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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Jul 24. 2023

100년 전 공주 이야기 첫 번째, '꽃의 공주'(7)

-플뢰렛 공주의 선택




  주와이예즈는 똑바로 일어나 앉았다. 심장 모양의 잎사귀들! 플뢰렛 공주의 심장! 혹시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꽃은 나팔꽃 아닐까? 불현듯 작은 넝쿨로 덮인 정자에서 공주를 처음 눈여겨봤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녀의 머리칼 위에는 꽃 한 송이가 놓여 있었다. 그녀가 작은 꽃송이들에게 입을 맞추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라 부르던 장면이 생생히 그러졌다. 어떻게 그걸 잊어버릴 수가 있는지! 얼마나 둔해빠졌었는지!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급히 창문으로 달려가서 꽃송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꺾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너무 일렀다. 얼마간 그대로 보고만 있다가, 문득 창문 아래에서 나는 작은 웃음소리를 들었다. 창 밑을 내려다보자 매일 아침 함께 노닐던 초록색 가운을 입은 아가씨가 보였다. 그녀는 나팔꽃 넝쿨 발치에 서서 애정 어린 손길로 넝쿨을 손에 받치더니, 위를 올려다보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 뒤돌아 뛰어갔다. 곧 살랑이듯 부드러운 웃음소리와 함께 그녀가 자취를 감췄다.     


주와이예즈의 시간은 달팽이 걸음만큼이나 천천히 흘러갔다. 오랜 기다림 끝에 예정 시간이 되자 포트망 왕자가 트럼펫을 불어댔다. “탄-타라-타라!” 그러자 성 안 사람들이 증인으로 참석하려고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워낙 여러 번 경연을 봤던 지라 내심 지겨워하던 그들이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공주님 손에 죄수에서 왕자로 급격한 신분 상승을 거친 주와이예즈의 존재가 있어 훨씬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리라.              


악몽을 꾸며 밤새 뒤척인 탓에 포트망 왕자는 기운이 없었다. 그는 하얀색 튜베로즈를 손에 쥐고 왕좌의 한쪽 옆에 서 있었다. 슬프게도, 튜베로즈는 그가 보기에도 색이 바랜 데다 시들시들했다. 워낙 오래전에 꺾은 탓에 향기며 아름다움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손에 든 꽃을 바라보던 포트망 왕자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 꽃이 과연 공주가 말한 꽃일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꽃을 고르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다가올 경연을 알리는 커다란 종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그는 갓 일어난 상태였다. 마음의 준비 따위는 부리나케 화장실로 뛰어가 허겁지겁 볼 일을 봐야 했던 조금 전만큼이나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반면 주와이예즈는 떠오르는 태양만큼이나 밝고 상쾌했다.

보기 좋은 초록 벨벳 옷으로 차려입고 창백한 분홍색 꽃송이와 초록색 잎이 달린 작은 넝쿨 약간을 손에 쥔 그의 두 눈이 기쁨으로 빛났다. 궁정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그들 중 대부분은 나팔꽃을 본 적이 없었으므로 숨죽여 웃으며 이쯤 되면 누군가 한 명쯤은 왕실의 공주가 소박하기 그지없는 꽃을 선택할 거라 착각할 때도 되었다며 쑥덕거렸다.       


두 번째 트럼펫 소리와 함께 플뢰렛 공주가 등장했다. 질 좋은 초록색 비단 예복을 입은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빼어나게 아름다운 한 송이 꽃처럼 보였다. 왕좌에 오른 그녀는 궁정 사람들을 다정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으나 연단 양쪽에 서 있는 두 명의 구혼자들에게는 거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본론으로 들어갈 때가 되었군요.” 그녀가 말했다. “제 구혼자들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듣고자 합니다. 포트망 왕자, 그대부터 시작하세요. 무엇을 고르셨습니까? 제 심장을 담은 꽃을 찾으셨는지요? 제 비밀스러운 선택을 알아맞혀서 오직 저만의 왕자님이 되실 건가요?”          


포트망은 왕좌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말라죽은 튜베로즈를 내밀었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다소 풀 죽어 보였다.      

“공주님, 제 생각에는 이 꽃이야말로 당신이 가장 아끼는 꽃입니다. 온 정원을 통틀어 이 꽃이야말로 모든 꽃 중에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밤의 여왕은 낮에는 그 아름다움이 덜 합니다. 하지만 달빛 아래에서는 놀랍도록 아름답고 달콤했습니다. 제 생각에 당신의 심장은 이 꽃 안에 담겨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늘 간직할 수 있도록 제게 내어 주십시오. 친애하는 공주님이시여.” 그가 애원하듯이 말했다. 진심으로 공주를 사랑하고 아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 꽃이 아니에요. 오, 왕자님.”그녀가 말했다. “이 밤의 꽃은 제가 가장 아끼는 꽃이 아닙니다. 튜베로즈는 아주 달콤하죠. 하지만 그 꽃의 숨결은 아주 무겁고 쉽게 질려요. 잠을 앗아가는 데다 뇌를 취하게 만들죠. 아니에요, 그대의 초췌한 모습이 보여주듯이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했군요. 그대는 나의 왕자님이 될 수 없어요. 제 심장을 모르니까요. 작별입니다. 포트망 왕자.”     

그전의 수많은 왕자들이 그러했듯이 포트망은 뒤돌아섰다. 그리고는 아주 슬프게 궁전을 빠져나갔으며, 두 번 다시 공주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그다음, 공주는 주와이예즈에게로 몸을 돌렸다. “우리의 떠돌이 왕자님께서는 무엇을 고르셨을까요?” 그녀가 물었다. “주와이예즈는 플뢰렛의 마음을 얼마나 잘 알까요?”     

“저는 이 꽃을 골랐습니다.” 청년이 왕좌의 발치에서 그의 꽃 아가씨를 향해 무릎을 꿇더니 연약한 꽃송이가 피어있는 넝쿨 약간을 내밀었다. “이른 아침에 피는 사랑스럽고 소박한 꽃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죠. 이 꽃은 당신의 심장을 품고 있습니다. 오, 공주님. 이 심장 모양의 잎사귀를 보세요! 제가 공주님 마음을 알아맞혔을까요?” 



공주는 왕좌에서 일어나 연단을 내려오더니 그의 손에서 넝쿨을 가져가 머리칼에 꽂고, 심장 모양의 이파리 하나를 따서 손에 쥐었다. 그녀가 말하기를, “주와이예즈 왕자님, 잘 고르셨어요. 왜냐하면 당신은 제 마음을 아시니까요, 제가 사랑하는 걸 사랑하시니까요. 제 비밀을 알아맞히셨어요. 나팔꽃들 사이에서 제 마음을 발견하셨으니 이제 영원히 당신께 드리려 합니다. 받으세요, 주와이예즈 왕자님. 제 손을 잡으세요. 전 금지된 시간에 정원에 들어온 그대의 잘못을 아직 벌주지 않았고, 벌을 내려야만 합니다. 당신께 내리는 벌은 이와 같습니다. 그대는 일 년 하고도 하루가 지나는 동안 아무런 대가 없이 저만의 음유시인이자 군인, 선생님 그리고 의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후로부터 당신은 영원히 저만의 왕자가 되어 꽃의 왕국을 함께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저, 플뢰렛은 이처럼 그대의 운명을 법적으로 선언하는 바입니다.” 

그리고는 아주 달콤하게 키스하더니, 그를 왕좌로 이끌었다. 둘은 황금빛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나의 음유시인이여, 사람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세요.” 공주가 명했다. 왕자는 궁정 사람들이 그의 경이로운 음악을 듣고 기쁨에 겨워 서로 부둥켜안을 때까지 노래를 불렀다. 그는 플뢰렛과 그녀의 꽃과 같은 마음을 노래했지만 꽃 아가씨에 대해서는 노래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앞으로 이어질 행복한 나날 동안 언제까지고 둘만의 비밀로 남으리라.      




  그 시각으로부터, 주와이예즈와 플뢰렛은 매일 아침 몰래 정원으로 가 모두가 잠들어 있는 동안 꽃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겼다. 그 누구도, 심지어 못된 정원사조차 눈곱만큼도 의심하지 못했으므로 이와 같은 일과는 두 사람만의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 오늘날까지 그 누구도 이 일에 대해 들은 바가 없었다. 내가 여러분께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 작별을 고하기 전에 한 가지, 여러분께 고백할 것이 있다. 오늘 아침 내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다름 아닌 나팔꽃이었다. 아주, 아주 이른 아침, 게으른 이들이 모두 잠자리에 누워 있을 시각에.    










그동안 '꽃의 공주'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음에는 또 다른 개성있는 공주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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