     



 꽃으로 뒤덮인 길을 오르내리며 포트망은 잠들어 있는 꽃들 사이를 들락거렸다. 대부분의 꽃들이 눈을 꼭 감고 있는 바람에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그는 고민 끝에 짙은 향기를 내뿜으며 달빛 아래 하얗게 빛나는 튜베로즈를 떠올렸다. 수많은 꽃 중에 단연 눈에 띄던 꽃이었다. “하! 이거야 말로 가장 사랑스러운 꽃이다. 플뢰렛 공주는 분명 이 꽃을 제일 좋아할 거야. 이걸 꺾어서 가져가면 공주는 내 것이 되겠지.”     

그는 튜베로즈를 따 모아서 방에 두었다. 그러나 할 일을 마쳤음에도 쉴 수가 없었다. 구역질 날 정도로 짙은 꽃향기 탓인지 꿈자리가 사나웠던 데다 밤새도록 심하게 몸을 뒤척이는 바람에 깊이 잠들지 못했다.      



  주와이예즈는 개운하게 잘 자고 일어나 행복과 의욕으로 가득 찼다. 심지어는 꽃 아가씨와 만나던 시간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그는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며 그녀가 어떻게 매번 달라 보였는지를 떠올렸다. 어제는 라벤더 밭에 있었고 그 바로 전날에는 가시 돋친 장미꽃 사이에 있었다. 한 번은 백합꽃밭에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하얗고 순수해 보였다.     


“맞아, 맞아.”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셋 중에 공주님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 있을 거야.” 그는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그 꽃이 무엇일지 떠올리려 애썼다. “어떤 꽃이 공주님의 마음을 담고 있을까?” 얼마나 의미심장한 말이던가. ‘나의 심장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꽃에 있어요.’ 분명히, 그 말은 단어가 주는 첫인상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그 순간 주와이예즈는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아침햇살이 기분 좋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창문의 격자에 몸을 휘감은 넝쿨들이 불어오는 바람결을 따라 가볍게 몸을 흔들었다. 그중 하나가 가느다란 덩굴손을 뻗는 모습이 마치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그는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키며 미소 지었다. 놀랍게도, 분홍색과 흰색을 띤 작은 꽃이 창턱 너머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팔꽃이었다. 꽃송이 안에 이슬을 품은 모습이 어찌나 예쁘고 생기 넘치며 또 요정 같은지. 게다가 꽃의 작은 초록빛 잎사귀는 끝이 뾰족한 심장처럼 참으로 우아했다!







마지막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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